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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창의적사고/두뇌계발
· ISBN : 9788996761471
· 쪽수 : 232쪽
책 소개
목차
추 천 사│빛나는 생각이 미래다
프롤로그│생각의 구조에 대하여
00 빛나는 생각을 마주하며
마시멜로의 유혹│자신을 유혹하는 육체│육체에 유혹당하는 정신│
생각은 멈춰지지 않는다│하트 크레인의 다리
BIG QUESTION
01 감각을 깨우는 뇌
시각의 본질적 정의│세계로 들어가는 왼쪽 창 열기│세계를 탐닉하는
오른쪽 창 열기│감각에 대한 놀라운 착각│알몸으로 써내려간 「레미제라블」
BIG QUESTION
02 이성을 키우는 학습의 기술
좌뇌가 기억하는 세계│「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와 「샘」│모르는 것과 알려고
하지 않는 것│루빅큐브에 기억 담기│감동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이성
BIG QUESTION
03 빛나는 영감의 시원에 대해
소피아 코발렙스카야의 수학│유레카의 원천│에르메스 켈리 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왼쪽 머리가 더 커진 이유
BIG QUESTION
04 언어와 이미지 파이
생각과 표현의 생김새│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알베르 카뮈의 스승│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학문 세계│언어와 이미지의 감옥
BIG QUESTION
05 본질의 소립자
보이지 않는 진실│팜 아일랜드의 꿈│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
두 개의 성조기│부르즈 칼리파의 탄생
BIG QUESTION
06 창조와 파멸의 색깔에 대해
창조의 세계에서 온 공감각│메릴린을 그린 사람│스티브 잡스의 색깔│
눈부시지 않는 헤드라이트│나는 무슨 색일까
BIG QUESTION
07 죽음에 다가가는 방법
감각과 죽음에 대하여│유전자는 조작될까│의심에 대하여│
궁금증과 배움에 대하여│새로움과 행복에 대하여
BIG QUESTION
에필로그│‘왜’와 ‘어떻게’를 사랑하라
리뷰
책속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개구리, 황소, 앵무새, 들쥐, 심지어는 덩치 큰 들소의 눈조차도 머리의 양쪽에 위치한다. 이들의 눈은 포식자가 다가오는 것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채야 하고 항상 경계할 수 있도록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면 올빼미, 사자, 호랑이, 독수리의 눈은 어떠한가? 이들의 눈은 먹잇감을 응시하고 추적하는 데 유리하도록 되도록 앞쪽에 위치한다. 이들의 눈은 뒤나 옆을 볼 필요가 별로 없다. 뒤가 보고 싶으면 그냥 천천히 돌아보면 된다. 포식자가 잡아먹힐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의 눈은 어떨까? 놀랍지 않은가?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인간이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일을 돌아보면 포식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다. 눈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증명하고 있으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로 보고 있을까?
- “시각의 본질적 정의” 중에서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글을 쓰기 전에 연필을 아주 뾰족하게 온갖 신경을 다 써서 갈았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당시에 허리를 다쳐 서서 글을 썼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서서 글을 쓴 사람은 헤밍웨이가 전부가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이자 수학자였던 루이스 캐럴이나 버지니아 울프도 서서 글을 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이 낳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알몸으로 글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아주 오랫동안 물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며 목욕을 즐겼다. 물 온도와 체온이 하나가 되고 머릿속은 저 먼 나라의 여행으로 가득 찼다. 그는 천천히 욕조의 한 귀퉁이에 붙여놓은 소나무 판자를 당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헤밍웨이나 빅토르 위고는 알몸인 상태에서 촉각을 다듬었다. 새뮤얼 존슨은 미각을, 하트 크레인은 청각을, 알렉산드르 뒤마는 시각을 다듬었다. 헤밍웨이가 연필을 뾰족하게 가는 것은 연필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촉각을 가다듬는 것이었다. 이제 날카로워진 연필심 끝에서 피어오르는 감각과 이성의 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감각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이성이 되고 감성이 되고 놀라운 신세계가 된다.
- “알몸으로 써내려간 레미제라블” 중에서
「샘Fountain」은 당시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소변기를 좌대에 세우고 ‘R. Mutt 1917’이라고 사인을 한 것이 전부인 그런 작품이다. 게다가 사인조차도 자신의 사인이 아닌 소변기 제조업자의 이름과 비슷하게 만들어 붙인 것에 불과했다. 이 작품이 미국 독립예술가협회가 주최하는 앙데팡당전에 출품되었을 때,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전시를 거절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품이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 된 것일까?
이 소변기를 좌대에 올려 작품으로 변신시킨 순간 우리는 이것을 ‘소변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용도조차도 소변기와 예술작품은 너무나 다르다. 마르셀 뒤샹은 예술작품의 범위를 ‘작가가 직접 만든 작품’에서 ‘이미 만들어진 산업제품’으로 끌어올려 확대한 것이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이 소변기를 ‘작품’으로 인지하지만, 곧 다른 의문에 빠진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마르셀 뒤샹의 놀라운 발상은 예술의 경계를 단번에 허물고 무력화시켰으며, 예술의 영역을 무한의 스펙트럼으로 쏘아 올렸다. 이보다 놀라운 이성을 만난 적이 있는가? -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와 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