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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사카구치 안고 단편집](/img_thumb2/9791128830570.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28830570
· 쪽수 : 270쪽
· 출판일 : 2018-07-30
책 소개
목차
백치(白痴)
외투와 푸른 하늘(外套と青空)
돌의 생각(石の思い)
벚꽃이 만발한 벚나무 숲 아래(桜の森の満開の下)
파란 도깨비의 훈도시를 빠는 여자(青鬼の褌を洗ふ女)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일본은 지고 미군은 본토에 상륙해 일본인 태반이 사멸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하나의 초자연의 운명, 소위 천명처럼 여겨졌다. 그에게는 그러나 더 비소(卑小)한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놀라우리만치 비소하면서도 늘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그가 회사에서 받는 200엔 정도의 급여 말인데, 급여를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까, 내일이라도 목이 잘려 거리를 헤매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그는 월급을 받을 때가 되면 해고 선고도 받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고, 월급봉투를 받아 들면 목숨이 한 달 연장돼 어이없을 만큼 행복감을 맛보았지만, 그런 비소함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울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을 꿈꾸었다. 예술 앞에서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 월급 200엔이 어째서 뼛속에 사무치며 생존의 근저를 뒤흔들 만큼 큰 고민거리가 되는 걸까? 생활의 외형적인 면뿐 아니라 그의 정신도 영혼도 200엔에 제한당해 비소함을 응시하며 미치지도 않고 태연하게 산다는 게 더욱더 한심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노도의 시대에 미가 무슨 소용이야! 예술은 무력해!”라던 부장의 어처구니없는 고함 소리가 이자와의 가슴에 완전히 다른 진실을 담아 예리하고도 거대한 힘으로 파고든다. 아아, 일본은 질 것이다. 찰흙 인형이 무너져 내리듯 동포들이 픽픽 쓰러지고, 튕겨 오르는 콘크리트나 벽돌 파편들 속에 수많은 다리니 목이니 팔이 함께 날아올라 나무도 건물도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묘지가 되고 말 것이다. 어디로 피하려다 어느 구멍으로 몰려 구멍째 단번에 날아가 버릴는지…. 꿈같은, 그렇지만 만일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때의 신선한 재생을 위해, 그리고 전연 예측할 수 없는 신세계, 돌 부스러기 천지인 들판에서 하게 될 생활을 위해 이자와는 오히려 호기심이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생활은 반년 내지 1년 후면 맞닥뜨리게 될 운명이련만, 맞닥뜨릴 운명의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꿈속 세계처럼 아득한 유희로밖에는 인식되지 않았다. 눈앞의 모든 것을 가로막고 살아갈 희망을 뿌리째 뽑아 가는 단돈 200엔의 결정적인 힘, 꿈속에서마저 200엔에 목이 졸려 가위눌리고, 아직 스물일곱 살인 청춘의 모든 정열이 표백되어 현실적으로 이미 암흑의 황야를 망연히 걷고 있을 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