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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7445172
· 쪽수 : 174쪽
· 출판일 : 2012-11-15
목차
책머리에
1부
달인(達人)이고 싶다
길 위의 주검
감자 이야기
나무꾼 돌아오다
달빛 애상
동문(同門) 사이
믿음과 불신
바쁜 하루를 끝내며
백구(白駒)
사랑하는 딸 루티투이링과
새벽을 맞으며
선생님과 옥수수
세월 흐른 후에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양귀비 꽃밭에서 찍은 사진
2부
어느 추수 하던 날
어떤 여행
언덕에 올라
전원일기
죽을 뻔했던 이야기
춘곤증
칼국수를 하며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다
편지 이야기
표고버섯 농장에서
연분의 실마리를 찾아서
필요악에 대하여
슬픈 눈동자
해질녘
친정아버지
3부
당신의 자리에 서서
비검명(匕劍銘)
겨울나무와
쌀 예찬
사랑의 전설
한밤에 쓰는 나의 명상
농사 이야기
건망증과 양심이 준 교훈
어떤 비극
하나뿐인 밥상
축제가 있는 마을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
아름다운 동행
직장의 하루
발문(跋文)
저자소개
책속에서
■ ■ ■ 여는 글
사방이 자연으로 펼쳐진 순박한 산골에서 태어났다. 조부모님을 비롯한 삼촌들과 고모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들, 대가족의 틈바구니에서도 어려서부터 잠재된 꿈이 있었나 보다. 부지런한 가족들 덕에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늘 목마름에 허덕여야 했다. 책이었다. 글을 알고 난 후부터 물불을 가리지 않고 책이라면 무조건 손에 들었다. 이때부터 문학이란 놈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였고 나이가 들면서는 이루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뒤척일 때가 많았다.
농업이라는 중노동과의 싸움에서 멀어져가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온 것은 작가에 대한 미련과 보이지 않는 창작의 매료 때문이다.
시골이 아닌 도시의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치장을 좋아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상 책이나 읽고 글을 쓰겠다고 가만히 앉아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늘 분주하지만 감성만은 차고 넘치는 고향이라는 서정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밤늦도록 글에 심취해 잠을 잊기도 하면서 아침이 오면 나만의 일터로 가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어느 날 문득 작가가 되어 있었다. 꿈을 향해 갈고 닦은 지 십여 년 만이었다. 처음 기웃댄 백일장에서의 입상 후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때의 기분이란 내 생에 얼마 되지 않는 손꼽을 행복감이었다. 누가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늙었다는 증거라고 했던가. 논에 모를 심은 게 어제 일 같은데 벌써 추수가 끝나가고 있다. 복숭아밭의 네 잎 클로버도 논두렁에 핀 하얀 억새도 퇴색한 나뭇잎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내 생이 다하기 전에, 아니 기억이 아직 뇌리에서 떠나기 전에, 욕망으로 꿈틀대는 내 마음 담고 싶었다. 덧없이 사라지기 전에 흔적도 없이 지워지기 전에 무지개같이 덧없이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아름답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농촌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솔잎만을 먹고사는 송충이처럼 쉽사리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 더 풀어내기 위해 흙냄새 맡으며 살아가련다. 누구나의 가슴에 있을 순수함을 잃지 않으리라. 쉬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이 책을 엮는다.
그동안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원주문인협의 선생님들과 원주여성문학인회 식구들, 에세이포레수필문학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 전한다. 늘 다독이시며 격려해주시는 새마을회식구들과 호저면사무소, 원주시와 농업기술센터, 원주농협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 정겨운 친구 친족들, 그밖의 지인들게 고맙다는 인사 전하련다. 거친 글이지만 달콤하지만은 않은 오래 묵은 술 같은 나만의 향기를 남기고 싶다.
■ ■ ■ 발문
건강하고 착한 글
조향순(詩人)
산문은 운율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자유롭고, 압축이나 함축 혹은 비유 등의 커튼을 걷어서 그 내용이 선명하다. 그중에서 주관적인 산문을 읽으면 글을 쓰는 사람의 안이 훤하게 드러난다.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 습관, 심지어는 그 사람의 말투나 사소한 버릇까지도 넉넉하고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산문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셈이다. 모든 것을 들키게 된다.
나는 이명신을 다 보았다. 그는 우선 알뜰하고 다부진 농사꾼이다. 그리고 그는 농사와 봉사와 글 동아리 활동과 교육 등으로 아주 바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집에다 나무를 때는 보일러를 놓았으며, 마을의 부녀회장이며, 말썽꾸러기 백구와 같이 살고 있으며, 아들 둘에 결혼이민자인 딸을 얻었으며, 운전에 그다지 자신이 없으며, 버스에다 가방을 두고 오는 적도 있으며,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논두렁길을 가로질러 서둘러 돌아오면서 달과 얘기를 하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양귀비 꽃밭에서 넋을 빼앗기기도 하고, 언덕에 올라서 고향의 서정에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을 하든 그의 의식은 선명히 살아있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모남이 없이 둥그렇게 칼국수 반죽을 하다가도 원만한 가정과 사회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소한 일, 별나지 않는 일상에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하고, 다짐을 하기도 하고, 비판을 하기도 하며 그의 의식은 늘 깨어있었다.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이만하면 이명신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누구와 친하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산문에서는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친한 관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요즘 이명신을 모조리 알게 되었고, 서슴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그의 글은 너무나 건강하고 착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만큼 건강하고 착한 사람이면 알아도 괜찮겠다. 거리를 좁혀도 괜찮겠다. 불현듯 그가 사는 산골 마을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가 말하는 호박 밀 부침이라든가 수제비, 감자떡, 감자범벅 등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이명신의 남편과 친정아버지와 시동생과 친정동생은 모두 같은 초등학교 동문이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란 표현을 하고 있지만 이는 뿌리의 튼실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튼실한 뿌리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과 화합과 책임과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그는 바쁘고 힘들어도 자신 있고 즐겁게 가족을 위하고 마을을 위하여 뛴다. 그가 눈치채고 있는지 모르지만, 뿌리가 그에게는 힘의 근원이다. 튼실한 뿌리는 고사하고 아예 뿌리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그는 부유하는 현대의 군상들에게 부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촌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할 일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걱정도 많다.
만물의 소생과 동시에 시작되는 농사일, 해마다 반복되는 손에 익은 일이지만 막상 하려고 생각하면 매번 겁부터 앞선다. 어떻게 또 농사를 해나갈지 까마득하다. 닥치면 다 하게 되는 일인데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춘곤증>
논흙을 파다가 체에 걸러 모판흙을 만들어야 하는데, 올해는 할 수 없이 상토제조회사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쌀값 하락으로 어려운 농촌 현실에 이것저것 떼다가 인건비랑 재료비도 못 건지겠다. 복숭아 농사를 망쳐 일손도 줄었으니 대신 일용직 일이라도 해서 생활비라도 벌어 써야 할 판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그러나 그는 소신이 있는 농사꾼이다. 그의 야무진 다짐을 들으면 우리는, 우리의 농촌은 안심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있으므로 우리의 농촌은 건재한다.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모두들 떠나는 농촌에서 이렇게 깨어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미더운가.
도시에는 분별없는 과소비 풍조가 만연되어 간대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들이 백화점에서 외제상품을 고르고 수입농산물을 사먹을 때도 우리는 땀 흘리며 한 톨의 쌀과 한 알의 과일이라도 더 맛있고 정직하게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비록 검고 거칠어진 피부로 겉늙어 간다 해도 솔잎을 먹어야 사는 송충이처럼 우리네 본분을 잊지 않고 살 것이다. <전원일기>
그는 즐거운 농사꾼이다.
마을 갔다 돌아오면서 하늘의 달을 볼 줄도 알고, 비 오는 날에 모여앉아 노닥거리는 재미도 안다. 같은 환경에 놓여도 그 사람의 안경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불평과 불만의 안경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불평과 불만의 세상일 것이고, 귀하고 아름다운 안경으로 보면 세상에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이명신의 눈에 비친 농촌은 모두가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모두가 그의 사랑과 관심 안으로 들어온다. 농사일이 한없이 어려운 일이긴 해도 이명신의 글을 읽으면 한번 해볼 만하고, 그곳에 한번 살아볼 만하다.
마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서 보는 달빛이 그럴듯하고, 비 오는 날 모여앉아 만들어 먹는 감자범벅, 살짝 데친 뽕잎에 싸서 먹는 돼지고기 수육이 참 맛있겠다.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 오랜만에 맛보는 정서, 아직도 이런 데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사는 곳이 부럽고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논두렁길을 가로질러 서둘러 돌아오는 내 시야에, 그리움처럼 애틋해진 달은 지금 여기까지 따라와 남은 시간을 함께 하잔다. <달빛 애상>
시간은 아직 넉넉했다. 슬슬 출출해지는 속을 채우기로 하고 먹을거리의 메뉴를 논의했다.
‘호박 밀 부침을 할까? 풋고추 썰어 넣고?’
‘수제비로 하지, 오래간만에.’
‘감자떡이 어때’
저마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손쉬운 감자범벅을 해먹기로 합의했다. 한 양푼이나 되는 굵은 감자는 여러 사람이 쉽게 껍질을 벗긴 다음 큰 냄비에 담아 불에 올렸다. 옛날식으로 감자가루로 개떡도 해서 얹었다. <감자 이야기>
그런데 그는 모범농사꾼뿐만이 아니다. 농사의 달인인 그는 게다가 글쓰기의 달인을 꿈꾸면서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 계절, 지금도 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늦기 전에 그나마 아름다웠던 시절을 종이에 새겨 간직해봄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 훗날 열매가 성숙해져 꽃의 중요성을 모두들 망각하고 시든 꽃의 의미마저 실추되었을 때 그때 다시 꺼내보며 회상하리라 <양귀비 꽃밭에서 찍은 사진>
처음 그의 글을 받아 읽다가 너무나 적절하고 근사하게 붙인 제목에 놀랐다. 제목은 글의 얼굴인데, 그것은 쉽지 않다. 제목 붙이는 걸 보면 글쓴이의 수준을 짐작할 수도 있다.
농사꾼 맞아?
글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그는 농사꾼일 뿐 아니라 훌륭한 글쟁이란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곳곳에 서정적인 여유와 문학적인 감수성이 널려있다. 들판에 퍼져 있는 이른 아침 가을의 냉기도, 마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보는 달도,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꽃 재배 농장에서 출하하고 남은 국화를 한아름 안고 돌아오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 모내기를 하다가도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내는 여유로움과 늦은 저녁 벼를 수확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아름 갈대를 꺾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그러니까 그의 글쓰기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놓치지 않고 있다.
만약에 이런 서정성과 문학적인 감성이 깃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글은 참 위험하다. 자칫하다간 이미 많이 들어온 농촌 예찬이나 홍보성향의 재미없는 글이 될 수 있다. 그런 글은 대체로 겉만 번드레할 뿐 사상이나 예술성은 빈약하다. 이명신의 산문은 거기서 넉넉히 벗어났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명신의 글도 마찬가지다. 문장이 길어 내용이 조금 애매해진 경우도 있고, 어휘 선택의 범위가 아쉽기도 하고, 문장도 그리 미끈하게 빠지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아닌 이명신이기 때문에 이것은 소박함과 순수함으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아주 건강하고 착하기 때문이다.
글은 삶의 기록이다. 현실과 이상이 어우러진 그의 삶은 공중에 뜬 삶이 아니라서 좋고 메마르지 않아서 좋다. 콤바인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그도 좋고 달빛 아래 논두렁길을 걸으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풀어내는 그도 좋다.
글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이명신의 부지런함과 다부짐과 서정과 긍정의 바이러스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