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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7471454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4-05-01
책 소개
목차
1권 죽음의 바다
죽음의 물길
이순신, 그 공포의 이름
수평의 폭포
울부짖는 바다
늙은 호랑이와 젊은 표범
거대한 도박판
죽음의 아가리
사라진 기회
최후의 위기
구원군
죽음의 바다
적의 소굴
최악의 악몽
운명의 만남
진정한 공포
최고의 선물
2권 최후의 날
꿈
미래의 제왕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죽일 놈
새로운 삶
반역의 얼굴
바다 건너의 동조자
힘의 무게
죽음의 색채
돌아온 밀사
바다와 육지
추적자
새로운 부하
시작된 승부
반역의 대본
추적의 끝
마지막의 시작
최후의 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길 것도 없는 복명이 끝나자 새벽이 새삼스러웠다. 내 앞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서는 해저에 가라앉은 것처럼 무겁고 어두운 침묵이 피어났다. 이것이 조선의 모든 수군 전력이라는 말인가? 내가 가장 강했던 한산도 시절에는 장수들의 복명이 끝나려면 족히 한나절을 기다려야 했다. 200척이 넘는 함대를 휘몰아 나가면 바다가 역류하고 산천이 공포에 질려 숨을 죽였다. 엄청난 위용의 대함대가 바다를 제패할 때마다 백성들이 있는 힘껏 만세를 불렀다. 그러면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 답해 주었고 감격에 겨운 백성들이 그만 엎드려 통곡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그들에게도 내가 미친 것처럼 보일 터였다. 겨우 열세 척에 불과한 전력으로 최소한 500척이 넘는다는 적을 맞아 싸우겠다는 것이 과연 제정신이던가? 그들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도 지금 나가 싸우라는 것은 세상에 보기 드문 미친 짓이었다.
“듣거라! 필사즉생이요, 필생즉사이다! 죽을 결심으로 싸우는 자는 반드시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뿐이다!”
일본수군에게 이순신의 존재는 그 자체로 치가 떨렸다.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서해를 통한 보급이 원활했을 것이고, 조선은 명나라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졌을 터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장담했던 명나라의 정복도 충분히 가능했다. 수월하게 정복한 조선에서 전력을 증강한 다음 강력한 수군을 앞세워 서해를 건너 북경을 바로 공격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허약한 명나라가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인 데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국경까지 소란해지면 그들도 끝장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이순신이 없었더라면……’이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순신은 인간으로 분류되기 어려웠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단칼에 수백 수천을 목 베고 바람과 파도마저 자유롭게 부린다면 그게 과연 사람이겠는가? 이순신과 마주친다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정설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 부산에서 노를 젓는 자 가운데 하나가 이순신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배에서 뛰어내려 쓰시마까지 헤엄쳐 도망친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이순신과의 전투를 맡은 580여척의 함대가 앞서고 200여 척의 수송함대가 뒤따랐다. 사상 최대의 함대가 바다를 가득 메우고 항진하는 광경은 엄청나다는 것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온통 바다를 뒤덮은 함선들을 장식한 붉고 푸른 비단의 화려한 색채에 바다가 단풍이 든 것처럼 휘황하고 현란했다. 그 틈에서 살벌한 창검이 물고기 비늘처럼 번득였다.
- 1권
소리 내어 통곡할 수도 없었다. 나의 머릿속은 바짝 마른 진흙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정신도 마른 낙엽처럼 버석거렸다. 몸을 이루어낸 진액이 끊이지 않는 눈물줄기로 뿜어졌다. 끅끅대며 숨죽인 울음을 토할 때마다 생명이 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밖에 있는 병사들이 들을까봐 소리 죽여 울 수밖에 없는 나의 내면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차라리 크게 통곡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지만, 나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가죽 손잡이를 슬쩍 비틀어 뽑자 칼날이 기다렸다는 듯 빠져나왔다. 등잔 빛에 반사되고 눈물에 희석된 칼날은 비현실적인 무기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목으로 가져갔다. 나의 행동은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 내 스스로 나의 목을 베어야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갑자기 보따리를 번쩍 치켜들어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것이 급격한 포물선을 그리다가 바다로 떨어질 때 나는 미칠 듯이 웃었다. 원균과의 치열했던 애증과 증오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나보다 먼저 죽은 아들의 어지러운 환영과도 이별이었다. 내가 겪었던 모든 고통과 나로 인해 겪어야 했던 다른 자들의 고통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나라와 백성이라는 중량으로 그토록 무겁게 짓눌렀던 의무에게서 자유롭고 싶었다. 나의 바다는 인간의 피와 고기로 그득하지 말아야만 했고 가치 있는 삶이 풍족하게 건져져야만 했다.
-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