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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25555247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4-05-26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헤어졌어
잊고 싶어
불편했어
신경 쓰여
가고 있어
잡고 싶어
고백했어
다가갔어
벽을 깼어
도착했어
평생 너만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날 사랑하긴 했어?”
“…….”
무척 화를 참고 있는 강주의 말투가 무얼 뜻하는지 이경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볼을 뜨겁게 감싸고 있는 강주의 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알아듣게 말해.”
“보면 날 항상 나쁜 놈으로 만들어. 남 앞에서는 날 사랑하는 척하지만, 내 앞에선 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잖아.”
“그런 적 없어.”
“오늘이 그 증거야. 이혼했으면 무시해야지, 왜 걱정하고 챙겨 주는데? 그래 놓고 내가오니까 찬바람 쌩쌩.”
“술주정하는 거면 그만 집에 가서 자.”
이경이 강주의 어깨를 힘껏 밀었지만, 무섭도록 강한 남자의 힘에 실패했다. 이경은 깊은숨을 들이켰다. 이젠 강주의 손에 갇힌 볼에서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그냥 살자. 선 보는 거 지겨워.”
“이강주!”
억눌렀던 분노가 튀어 올라왔다. 매캐한 연기 속에 뜬 눈처럼 눈이 따끔거렸다. 글썽거리던 눈물이 속눈썹에 맺혔다. 이경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강주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끌어 뿌리쳤다.
“사람 붙잡아 놓고 할 말이 그것뿐이니?”
이경은 먹먹함이 목 안에서 아득하게 밀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뺨을 예리하게 훑고 가는 겨울바람을 모조리 가슴으로 맞았다. 서서 버티는 것조차 힘겨웠다. 꾹꾹 눌러 왔던 괴로움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너 사랑한다고 하니까 우습구나.”
“말뿐인 사랑.”
이경을 보는 강주의 눈빛은 지극히 차분했다.
“뭐?”
“날 사랑했다는데 난 왜 느끼지 못했을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이경은 멍하니 강주를 쳐다봤다.
“결혼하자 해 놓고 따로 자자는 게 더 우스워서 하는 말이야.”
“이 시점에서 나올 말이 아닌 것 같은데? 너도 동의했어.”
“남자로 날 사랑했으면 자 줄 수도 있었다고 보는데.”
더는 버티지 못한 눈물이 눈에 고였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출렁 쏟아질 것만 같아서 이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이라도 고백해야 하나.
해가 질 무렵, 널 기다리면서 오늘은 이강주와 함께 침대에서 잠드는 상상을 수백 번 했다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 잠든 너의 방문 앞에서 서성거렸던 부끄러운 기억을 말해야 하나. 면도하는 남자의 뒷모습에도 심장이 너무나 두근거려서 아팠다고, 말하면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믿어 줄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이 목 끝에 걸려 나오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통째를 빼앗은 남자의 얼굴을 이경은 호흡도 잊고, 한참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데 능력이 탁월해. 사는 내내 느낀 것도 모자라, 헤어져서도 느끼게 해 줘서 고마워.”
눈물을 쏟아 내지 못한 눈 밑이 아르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의 등만 보고 사는 시간을 견디는 게 얼마만큼 아픈 건지, 그렇게라도 네 옆에 있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했던 것은 큰 욕심이었다.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지만 떨리는 몸이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숨을 멈추어도 허망한 한숨이 터지고 말았다.
“하아…….”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살자니. 바보처럼 같이 살자는 강주의 말에 얄팍하게도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자존심이 끝을 모르고 떨어졌다. 이 지독한 통증은 아마 어쩌면 친구의 남자를 사랑할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이혼을 요구했을 때 한 번쯤은 강주가 빈말이라도 잡아 주길 기대했었다. 아주 가볍게 알았다고 말하는 강주를 보며 정말 끝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네가 그것만은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어.”
추운 겨울밤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몸이 덜덜 떨렸다.
“너한테 몸마저 주면 다 준 것 같아서 싫었어. 나한테 그러면 남는 게 없잖아.”
말할 때마다 차가운 밤공기에 입김이 아련히 퍼졌다. 꼭 이 말까지 하게 만든 강주가 너무나 야속했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히 말하고 싶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히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경은 애써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우린 헤어졌어. 이제 이강주란 남자 꿈도 안 꾸니까…….”
이경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물기가 퍼진 시야가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변했다. 술은 강주가 마셨는데 자신이 취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