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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여행에세이 > 국내여행에세이
· ISBN : 9788996851578
· 쪽수 : 372쪽
책 소개
목차
01 권정생 / 외딴 오두막집의 성자_안동 조탑마을
02 고정희 / 고통으로 가는 여전사_해남 송정마을
03 김영랑 / 영랑과 모란이 숨 쉬는 곳_강진 영랑생가
04 김유정 / 사랑과 문학의 순교자_춘천 실레마을
05 김중미 /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지킴이_인천 괭이부리말 외
06 박경리 / 모든 숨탄것들을 사랑한 대지의 딸_하동 평사리 외
07 박완서 / 그 시대를 증언하다_서대문구 현저동
08 심 훈 / 겨레의 마음에 늘푸른나무를 심다_안산 본오동 샘골 외
09 오정희 / 불온한 젊은 날의 자화상_인천 차이나타운 외
10 유치환 /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_통영 청마거리
11 윤동주 / 내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_북간도 용정마을
12 윤정모 / 시대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 선 르포 작가_광주 퇴촌 나눔의 집
13 이육사 /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_안동 원촌마을
14 이해인 / 사랑과 위로의 언어_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15 이효석 / 메밀꽃과 원두커피의 향기_봉평 창동마을
16 정지용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이삭 줍던 곳_옥천 향수길
17 조지훈 / 맑은 시혼과 드높은 지조를 지닌 선비_영양 주실마을
18 최명희 / 살아 숨 쉬는 모국어의 바다_전주 한옥마을 외
19 한용운 /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모두 님이어라_백담사 만해마을 외
20 한하운 / 파랑새가 되고 싶었던 천형의 시인_소록도 나환자촌
21 현기영 / 4ㆍ3보다 더 무서운 것은 4ㆍ3을 잊는 것_제주 너븐숭이마을
22 황순원 / 문학작품 속 식물나라로의 여행_양평 소나기마을
저자소개
책속에서
난방은 고사하고 찬바람이 숭숭 한데나 다름없이 들어오던 교회 문간방에 비하면 빌뱅이 언덕의 토담집은 그나마 한결 아늑했으리라. 20여 년 전 동료 교사와 처음으로 이 집을 찾아왔을 때 세 사람이 앉으면 꽉 차는 작은 방에서 선생은, “내 누운 자리에 그대로 흙만 덮으면 무덤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새 같고, 풀 같고, 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댓돌 위에 놓인 검정 고무신 한 켤레와 작은 방 문 위에 동글동글하고 예쁘장한 글씨로 손수 써 붙인 ‘권정생’이라는 문패만이 이 집에 권정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줄 뿐이었다.
용정에서 삼합촌으로 가는 큰길을 지나 버스는 들판 한가운데로 나 있는 좁다란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들었다. 포장만 되었다 뿐이지 우리네 60년대의 신작로와 똑같아서 더 정다운 길이다.
얼마쯤 가다 비포장도로로 들어가는 길목부터는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길을 따라 걸어가야 했다. 어느새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운동화를 끌고 한 발짝씩 걸음을 디뎌가면서, 그 옛날 우리네 고향집 논두렁길을 가듯 정겨운 길을 걸으며 옆으로는 아련하게 피어난 들꽃 무리를 눈에 담는다. 샛노란 딱지풀과 짚신나물, 금불초, 그리고 보라색 각시취와 지칭개, 분홍색 달구지풀……. 윤동주를 닮은 듯 머나 먼 이역에서 해맑게 피어난 온갖 들꽃들이 아름답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는, 2010년에 처음 와 본 후 일 년 내내 애틋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다 끝내 다시 찾은 이 길에는 끝없는 옥수수 밭이 이어지고 있다. 그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야트막한 구릉 위로는 흰 구름이 떠가고 저 멀리로는 용정 시내가 바라다 보이는, 마음속에서 그리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굽이굽이 이어진 그 작은 길을 걸으면서 눈물 나고, 하늘을 보다가 또다시 목이 메는 속절없이 아름다운 길이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또 하나 마을이 나올 것 같은……. 모든 풍경들이 그렇듯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