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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공자/논어
· ISBN : 9788997714285
· 쪽수 : 447쪽
· 출판일 : 2014-05-1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9
신편《대학》 17
●《대학》문을 열며 19
[상편] 삼강령(三綱領)
제1장 총론 *동학지도(東學之道) | 26
제2장 명명덕(明明德) *대음지성(大音祗聲) | 42
제3장 친민(親民)-1 *절차탁마(切磋琢磨) | 50
제4장 친민(親民)-2 *천명미상(天命靡常). 군주민수(君舟民水). | 56
제5장 지우지선(止于至善) *방기(邦畿). 민생 | 96
[하편] 팔조목(八條目) 103
제1장 총론 *청정(淸靜). 국가(國家). 《대학》의 뿌리 | 104
제2장 격물치지(格物致知) ?격치(格致)논쟁과 보망문(補亡文) | 126
제3장 성의(誠意) *성(誠)과 신기독(愼其獨). 천지비(天地否)? | 142
제4장 정심수신(正心修身) ?관서유감(觀書有感) | 156
제5장 수신제가(修身齊家) *가족 | 166
제6장 제가치국(齊家治國) *당 태종의 거울 | 170
제7장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맹자의 치국방법. 혈구지도(?矩之道)
?홍범구주(洪範九疇). 구경(九經) | 188
초간(楚簡)《오행》 215
●《오행》문을 열며 217
제1편 총론 221
제1장 오행(五行) *성(誠)?성(性)?성(聖) | 224
제2장 덕선(德善) *대덕자필수명(大德者必受命) | 236
제2편 고뇌와 사유 241
제3장 고뇌(苦惱) *택수곤(澤水困) ? |
제4장 시행(時行) *군자와 성인. 군자와 성인, 남북통일의 시행(時行ㅣ 248
제5장 청정(淸靜) | 오행 삼매경ㅣ 254
제6장 고원(高遠) | 제갈량의 명언ㅣ 258
제7장 인(仁) | 순미차인(洵美且仁)ㅣ 264
제8장 지(智) | 부저유어(釜底遊魚)ㅣ 270
제9장 성聖) | 맹자의 오행ㅣ 274
제3편 신기독(愼其獨)ㅣ 277
제10장 신기독(愼其獨)-1 | 정약용의 신독(愼獨)ㅣ 280
제11장 신기독(愼其獨)-2 | 월영만천(月映万川)ㅣ 284
제12장 금성옥진(金聲玉振) | 공묘(孔廟)의 금성옥진ㅣ 288
제13장 옥음(玉音) | 자성명(自誠明)과 자명성(自明誠)ㅣ 294
제4편 성지인의례(聖智仁義禮)ㅣ 297
제14장 불성부지(不聖不智)| 성인(聖人)ㅣ 300
제15장 불인不仁) | 양금택목이서(養禽擇木而栖)ㅣ 304
제16장 불의(不義 | 엄이도종(掩耳盜鐘)ㅣ 308
제17장 무례(无禮) | 극기복례(克己復禮), 송양의 인(仁)과 아수라의 의(義)ㅣ 312
제5편 명명(明明)ㅣ 319
제18장 총명(聰明) | 군자도(君子道)ㅣ 322
제19장 견문(見聞) | 명명(明明)ㅣ 326
제20장 방가邦家) | 토사구팽(兎死狗烹)ㅣ 330
제21장 화즉동和則同 | 화이부동(和而不同)ㅣ 334
제22장 애인(愛人) | 묵비사염(墨悲絲染)ㅣ 338
제23장 정의(正義) | 정의란 무엇인가ㅣ 342
제24장 예절(禮節) | 거리감, 진짜 친구ㅣ 350
제6편 선덕(善德)ㅣ 357
제25장 간닉簡匿) | 도행역시(倒行逆施)ㅣ 360
제26장 의인義仁) | 자베르경감의 칼날ㅣ 364
제27장 집대성(集大成) | 공자의 집대성, 바다ㅣ 368
제28장 동즉선(同則善) | 이목지관(耳目之官)과 심지관(心之官), 안빈낙도(安貧樂道ㅣ 378
제29장 목이(目而) | 동중서(董仲舒)의 오행, 숭례문(崇禮門)과 태극기ㅣ 384
제30장 천시(天施) | 마음의 여행ㅣ 392
제31장 호덕(好德) | 삼강오륜 그리고 오행, 대동(大同)사회와 소강(小康)사회ㅣ 396
문을 닫으며ㅣ 410
[부록]
1. 초간연구에 따른 《대학》의 본모습 복원ㅣ 415
2. 대학장구서ㅣ 433
3. 초간(楚簡) 《오행》 사진ㅣ 437
4. 역사연대표ㅣ 446
저자소개
책속에서
제3편 신기독(愼其獨)
3편은 오행이론의 기초와 방법론에 관하여 상(上:天)에서 하(下:人)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오행의 내외문제를 두 가지 각도에서 논한다. 하나는 오행이 내적으로 형성된 경우와 형성되지 않은 경우로 나눈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오행의 본질을 내외로 나누어 본 점이다.
<聖.智.仁>은 내적인 것으로 보고, <義.禮>는 외적인 것으로 보았다. 옛 사상가들은 내적인 것을 옥진(玉振)이라 하고, 외적인 것을 금성(金聲)이라 했다. <聖.智.仁> 모두가 덕의 성품인데, 聖은 옥음이고, 智.仁은 옥색이라 했다. 聖이 오행의 최고위 핵심이고 그 다음에 智, 그 아래에 仁이 위치한다.
<義.禮>는 德의 외적 성품으로 오행 중에서 하위 개념이다. 義를 맹자는 내적[心]으로 보고, 순자는 외적[行]으로 보았다. 이편에서는 내외문제에 중점을 두고 논한다. 넓게 보면 내와 외는 떨어져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통되어 연결된 하나이다.
제10장 신기독(愼其獨)-1 <죽간번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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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숙한 군자님, 그 모습 한결같아요.”
,
,
<언제나 변함없는 德人의 모습으로>
한결같아야지만
능히 군자라 할 수 있으니,
.
(군자는 외로운 수행을 통하여)
혼자서 그것[오행:德]을 습득함에 대해서 경외(敬畏)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정약용의 신독]
“淑人君子, 其儀一也”는 《시경》<조풍(曹風).시구(?鳩)>에 나온다.
백서본에는 ‘愼其獨也’ 앞에 ‘君子’라는 두 자가 있다. ‘신기독(愼其獨)’은 《천명》 제1편 제2장과 《대학》 하편 제3장에도 나오는데, 역대 유가들이 아주 중요시한 용어다.
지금까지는 ‘신기독(愼其獨)’에서 ‘其’자를 뺀 ‘신독(愼獨)’만으로 해석해왔다.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홀로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라고 풀이해왔다. 그리고 유가들은 이를 가장 중요한 수양방법으로 여겨온 것이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天, 즉 상제와 귀신은 형상도 소리도 없는 존재이나 또한 강림하여 항상 인간들을 낱낱이 굽어보고 있으니,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 암실이나 혼자 있을 때에도 계신공구(戒愼恐懼)하는 것이 바로 ‘신독(愼獨)’인 것이다.”라고 ‘天’과 ‘귀신’과 관련하여 신독을 설명하고 있다.
또 “요즘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 과연 그것이 있는 것인가 의심하면서 아득히 알 수 없는 곳에다 버려둔 까닭에 인주(人主)의 경외(敬畏)하는 공부와 학자의 신독의 의의가 모두 성실하지 못한 데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독의 공부는 귀신의 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귀신의 덕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정약용의 설명은 ‘수양을 위한 심득사항’으로는 새겨 볼만한 내용이지만, 귀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신독을 설명함으로써 본뜻을 왜곡하고 있다. 귀신에 관한 내용은 선진(先秦)유가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약용은 ‘신기독(愼其獨)’ 중의 ‘其’자의 의미를 간과한 설명이다.
‘신기독(愼其獨)’에 관한 곽기교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군자는 누가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왜 계신공구(戒愼恐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유가들은 모든 것을 자신 속에서 찾기 때문에 자아수양(自我修養)과 자아실현(自我實現)을 강조한다. 군자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변함없이 성심(誠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계신공구 할 필요성이 없다는 말이다.
솔성(率性)의 道는 노력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에 저절로 내재되어 있기에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성찰(省察)이라는 과정도 불필요하고, 신독의 공부도 불필요하다. 홀로 있을 때 계신공구를 해야 하는 사람은 군자의 수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다.
둘째, 군자의 道는 비이은(費而隱:작용은 무궁하나 모습은 은미함)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도 모르는 부분이 있고,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물며 군자는 道에 관하여 모르거나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천명》 제4장
즉, 보이지 않는 道가 있고 또 들리지 않는 道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군자는 이러한 道에 대하여 겸허하게 계신공구를 해야 하며, 道를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셋째, ‘신기독(愼其獨)’에서 ?은 타동사이고 其는 <오행. 도. 덕>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목적어이며, 獨은 <홀로. 혼자서. 오로지>라는 부사 용법이다. 道는 은미하기 때문에 小人은 알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으나, 오로지 군자만이 혼자서[獨] 수신하며 습득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말이다. ‘愼其獨’을 「혼자서 그것[오행:德]을 습득함에 대해서 경외(敬畏)의 마음을 지닌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제11장 신기독(愼其獨)-2 <죽간번호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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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경》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 바라보며,
빗물처럼 눈물을 흘리네.”
,
.
(제비가) 깃털을 가지런히 정리하지 못한 채 나르면,
그 다음에 큰 슬픔에 이른다.
[.]
군자는 혼자서 그것을 획득하여 실천하는데 경외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제비가 깃털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날아야 하듯, 군자도 미리 오행의 덕목을 마음속에 쌓아 두고 실천해야 한다.)
?“瞻望弗及(첨망불급), 泣涕如雨(읍체여우)”: 《시경》<패풍(?風)>에 나온다.
?差池(차지): 가지런하지 못하다. 때를 놓치다. ‘池’는 ‘齊(제)’의 가차자.
*‘參差不齊(참차부제: 들쑥날쑥한 모습)’의 뜻이다.
[월영만천(月映万川)]
제비가 창공을 나르기 전에 홀로 외롭게 깃털을 가지런히 정리하듯, 군자도 오행의 도를 터득하려면 오래 동안 홀로 수양하는 외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경지에 오른 다음 되돌아보면, 처음 쉽게 보았던 오행의 도리가 대단한 진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그래서 저절로 경외의 마음이 생겨나오는 것이다.
신기독(愼其獨)의 ‘其’자는 <오행.덕.도>를 가리키는 대명사다. 그것은 군자가 찾고 있는 진리의 보물이다. 마치 물에 비친 달의 참 모습과 같다. 잔잔한 호수에 비친 달의 모습은 둥글게 보이고, 쫄쫄 흐르는 물이나 파도치는 바다에 비친 모습은 형태도 없이 일그러진 모습이다. 천하의 물위에 비친 달 모습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그러나 나타난 모습의 배후에는 하나의 달만이 있을 뿐이다. 이를 「월영만천(月映萬川)」이라 한다.
물에 비치는 달이 아니라 구름 뒤에 있는 달의 참 모습을 보듯이, ‘오행’의 진리를 깨달아 그 모습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 있을 때의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주희는 이를 ‘이일분수(理一分殊)’라 했다. 만물의 근본은 모두 같은 하나의 이(理)인데, 나타나는 현상[작용]은 각각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이에 대립되는 개념을 ‘기일분수(氣一分殊)’라 한다.
제12장 금성옥진(金聲玉振) <죽간번호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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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자가 행하는 善은
시작이 있고 종료가 있다.
,
, .
군자가 행하는 德은
시작이 있고 종료가 없다.
,
.
금성옥진(金聲玉振)하는 사람이
德있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금성으로 소리를 내지만, 최종적으로는 해화(諧和)의 옥음을 내는 사람이 德있는 사람이다>
?金聲(금성): 쇠소리. 겉에서 나오는 소리. 사행(仁義禮智)이 어울리는 소리. 善.
?玉振(옥진): 마음속에서의 옥의 울림. 서로 다르게 울리는 여러 소리[사행의 소리]가 수렴되어 우아한 화음을 내다. 옥은 <道, 誠, 聖, 德>을 상징한다.
※振(진): 수속(收束)하다. 수렴(收斂)하다. ⇒ 금본 《중용》제26장 “(땅이) 황하와 황해를 안고서도 물이 새지 않는다<振河海而不洩>”에 나오는 ‘振’과 같은 뜻이다.
[공묘의 금성옥진]
《오행》이라는 죽간 책은 맹자보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자사의 작품이다. 이 책에서 德과 善의 개념을 명쾌하게 구분하고 있다.
“금성(金聲)은 善이고 옥음(玉音)은 聖이다. 善은 인도(人道)이고 聖은 천도(天道)이다. 오로지 덕(德)이 있는 사람만이, (마음에서 옥음, 즉) 聖이 울려나와 (밖으로) 善을 실현한다. … 오행은 인의예지성(仁義禮智聖)이다. 이 오행의 화(和: 諧和)가 德이고, 사행(四行: 仁義禮智)의 화(和: 調和)가 善이다”라고 쓰고 있다. 해화(諧和)는 조화(調和)보다 한 차원 높은 의미가 있다. ?
오행 안에 ‘信’이 아니라 ‘聖’이 들어 있다. ‘信’은 동중서(董仲舒)가 착각으로 쓴 것이 전해져 내려왔다는 말이다. 김충열 교수는 오행에 ‘聖’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천고(千古)의 수수께끼를 푼 것’이라고 감탄한 바 있다.
이를 보면, 금성(金聲)은 단순하게 몸에서 나는 조화된 소리이며, 이 소리가 善이다. 옥진(玉振)은 마음속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울림이다. 이 울림이 해화된 음을 옥음(玉音)이라 하고, 이 옥음이 德이다. 善은 사행(四行: 仁義禮智)의 화라고 했는데, 智에서 인의예(仁義禮)의 품성이 파생되어 나오므로 智가 곧 사행을 대표하는 품성인 것이다.
德을 구성하고 있는 오행 안에는 핵심 요소인 聖이 들어 있다. 이 聖은 성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료’가 없다. 德은 유시무종(有始無終)이다. 금성옥진(金聲玉振)의 품성을 지닌 유덕한 군자가 성인인데 공자가 바로 성인이라는 것이다.
‘금성옥진(金聲玉振)’은 《맹자》<만장편하>에 나오는 구절 중에도 들어 있다. 공자는 고대 성인(聖人)들의 장점을 집대성(集大成)하여 모두 지니고 있는 성인 중의 성인이라는 점을 찬미하는 글이다.
“공자는 (여러 성인의 장점을 모아) ‘집대성(集大成)’한 분이다. 집대성은 금성과 옥진(金聲而玉振)이다. 금성[善]은 먼저 이뤄지고, 옥진[德]은 나중에 이뤄진다. 처음에 이뤄지는 것은 지(智)의 일이고, 나중에 이뤄지는 것은 성(聖)의 일이다. 智는 교(巧: 정교함. 지혜)라 할 수 있고, 聖은 력(力: 추진력. 에너지)이라 할 수 있다. <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 金聲也者, 始條理也; 玉振之也者, 終條理也. 始條理者, 智之事也; 終條理者, 聖之事也. 智, 譬則巧也; 聖, 譬則力也.>”
시중에 나온 책을 보면 이 구절의 해석에 오류가 있다. ‘금성옥진(金聲玉振)’을 종(鐘)과 옥경(玉磬)이라는 악기를 타종함에 비유하여 연주의 시작과 종료를 알린다는 뜻으로 잘못 설명하고 있다. 이는 본뜻에서 벗어난 설명이다. ‘금성옥진(金聲玉振)’은 ‘善과 德’의 뜻이다. 공자가 집대성(集大成)한 것은 고대 성인들의 善과 德이라는 품성이고, 이를 모두 한 몸에 지닌 성인이라고 맹자가 공자를 찬미하는 글이다. <*참조: ⇒ 제6편 제3장> ?
공자가 ‘처음[始]’에는 금성처럼 善의 소리를 내었지만, ‘최종[終]’에는 옥음처럼 德의 소리를 내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善으로부터 최종 목표인 德에 이르게 하는 에너지는 하늘이 부여해주는 ‘聖’이다. 종조리(終條理)의 ‘終’은 ‘종료’라는 뜻이 아니라, ‘최종’의 뜻이다. ‘집대성’이란 금성[善]이 모여서 옥음[德]으로 대성(大成)했다는 말이다.
이웃을 돕는데, 형식적으로 돕거나 별다른 관심 없이 도와주는 행위도 선행(善行)이라 한다. 이는 적선(積善)의 하나이고 수양하는 방법은 되겠지만, 덕행(德行)은 아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여겨 마음으로부터 옥음이 울려나와 성심(誠心)으로 도와주는 행위가 덕행이다. 선행은 가진 자들이 쉽게 할 수 있지만, 덕행은 수양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제13장 옥음(玉音) <죽간번호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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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金聲)은 善이고,
옥음(玉音)은 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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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은 인도(人道)이고,
옥음은 천도(天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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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德이 있는 사람만이,
금성을 내고 또 옥을 울릴 수 있다.
?玉音(옥음): 玉振(옥진)으로 나는 음이 옥음(玉音)이다. 옥음이 곧 ‘聖’이다.
德은 <仁義禮智聖>의 다섯 가지가 어울린 화음(和音)인데, 聖이 핵심 요소이다.
[자성명(自誠明)과 자명성(自明誠)]
‘聖’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용어다. 이는 《천명》에 나오는 ‘성(誠)’과 통하는 개념이다. 誠은 천지[우주. 神]의 혼이다. 誠이 사람의 내면에 들어와 나타나는 품성을 聖이라 하고, 聖의 품성을 지닌 사람을 聖人이라 부른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수양과 학습을 통하여 이룰 수 있는 품성으로 人道이지만, 聖은 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해주는 天道이다. 옥음(玉音)은 聖의 작용으로 仁義禮智가 함께 공진(共振)하며 내는 화음이니, 옥음이 곧 聖의 목소리라 하겠다.
《천명》에 나오는 ‘자성명(自誠明)’은 오행이 울려 나오는 옥음이다. 이를 德이라 한다. 그러나 자명성(自明誠)은 수양과 학습을 통하여 마음을 밝게 해서 誠에 이르려고 하는 노력이며 공부를 뜻하는 말이다. 이를 善이라 했다. 지선(至善)의 경지에 올라도 하늘로부터 聖을 부여받지 못하면 德이 아니다.
《대학》의 ‘명명덕(明明德)’은 바로 이 자명성(自明誠)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선(至善)의 경지에 올라 오래 머무르도록 함이 최상의 목표인 것이다. 이를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 했다. 통치자는 덕인(德人)이 되어 덕정(德政)을 펼치는 것이 목표이지만, 민중은 지어지선(止於至善)이 목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