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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7763573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4-06-10
책 소개
목차
·추천글
·머리글
Chapter 1. 나의 서사
나의 고향 나의 뿌리 17 | 아버지와 어머니 20 | 장녀로 태어나서 23 | 초등학생 이선희 27 | 평범한 사춘기 여학생 29 | 여고 시절 31 | 왜 영문학을 선택했나요 33 | 여대생이 되다 34 | 빛났던 청춘 36 | 청춘의 이상과 현실1 37 | 청춘의 이상과 현실2 39 | 하늘색 원피스 41 | 메이데이(May day) 축제 42 | 영학관 생활 44 | 교생실습 46 | 졸업 47 | 선생님의 길 48 | 은행원이 되다 50
Chapter 2. 여자의 일생
결혼의 전주곡 55 | 나의 삶 나의 선택 56 | 청년 이천수 59 | 신혼생활 64 | 셋방살이와 남편의 재발견 66 | 남편과 문패 69 | 아빠의 길 엄마의 길 71 | 날림공사 집 73 | 어머니와 오 남매 74 |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 76 | 남편은 암행어사 78 | 분식집 사장님이 되다 80
Chapter 3. 성장과 발전
부부의 길 87 | 박봉 공무원 아내의 경제학 90 | 남편도 모르는 시간 92 | 우리 집 94 | 운전면허 시험 96 | 막내딸 출생 97 | 문교부로 이동한 남편 99 | 가출 101 | 분노의 경제학 105 | 한꺼번에 두 주인을 107 | 백년손님 109 | 어머니와 나 111 | 나의 안식년 113 | 잊지 못할 한계령 115 | 나의 삶 나의 사랑 117 | 억척 생활인으로 돌아온 나 122
Chapter 4. 남편 이천수
이천수의 승부수 129 | 빛과 그림자 130 | 정당인 아내의 삶 132 | 최연소 국립도서관장 133 | 외로운 공직자의 의로운 수칙 134 | 새로운 소망 136 | 영광의 뒤안길(교육부 차관) 138 | 청와대 초청 만찬 140 | 장관직을 고사하다 142
Chapter 5. 새로운 출발
잔디밭이 있는 단독주택 147 | 여행다운 첫 여행 149 | 대학 총장 이천수 151 | 남편의 미국 출장 153 | 뉴욕에서 155 | 위스콘신대학으로 가는 길 155 | yes가 불러온 만찬 참사 157 | 텍사스A&M대학의 추억 158 | 공(公)적 예절과 사(私)적 친절 159 | LA에서 만난 사람들 161 | 하와이대학과 하와이퍼시픽대학에서 162 | 일본 구마모토 여행 163 | 도쿄에서 165 | 오사까 전 총영사 서현섭 박사 166 | 천안대 국제대학원에서 공부하다 167 | 총장 남편과 졸업생 아내 169 | 큰딸 정원의 결혼식 170 | 아들 상규의 결혼식 174 | 막내 정진의 결혼식 179 | 정진의 의사 오디세이 181 | 우리 집 우리 가족 189 | 대진대학 총장 취임식 192 | 대순진리회 194 | 총장공관 196 | 공유공간의 의미 197 | 대진대학교와 중국의 교류 199 | 상해 여행 201 | 김구 선생의 손자를 만나다 204 | 하얼빈대학 방문길 204 | 백두산 가는 길 206 | 하얼빈대학 208 | 2010 상하이 엑스포 참관 209 | 중국관을 관람하며 211 | 한국관과 북한관을 돌아보며 212
Chapter 6. 삶의 뒤안길
두 번째 미국 여행 217 | 롱아일랜드의 하숙집 219 | 황당한 송금 사건 220 | 정진의 미국 생활 221 | 큰딸과 뉴욕을 걷다 223 | 사위의 졸업식 225 | 시카고의 명사가 된 친구 부부 227 |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옐로스톤까지 230 | 포천을 떠나며 233 | 삶의 뒤안길 235 | 명도소송 236 | 주택 원상 복구 사건 237 | 낡은 주택과 월세 243 | 손녀의 중학교 입학 246
Chapter 7. 내가 살아가는 방식
남편의 부재 251 | 내 인생의 멘토 253 | 떡 본 김에 제사를 255 | 분노의 경제학 259 | 시간의 경제학 261 | 신사의 아내 264 | 공유의 경제학 267 | 오지랖이 넓어서 270 | 나의 삶에 포상을 282 | 경주 소정의 축소판 용인 아파트 285
Chapter 8. 나의 뿌리인 경주 소정과 풍산 오미마을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291 | 아버지 293 | 성묘. 고향으로 가는 길 294 | 성묘. 뿌리를 찾아가는 길 296 | 성묘. 여인의 삶 298 | 포천의 사랑방 300 | 아버지와 꽃 302 | 성묫길 자매들 303 | 경주 이씨 소정의 뒤안길 305 | 소정 경주 이씨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307 | 내 고향 경주 소정마을 313 | 양동 할아버지 320 | 양동 아주머니 324 | 양동 아저씨의 미수연 326 | 나의 외가(外家) 오미마을과 풍산 김씨(豊山 金氏) 330
나는 꿈꾸는 낙타_내지_1-424p(별색2도).indd 12 2024-05-22-수 오전 12:21:04
Chapter 9. 사노라면
수익이 엄마 339 | 이덕로 교수 343 | 극우 재일 교포의 모국 나들이 347 | 경북여고 37회 졸업 25주년 사은회 353 | 재경 경북여고 총동창회 355 | 상록회 회원이 되다 361 | 적십자 봉사활동 363 | 남편이 주례를 서다 365 | 주례자는 연출가 366
Chapter 10. 노년의 생활
손자들 이야기 371 | 내 몸이 왜 이렇게 가볍지? 378 | 남편의 재발견 380 | 회색 비닐 가방과의 동행 382 | 우리 집은 물류센터 385 | 며느리의 초대 386 | 코로나 펜데믹과 가족의 재발견 389 | 아내도 쉬고 싶다 390 | 나 자신을 위하여 393 | 나만의 방 395 | 나의 취미는 라인댄스 397 | 라인댄스 401 | 나의 시가(媤家)-고성 함안 이씨의 간략사 403 | 시댁 사람들 412 | 남편의 은퇴와 고향 414
·맺음말
·사진첩
저자소개
책속에서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하는 큰형님 독립자금 뒷바라지를 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했다. 광복군 사업 총괄을 맡은 큰종조부는 경주 최부자 댁과 함께 막대한 독립자금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금 모금이 여의치 않으면 우선 당신들의 가산과 금품을 내놓게 되었다. 광복군 조직 안에서 비밀활동을 한 큰종조부는 셋째 동생인 할아버지에게 집안 살림을 맡기기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형님이 벌여 온 사업에 보증을 섰다. 독립자금이나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할아버지 토지를 매각하는 일이 잦아지자 가산은 나날이 기울어갔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꾸리던 조부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므로 큰형님이 어려울 때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경제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해방 후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시행한 토지개혁과 1950년 농지개혁으로 우리 집안 재산은 더 많이 줄었다.
-‘Chapter1. 나의 서사’ 중에서-
결혼하기 전 나는 공무원 월급이 그렇게 적은지 전혀 몰랐다. 내 주위에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급만 받으면 곧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알려는 생각도 없었고, 국무총리실 근무가 대단한 직책으로 생각했다. 남편은 결혼 전 겨우 1년 반 공직생활을 하고 이듬해 4월에 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하던 중 결혼했기 때문에 거의 빈털터리였다. 다만 하객이 많아서 결혼축의금이 다소 있었을 뿐이다.
제대 후 국무총리실에서 1년 더 근무했어도 아직 월급은 적었다. 그러나 든든한 처가를 둔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니 월급날이 되어도 외상값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국무총리실에 복직한 후 그가 내민 첫 월급봉투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결혼 후 처음 받는 것이라 은근한 기대로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는데 누런 봉투 겉봉에는 7,400원이 씌어 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며 자세히 보니 기본 공제금액 몇 개가 적혀 있었지만, 금액이 적기는 매한가지라 크게 실망했다. 그동안 공무원에게 지녔던 환상을 떨쳐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어쨌든 결혼했고 아기도 있으니 앞날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진급을 하고 경력이 쌓이면 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월급날이 며칠 지나지 않아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용돈이 벌써 바닥난 것이었다.
-‘Chapter2. 여자의 일생’ 중에서 -
주식 하강 국면에서 맞는 상실감과 활황 때의 성취감이 교차하며 나는 점점 평정을 찾게 됐다. 그때는 아직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이어서 시황 설명이나 신문 뉴스에서 얻는 정보를 바탕으로 매수와 매도 시점을 분석했다. 차츰 규모가 커지자 친구들과 주식 정보를 교환했다. 시황 설명이나 신문 뉴스를 잘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ㅇㅇ증권 ㅇㅇ지점에 원정을 갔다. 내 친구 ㅇㅇ이 그 동네의 주식 스타가 최고라며 그 객장으로 나를 불러냈다. 주식 공부와 친구를 만나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지 않았다.
투자한 주식이 여러 종목으로 늘어났다. 주력주에 심혈을 기울이며 여타 주식은 느긋한 마음으로 관찰했다. 그렇게 하나씩 매입하다 보니 내 계좌는 어느덧 ‘주식백화점’이 되었다. 주력주인 트로이카 주식, 즉 건설, 증권, 은행 주식들이 최고가를 갱신하던 어느 날, 나는 황급히 전량 매도 주문을 했다. 최고가로 체결되었다. 같은 종목의 주식에 투자한 친구에게도 지금이 정점이라며 빨리 매도할 것을 권유했다. 친구는 과감하게 결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주식은 나날이 하강 곡선을 그렸다. 친구는 안타깝게도 최대 수익을 올릴 기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계속 떨어지는 주식을 바라보며 상승 기회를 기다렸지만 오랫동안 오르지 않았다.
주식투자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우량한 주식을 매입하고 멀리 보는 방법이 물론 좋다. 그러나 잘못하면 완전히 기울어지는 회사 주식을 움켜쥐고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는 말이 격언처럼 전해오고 있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주식에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매사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Chapter3. 성장과 발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