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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24065549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6-05-23
책 소개
문득 투명해지는 글쓰기의 예기치 않은 리듬
문장 위의 나를 ‘당신’과 우연히 연결시키는 에세이적인 힘
에세이스트 이광호의 에세이를 위한 에세이!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한 세계의 펼침이다
이름을 다시 지어 부르면,
그의 세계는 허물어지고 다시 펼쳐진다
‘만약에’의 이름은 문학적 에세이의 미약한 시작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 이광호의 다섯번째 산문집 『그의 이름은 만약에』가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된다. ‘문학-에세이’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사물과 세계를 ‘다시 쓰고 읽으며’ 작품활동을 해왔고,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의 신작 산문집이다. ‘에세이를 위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읽기-글쓰기’ 경험들을 통과하며 ‘에세이’ 그리고 ‘에세이적인 것’을 좇는 26편의 글이 총 7부에 나뉘어 엮였다. 이광호가 말하는 ‘에세이적인 글쓰기’에는 요약된 정보들이 드러낼 수 없는 삶의 미시적인 영역들, 신체와 기억과 감정의 장소와 시간들이 있다. 에세이는 어떤 대상에 대해 쓰면서 동시에 쓰는 행위에 대해 쓴다. 또한 그 쓰기의 내부에는 대상에 대한 호명이 있다. 그에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한 세계의 펼침이다. 그 사람의 고유한 비밀들을 빼앗지 않기 위해, 그의 다른 이름은 ‘만약에’일 수도 있다. 혹은 모든 호명이 ‘만약에’의 호명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만약에’의 이름은 문학적 에세이의 미약한 시작이다(작가의 말). 쓰는 자는 문장의 흐름 속에서 엉뚱한 생각과 마주하고, 읽는 이는 예기치 않은 문장에서 반응한다. 독자는 스쳐지나가는 문장들, 우연한 인용, 비유의 예상치 못한 질감, 낯선 리듬을 만드는 쉼표에도 두근거린다(24쪽). 그러니 저자에게 에세이는 산책하는 글쓰기가 된다. 선형적이지 않고 우회하는 걸음걸이. 저자가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난다, 2014)에서 용산에 관해 쓰며 현기증 나는 개발의 속도감과 망각의 역사를 체험한 것처럼, 장소의 에세이스트가 어딘가를 걷는다는 것은 그 ‘어딘가’가 글쓰기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164쪽). 거리를 산책하는 유동적인 시선은 삶의 단면을 스케치한다. 연필의 산책자가 매 순간 경험하는 거리의 편린들이, 거대한 장소의 생생한 감각을 더듬는다(72쪽). 그렇게 그는 우연한 걸음걸이를 만들고, 걸음으로써 무수하고 작은 질문들을 만든다. 샛길로 빠지거나, 길을 잃고 되돌아가거나, 예측할 수 없었던 미지의 풍경을 마주치거나, 어떤 풍경의 세부에 ‘찔린다’(24쪽).
그러므로 그에게 여행이란 한 권의 책이다. 날씨와 정원과 나무들의 변화, 만나는 인물들, 집과 살림살이, 여행의 풍경은 ‘나’를 기록하는 방식이며(114쪽) 나의 바깥으로 나아감으로써 ‘다른 나’로 돌아오는 역설적 움직임은 여행의 사유와 상상력이 된다. 그러다 어떤 문장들은 그 여행지에 두고 온다. 신체의 감각들이 받아들이는 다른 공기와 햇빛과 바람과 몸들이 그곳에 있다(169~170쪽). 다만 그렇게 에세이의 문장을 읽었다고 해서 삶은 달라지지 않으며, 그 삶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도 아니다. ‘너덜너덜’과 ‘허겁지겁’ 사이에서 충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은 언제나 실패한다. 다만 쓰고 읽는 과정에서 이 삶을 ‘겪고 있다는’ 감각을 되살려준다. 저자는 그 자신을 완전히 충만하게 해줄 말들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치 미지의 접힌 쪽지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읽고 또 쓴다(30~32쪽).
사물과 시간들의 ‘벌거벗음’을 마주하는
‘삶-비밀’에 대한 글쓰기
기억에서 잊혀진 세계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각별한 몸의 감각에 의해서이며, 글쓰기는 그러한 감각을 통해 다른 시간으로 전환되는 사건이다(39쪽). 나의 바깥으로 나아감으로써 ‘다른 나’로 돌아오는 역설적 움직임. 피부에 스며들어 있는, ‘그때 그곳’에 내 신체가 있었다는 기억의 감각(176쪽). 따라서 저자에게 삶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나’의 냄새를 견딜 수 있는가, 혹은 ‘너’의 냄새를 환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된다. ‘언어화되기 이전의 세계’인 냄새에 대해 쓴다는 것은 에세이의 불가능에 접근하는 작업이다(188쪽). 이를테면 대만 타이페이의 야시장에서의 부패한 듯한 음식의 냄새, 캄보디아 시엠립의 시장에서 맡았던 흙과 천과 향신료가 뒤섞인 냄새, 홍콩의 뒷골목에서 나는 도교 사원의 향 냄새와 음식 냄새의 조합 같은 것. 낯설고 기묘하고 매혹적인 타자성의 냄새들(192쪽). 장소에 속해 있다는 감각은 그 장소의 냄새에 의해 촉발되고 유지된다. 냄새는 침묵으로 다가오지만, 냄새의 기억은 가끔 유령처럼 나타나 시간을 역행한다. 가령,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그 냄새에 반응했던 어떤 몸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89쪽). 음식의 감각도 그 사랑의 잔존을 호출한다. 같은 맛을 음미하던 미각적 기억이 오롯이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 각별한 감각의 복원은 사랑이 실재했음을 우연히 드러낸다. 글쓰기가 되살리는 것도 그 감각이 재구성되는 불시의 순간이다(39~40쪽). 그러므로 저자는, 영화와 에세이와 같은 예술에서 우리를 찌르는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예기치 않게 나타난 세부, 그 세부들이 만드는 ‘질감’이라고 말한다(48쪽).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에세이스트를 수집가에 비유하기도 한다. 수집가로서의 에세이스트는 사물을 기능적인 용도에서 해방시키고, 창의적인 병치를 통해 또다른 소우주를 만드는 자이다. 사물에 대한 쓰기 과정에서 ‘나’는 사물에 의해 재구성되고, 사물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한다(201쪽). 저자는 책장 두 칸에 여행지에서 모은 잡동사니들과 다른 사람들이 사다 준 작은 물건들을 모은다. 간혹 어떤 물건들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204쪽). 그가 스스로 ‘나’의 시간과 공간과 육체를 다 파악하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나’라고 믿는 것은 정리할 수 없는 관계들이 뒤엉킨 가상의 한 장소이다(103쪽). 기억들을 교차시키고 뒤섞고 응축시키는, 오밀조밀 빼곡하게 모여 있는 물건들이 놓인 소박한 분더카머를 닮은 곳.
‘쓰는 자’는 ‘속한 자’가 아니라
그 ‘분리’를 경험한 자이다
상실된 타자를 자기 안에 내면화하는 작업은 완성될 수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고양이 ‘보리’를 떠나보내고 애도하는 과정을 겪으며 ‘완결을 거부하는 형식’인 에세이로 향한다. 애도의 에세이는 애도를 지속하기 위한 공간, 죽은 자와 남아 있는 자가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만든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슬픔과 통증의 리듬. 리듬은 완결되지 않고 반복되면서 미지의 파동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다른 어떤 고양이를 환대한다고 해도, ‘그 하나의 고양이’에 대한 애도는 완결되지 않는다. 무력한 기억력이 살아 있는 한, 완성될 수 없는 애도,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글쓰기일 뿐이다(150~152쪽).
또한 에세이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대신하는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언어가 투명할 수 없다는 좌절감 혹은 그 불가능성에서 시작되므로. 부재하는 사람을 향한 편지 쓰기는 저자에게, 전달의 불가능함을 무릅쓰는 일이다. 거울을 통해 ‘울고 있는 나’를 본다는 것은 시각적 ‘접촉’이지만, 동시에 거리 두기인 것처럼. 슬픔에 몸부림치는 자신을 대면하며 슬픔의 존재로서의 ‘나’의 경계를 가늠해보는 것처럼. 어떤 글쓰기는, 개인의 내밀한 시간이 지배적인 이념과 ‘사회세계의 칸막이’에 의해 규정되고 있음을 드러낸다(99~100쪽). 다만 편지가 끝내 부쳐지지 못하거나 어긋나게 되었을 때, 편지의 현실적 기능은 상실되지만, 오히려 문학적인 것이 시작되기도 한다(129~130쪽). 일기 또한 마찬가지다. 내면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접촉과 반응을 통해 형성되는 의식의 문제이기에(113쪽). 그런 의미에서 모든 전율적인 픽션에는 에세이적인 것이 있고,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모든 에세이는 이미 허구적이다. 갈망하면서 단념하고, 끊어지면서 다시 어긋나고, 문득 투명해지는 글쓰기의 예기치 않은 리듬은 문장 위의 ‘나’를 ‘당신’과 우연히 연결시킨다(9쪽).
에세이스트는 결론을 아는 자가 아니라, 쓰면서 문득 다음 문장을 발견하는 자이다. 글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모르면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면, 삶의 편린들과 잔해 속에서 쓰고 있다면, ‘그’가 머물던 공간과 ‘내’가 떠나온 시간 사이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에세이를 쓰고 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목차
작가의 말 에세이로 쓰는 에세이 5
intro 약력이 말하지 못하는 것 13
1부 에세이는 그렇듯
부재자 ─ 에세이라는 배회하는 글쓰기 22
샛길 ─ ‘삶-비밀’을 둘러싼 옆길들 33
기억 ─ 시간들의 물질적 디테일 42
세부 ─ 나를 찌르는 사진의 테두리 49
2부 이토록 겸손한 형식들
단장 ─ 잘린 글쓰기, 멈춘 글 읽기 58
몽타주 ─ 교차 편집의 글쓰기 65
편린 ─ 이토록 우발적인 목록들 71
소품 ─ 장르들의 위계와 기득권 77
에세이 ─ 이름의 시작과 가장자리 83
3부 나는 ‘나’를 모르고
이명 ─ ‘헤테로님’, 그는 누구인가 90
나 ─ 1인칭은 말할 수 있는가 97
‘나’ ─ 언어 없는 얼굴들 103
일기 ─ 외면에 대한 기록 109
4부 당신에 대해 쓸 수 있다면
당신 ─ 눈앞에 없어도 부를 수 있는 120
편지 ─ 가닿지 못하는 것의 효용성 125
무대 ─ ‘당신’을 편지에 초대하다 132
5부 그의 이름은 만약에
가족 ─ 부모라는 질병의 기원 138
애도 ─ 내 고양이의 장례 145
이름 ─ 나의 ‘아토포스’ 그 사람을 어떻게 부를까 153
6부 장소의 관능이 사라지면
장소 ─ 비스듬히 사라지는 사막 162
여행 ─ 지중해의 뜨거운 문장들 169
유령 ─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 177
7부 사물의 시간 속에서
냄새 ─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감각 188
식물 ─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의 움직임 194
‘분더카머’ ─ 보물과 잡동사니의 사이 200
사물 ─ 친애하는 가구들의 역사 207
outro 이 책에서 출몰하는 당신들의 텍스트 215
저자소개
책속에서
에세이적인 글쓰기는 약력 쓰기와 반대편의 자리에 있다. 요약된 정보들이 드러낼 수 없는 삶의 미시적인 영역들, 신체와 기억과 감정의 장소와 시간들이 있다. 약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감각을 드러내고, 제도적인 형식에 균열을 내는 작업은 에세이적인 것이다. (…) 약력은 삶의 이력을 요약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이다. 다시 쓰는 약력도 삶을 바꾸지 못한다. 삶의 전모를 나는 알지 못하며, 약력을 쓰는 순간 ‘나’는 분열된다.
_intro 「약력이 말하지 못하는 것」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애도의 글쓰기들은 대개 ‘부재자’에 대한 익숙한 그리움을 ‘부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질문으로 바꾸어놓는다. (…) 이야기의 쾌감 같은 것도 없다. 상념들은 흘러가고 사유들은 유동하고 글쓰기는 흔들린다. 우리가 가엾은 말들을 만지작거리며 닿을 수도 없는 죽음과 불투명한 삶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_「에세이라는 배회하는 글쓰기」 중에서
삶의 비밀이 어느 순간 드러나는 것은, 구체적인 감각의 회복이다. ‘그 사람을 사랑했는가’라는 질문이 있다고 해보자.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사실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해야 한다면, 가령, 그때 그런 ‘시간-공간-신체’를 둘러싼 ‘함께 있음’의 감각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_「‘삶-비밀’을 둘러싼 옆길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