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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88997162222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2-05-04
책 소개
목차
망각기계Forgetting Machines 노순택
망각기계로 죽다, 망각기계로 살다 김현호
We, Forgetting Machines Kim Hyunho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다나베 아츠미·노순택
저자소개
책속에서





안전한 곳의 우리는 사진 속 피사체가 겪는 참혹한 일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도무지 상상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의 현실에서 우리를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값싼 눈물과 분노다. 우리는 참혹한 현실에 화를 내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위무하고, 현실에서 등을 돌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광주가 재현되는 방식 역시 대개 그런 식이었다. 대부분의 사진과 영화, 소설에서 잔혹한 계엄군과 인간미 넘치는 시민군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보기 원하는 광주의 기억은 과잉 재현되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은폐되었다. 우리는 죽어가는 순박한 시민군과 착한 유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먹먹한 마음을 안고 영화관 밖으로 나와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실 우리의 분노와 눈물은 광주의 역사를 대면하는 공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광주의 학살과 그 해부학적 참상에 깊숙하게 들어가는 대신, ‘적당히 참아낼 수 있는 정도’의 기억을 선택한다. 즉 이것들은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만든다든가, 광주에서 죽은 ‘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식으로 ‘봉합’하는 것들이다. 광주를 그렇게 규정한 후에 우리는 일상으로 도망갈 수 있는 것이다. - 김현호, <망각기계로 살다, 망각기계로 죽다> 中
그의 이러한 질문들로 인해 우리는 사진을 통해 과거를 서술하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식의 통념에 대해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것은 지금도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근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신화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성찰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물음을 내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의 재현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옳은가? 사진은 과연 기억을 위한 기계인가? 망각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철 지난 질문을 던지면서도 미적 긴장감을 놓지 않는 사진가는 한국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노순택이 도달한 곳은 한국 사진의 어떤 최대치 중 하나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사진 속 망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다.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망자들은 사진의 운명과는 관계없이 아마도 영원히 평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 일어났던 공간은 기념물이 될 것이고, 살아있는 자들은 망자를 등에 업고 자신의 목청을 높일 것이다. 졸지에 민주화의 영령이 되어버린 망자들은 과연 이런 일들을 즐거워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녕 지옥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 김현호, <망각기계로 살다, 망각기계로 죽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