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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8965112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6-08-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1. 안개
2. 열 살의 여름
3. 최고의 예술
4. 타인들이 원하는 실패
5. 창(窓)
에필로그 소망이 가진 성분
추천의 글
천천히, 차근차근, 꼭 읽어 내고 싶은 소설을 만나다 - 양재선(작사가)
찬란한 사물들의 세계 - 이수연(연극 연출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마주해 염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염소는 내 손을 잡아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침묵을 지켜, 아직은 때가 아니야. 염소의 눈동자는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다른 염소들과는 달리 밝은 에메랄드빛이었다. 옆구리엔 낡은 바이올린을 끼고 있었다. 염소의 커다란 동공만은 내가 알던 누군가의 것이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픔은 딸꾹질 같은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 잊고 있었다는 듯이 시간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나눈다. 시간이 초 단위로 나뉘면 하루는 더 이상 24시간이 아니다. 240시간도 아니다. 1초속으로 무수한 선들이 그어지면 계산기 따위를 잡을 힘도 없다. 늘어나기만 하는 곱셈은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를 않고 스타카토처럼 튕기며 더 많은 선들을 만들어 낸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소용없다. 창밖을 보고 달력을 보고 설탕이 줄어 가는 것을 본다. 내 몸은 조금씩 말라 가고 내 입 속은 점점 더 살쪄 갔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안개가 시작되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로 오고 있다는 것을.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예기치 못한 오늘의 잠은 안개의 강력한 전조였다. 안개는 오늘을 기다렸다. 안개는 안다. 안개는 알고 있다. 오늘 밤 이 집에는, 아니 내게는 와플도, 초콜릿도, 그리고 남편도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