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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775744
· 쪽수 : 376쪽
책 소개
목차
꽃잎 아기를 기다리며
국화꽃 향기
벼랑
바다
첫키스
결빙의 시간들
은빛 겨울 속의 한여름
은사시나무, 사랑, 가을
프로포즈
바다가 들어오는 방
세월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들
선택
폐교
태아
흐르는 강물
절망이 슬픔에 닿기까지
주문
그들만의 겨울
주단 인형
은행나무 아래서의 댄싱
전투
오리온 자리
여심
겨울이 낳은 봄
미소
저자소개
책속에서
“전…… 언제나 여기 있겠습니다. 저기 커다란 소나무처럼요.”
미주는 말없이 돌아섰다. 가슴속으로 성급한 가을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이지? 언제나…… 여기 있겠다고? 소나무처럼……? 아니 그 말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내게는 그저 바다의 느낌으로 남을 뿐이야.
일행이 묵고 있는 텐트 쪽을 향해 걷던 미주는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승우는 백사장에 붙박인 나무처럼 저만치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미주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승우가 지닌 마음의 깊이와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당신을 은혜하고 고와하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쉼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국화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여, 내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향기로 이미 눈 멀고 귀 멀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내게 지상에 살아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의 여자가 된 지 이미 8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무심함이 내게는 참기 힘든 가혹함이었지만 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10년을 채우고 20년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급하게 내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내가 미력하나마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 열리는 마음의 보석 상자.
승우는 그 상자를 미주에게 처음 열어 주고 싶었다. 그것이 이루어질지 못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어도, 그녀만이 열 수 있는 마음의 보석 상자를 가졌다는 건 눈부신 일이다. 육체의 미로를 통해 완전한 사랑을 찾아가는 길. 상자에서나 램프나 촛불이 나올 것이다. 세상의 멀고 어두운 길을 걸어갈 때 환히 비춰 줄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등불 말이다.
미주는 승우의 눈과 희고 빛나는 얼굴, 약간 젖은 머리카락을 눈에 천천히 담은 뒤 살포시 눈을 감았다. 열 손가락을 다 펴고 만져 본 그의 몸은 자작나무 같았다. 그의 살갗과 움직임에는 마음이 온전히 배어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아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