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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명상/수행
· ISBN : 9788998742300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4-09-2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005
제1편 선(禪)의 경전
선의 경전
·선경과 선사상 … 017
1. 선법요해 … 021
2. 수행도지경 … 025
3. 안반수의경 … 028
4. 좌선삼매경 … 031
5. 선비요법경 … 035
6. 관무량수경 … 039
7. 금강경 … 042
8. 유마경 … 046
9. 승만경 … 049
10. 화엄경 … 053
11. 열반경 … 056
12. 능가경 … 060
13. 해심밀경 … 064
14. 원각경 … 067
15. 능엄경 … 071
16. 금강삼매경 … 074
제2편 중국의 선어록
중국의 선어록
·선어록의 분류 … 087
·선어록의 출현 … 088
·선어록의 완성 … 090
1. 이입사행론 … 094
2. 돈황 출토 선문헌 … 098
3. 신심명 … 103
4. 한산시집 … 111
5. 입도안심요방편법문 … 115
6. 절관론 … 124
7. 수심요론 … 128
8. 육조단경 … 131
9. 증도가 … 137
10. 신회어록 … 142
11. 역대법보기 … 147
12. 마조어록 … 152
13. 조주어록 … 156
14. 전심법요 … 159
15. 참동계 … 162
16. 동산어록 … 165
17. 선원제전집도서 … 168
18. 임제어록 … 172
19. 운문어록 … 175
20. 조당집 … 178
21. 임간록 … 182
22. 벽암록 … 185
23. 진헐어록 … 188
24. 굉지어록 … 192
25. 대혜어록 … 195
26. 인천안목 … 199
27. 십우도 … 203
28. 선요 … 208
29. 허당집 … 211
30. 법문서귀 … 216
제3편 한국의 선어록
한국의 선어록
·한국선과 선어록 … 223
1. 금강삼매경론 … 227
2. 순지어록 … 231
3. 수심결 … 236
4. 진각어록 … 240
5. 선문보장록 … 243
6. 종문원상집 … 249
7. 남명전화상송증도가사실 … 252
8. 중편조동오위 … 256
9. 불조직지심체요절 … 259
10. 태고어록 … 263
11. 나옹어록 … 266
12. 선문강요집 … 270
13. 금강반야바라밀경윤관 … 274
14. 조원통록촬요 … 279
15. 십현담요해 … 283
16. 선가귀감 … 286
17. 선문오종강요 … 290
18. 무경실중어록 … 294
19. 선교대변문 … 298
20. 천경집 … 302
21. 선문수경 … 306
22. 선문사변만어 … 312
23. 운봉선사심성론 … 315
24. 선학입문 … 319
25. 선문촬요 … 322
26. 경허집 … 326
선종사의 몇 가지 논쟁… 330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지자(知者)는 마음으로 언설을 이해하고 수용하지만, 부지자(不知者)는 언설의 그림자를 통해 마음을 이해하고 거기에 국집한다. 따라서 언설을 통하여 마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그 언설을 초월할 수가 없어 얽매이지만, 마음으로 언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는 그 언설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초월한다. 만약 언설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언설을 이해했다고 할 수가 없고 마음을 초월하지 못하면 마음을 이해했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설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마음의 초월을 터득했다 할 수가 있고, 마음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깨침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언설과 마음의 상관성은 선(禪)의 입장에서 늘상 부딪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선을 마음에 대비한다면 언설은 경전에 대비할 수가 있다. 그러한 마음과 경전의 관계성이 가장 조화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불법의 선과 교법이다. 따라서 선과 교법은 이이불이(二而不二)이고 일이불일(一而不一)이다. 이에 일반적으로 선의 종지를 나타내는 말로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언구는 선과 언설 곧 선과 문자의 관계를 나타낸 말로 선의 본질이 깨침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은 달리 불리문자(不離文字) 교내상전(敎內相傳)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과 언설의 상관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소위 선어록(禪語錄)이다.
선어록이란 선과 관련된 일체의 문헌을 가리키는 말로, 그 문자가 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선을 안내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선을 통해 길이 전승돼 온 객체이기도 하다. 가령『능가경(楞伽經)』에서는 깨침을 얻은 이후로 오늘 그리고 반열반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도 설하지 않았음을 말했고, 또한『원각경(圓覺經)』과『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하여 말했던 것은 곧 진실한 깨침은 언설로 설해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또한 설령 설해진다 해도 그것을 이해할 만한 안목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대반야경(大般若經)』에서는 제일의제(第一義諦)에는 언설이 없고 오직 세속제(世俗諦)에 의한 언설만이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선이란 어디까지나 이렇게 체험의 실상이고 체험의 가르침이며 그 전승이기 때문에 선자의 심경은 본래 상식을 떠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는 어떤 문자와 언설로 표현해도 그것이 모두 깨침을 전하는 문자이자 진리를 표현한 문자가 된다. 따라서 이미 일체의 사사물물이 다 그와 같은 소식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자각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흔히 말하는 임제의현의 할(喝)과 덕산선감의 방(棒)도 할과 방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경우에 조사의 권위는 부처와 동일하게 간주되었다. 바로 그 때문에 조사의 언행 그대로가 어록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조사들의 언설과 행위를 기록한 선어록이었다.
그러므로 선은 그대로 언설이고, 또한 궁극적으로 언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언설 그대로가 선은 아니다. 언설은 선의 그림자이고 수단에 불과하다. 언설을 통한 선은 철학이고 관념이며, 유희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언설만을 통해서 선을 터득하려 한다면 결코 소기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선은 반드시 언설을 필요로 한다. 선이 진정한 선이 되기 위해서는 언설을 통한 이해와 언설을 통한 전승이 가능해야 한다. 언설을 통해서 선은 진정한 선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설 그대로가 선은 아니지만 선은 그대로 언설일 수 있다. 나아가서 반드시 언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곧 언설이 선을 만나야 하는 필연성이다. 선과 언설은 만나야 한다. 각각 존재해서는 선이 진정한 선이 될 수 없다. 또한 언설은 선을 만나야만 새로운 생명을 갖는다. 생명이 있는 언설은 그대로 선이다. 더 이상 선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언설을 지닌 선은 살아 있다. 선은 언설을 통해서 부처가 되고 중생이 되며, 꽃이 되고 물이 되고, 시간이 되고 공간이 되며, 삶이 되고 죽음도 된다. 왜냐하면 선은
이것저것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땅에서 넘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싫어 땅을 멀리하면 끝내 넘어진 땅에서 일어날 수 없다. 반드시 넘어진 땅을 의지해야 일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언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언설에 얽매이지 않는다. 언설을 딛고 일어선다. 언설을 딛고 일어설 때만 비로소 언설을 초월할 수 있다.
선을 수반하는 언설과 언설을 통한 선이야말로 곧 선이고 선학이다. 그래서 선학은 선의 학문이고 학문의 선이며 선적인 학문이고 학문적인 선이다. 선과 언설의 일치란 터득과 표현행위의 만남이다. 터득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되어야 한다. 표현되기 위해서는 터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터득은 언설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언설을 구사할 수 없는 터득이라면 그것은 벙어리가 꾸는 꿈과 같다. 또한 터득이 없는 언설이라면 허무맹랑한 망상일 뿐이다. 그리하여 선이 몸이라면 터득은 그 속에 깃들어 있으면서 온갖 행위를 하게 하는 힘이고 언설은 몸에서 저절로 밖으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행위의 표현이다. 이리하여 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언설이 바로 선어(禪語)가 된다. 그리고 언설처럼 내용을 담고 표현을 이끌어내되 그 내용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선이 곧 격외선(格外禪)이다. 선어록은 바로 이러한 격외도리의 선법을 격내(格內)의 언설로 끌어내려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문자의 형태로 보여주고 안내하며 이끌어 주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었다.
여기에 수록된 것은 그와 같은 언설 가운데서 한자로 표현된 선록(禪錄) 중 선법과 특별히 관련이 깊은 16종의 경전, 30종의 중국의 선문헌, 그리고 26종의 한국의 선문헌을 선별한 것으로 텍스트의 기초적인 서지 사항과 간략한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선법을 표현하고 있는 선문헌의 대개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그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텍스트를 선택하여 다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4년 7월
마조도일 이후의 선은 경론의 문헌적 연구를 떠나 일상의 언행에 즉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록이 다시 종래의 경론의 역할을 지닌 것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종래의 경전을 붓다의 어록으로까지 간주하게 되었다.
입리선생은 이심전심으로 파악하고 나서 연문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래 그윽한 진리는 미묘하여 언설이 없다. 지금까지 그대가 질문한 것은 모두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가령 꿈에서는 참으로 번거로웠지만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이 가르침을 세상에 퍼뜨리고자 질문을 만들고 언설을 빌린 것이다. 이제 그와 같은 흔적마저 거두어야 좋을 듯하다. 이에 절관론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