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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사랑이다

이별은 사랑이다

최문희 (지은이)
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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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사랑이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이별은 사랑이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24052112
· 쪽수 : 366쪽
· 출판일 : 2025-12-15

책 소개

『난설헌』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최문희 소설가의 신작장편소설로 그토록 절박하게 혼신의 열정으로 태운 불의 혼, 전혜린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최문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난설헌』 『이중섭』 『정약용의 여인들』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최문희 작가는 신작 『이별은 사랑이다』를 통해 전혜린의 삶을 고스란히 조명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린의 혼잣말
친구야, 그건 아니지
아버지와 딸
오지랖의 변주
비가 내리고
그땐 그랬다
잠시 멈춰 서서…
그런 날들
알프스에 걸린 램프
불편한 손님
사소한 것들의 변죽
숨 쉬는 죽음
살과 뼈에 스민 냄새
괜찮지 않아
무엇에도 불구하고
옮긴이(번역 작가)
정화의 방
허공에 꽃씨 뿌리고
에필로그

해설
전혜린의 주체화 과정과 그 좌절

저자소개

최문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남 산청군 남사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 졸업했다. 1988년 「돌무지」로 『월간문학』으로 등단했고 1995년 『서로가 침묵할 때』로 국민일보 문학상, 같은 해 『율리시즈의 초상』으로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크리스털 속의 도요새』 『백년보다 긴 하루』 『나비 눈물』 출간. 에세이집 『내 인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출간. 2011년 장편소설 『난설헌』 혼불 문학상 받다. 2013년 장편소설 『이중섭(계와 아이들과 황소 1.2권)』 2017년 장편소설 『정약용의 여인들』 2025년 『열여섯 번의 팔월』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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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에스프레소를 처음 맛본 건 슈바빙의 노천 카페테라스였다. 9월인데도 햇볕은 엷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 가지들이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린은 그때 혼자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차양 아래 마련된 철제걸상에 앉았다. 그늘이 깊어 서늘했다. 검정 앞치마를 걸친 길고 가느다란 남자가 2인용 원탁에 찻잔을 놓았다. 하얀 종지에 8부쯤 담긴 까만 액체. 서울에서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인스턴트 모카커피를 마셨다. 작은 컵을 두 손에 감싸 쥐고 입으로 들고 가던 순간 린은 등받이에 기댄 허리를 곧추세웠다. 흡, 코로 스미는 커피 향, 사향의 냄새가 그러할까? 첼로의 가장 깊은 저음에서 울리는 깊고 서늘한 숨, 에스프레소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자신의 안에 자라지 못한 문학소녀가 있어, 제멋대로 방방 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의해 일그러지고 억압되었던 미성숙아가 아직도 두 발을 버둥거리며 착지를 못 하고 있다. 모든 동작이 완벽했는데도 불안정한 착지 때문에 1순위를 놓친 체조선수처럼. 서른 나이에 살짝 구겨진 미간의 주름을 보면 린은 화가 난다. 격한 발언, 막말의 프레임에 갇혀 버둥댄다. 자신의 커리어에 치명적이라는 자각에도 간단하게 수정 보완이 안 되는 자신의 뭉그적거림에 린은 화가 난다. 가벼운 동작, 예측불가능한 감정의 회로 그 모든 것의 귀결은 미숙함에 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았는데도 어떤 결정 어떤 선택 앞에 서면 미적거린다.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지성인다운 냉정하고 단호한 행동은 뒷전이다. 날 벼린 감성이 앞질러 결정을 흐리게 만들었고 그릇된 선택을 주도하지 않았던가? 반성해, 자제해, 자중해, 그 단어들이 모래알같이 입안에서 서걱댄다.


샘물을 길어 올리듯이 마음의 물을 퍼 올린다. 그런 린의 멍 때리는 몇 초를 수는 센티멘털의 지병이라 한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린은 소스라치듯 몸을 돌려 주방으로 나간다. 금방 준비할게. 두 사람의 하루 일정은 비슷하다. 만원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몇 시간 강의를 해야 한다. 같은 공간, 강의 받는 학생들도 같은 얼굴이다. 그런데도 아내라는 위치가 수행해야 하는 밥상 차리기는 거울 앞에 앉아 외모를 고르는 시간을 뭉개버린다. 허둥댄다. 청탁받은 원고 쓰기로 날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 그런 날 아침이면 천근이나 무거운 몸을 끌고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려야 한다. 친정에서 얻어온 반찬이지만, 덜어내 데우고 남은 반찬은 단단히 봉해서 창턱이나 그늘 깊은 장소에 옮겨 둬야 한다. 그딴 원고는 뭐 하러 써? 거절할 줄도 알아야지. 수는 통박 지른다. 몇 푼이나 받는다고? 원고료 때문에 쓰는 거 아니잖아. 린은 텅 뚫린 것 같은 심장의 동공을 메워주는 그 작업만큼은 사절할 수가 없다. 이제 유통기한이 넘어선 모양이다. 요즘 들어 입안에서 곱씹는 말이다. 예쁜 모습보다 눈에 거슬리는 밉상이 도드라지는 모양이다. 대책 없는 익숙함이 만들어 내는 부부간의 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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