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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원서발췌 용재수필

[큰글자책] 원서발췌 용재수필

홍매 (지은이), 안예선 (옮긴이)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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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원서발췌 용재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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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큰글자책] 원서발췌 용재수필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28869358
· 쪽수 : 182쪽
· 출판일 : 2023-04-20

책 소개

40여 년 동안 독서하여 얻은 지식을 정리한 것으로 역사, 문학, 철학, 정치, 예술 등 제 분야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고증, 평론을 엮은 학술적 내용의 독서필기이다. 에세이(essay)의 의미로 사용하는 ‘수필(隨筆)’이라는 용어를 제일 처음 사용한 용례가 바로 ≪용재수필≫이다.

목차

장량의 후손이 없는 이유(張良無後)
조참과 조괄(曹參趙括)
황제의 모친들(漢母后)
전천추와 질운(田千秋郅惲)
여 태자(戾太子)
관부와 임안(灌夫任安)
이태백(李太白)
공자의 뜻(冉有問衛君)
절개를 지킨 여인들(三女后之賢)
현명한 부모와 형제(賢父兄子弟)
사마광의 족자(溫公客位榜)
비방을 담은 책(謗書)
진 문공(晉文公)
상관걸(上官桀)
김일제(金日磾)
한신과 주유(韓信周瑜)
한 무제의 논공행상(漢武賞功明白)
옛사람의 이름과 자(三代書同文)
주 문공과 초 소왕(邾文公楚昭王)
우세남(虞世南)
명재상(名世英宰)
제갈공명(諸葛公)
도연명(陶淵明)
동진의 장수와 재상들(東晉將相)
‘의(義)’ 자의 다양한 의미(人物以義爲名)
불효자 유흠(劉歆不孝)
한나라의 금기(漢法惡誕謾)
친구 사이의 의리(朋友之義)
범증을 어찌 위인이라 하겠는가(范增非人傑)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육국(戰國自取亡)
장수 교체(臨敵易將)
도적 소탕(漢二帝治盜)
한 경제(漢景帝忍殺)
간언의 어려움(諫說之難)
안자와 양웅(晏子揚雄)
화를 피하려 애쓰는 일(有心避禍)
진나라와 연나라의 용병술(晉燕用兵)
이덕유의 편지(李衛公帖)
한 문제의 도량(漢文帝受言)
주운과 진원달(朱雲陳元達)
전횡과 여포(田橫呂布)
주온의 세 가지 일(朱溫三事)
글 파는 문인들(文字潤筆)
의리의 힘(大義感人)
방어의 미덕(深溝高壘)
한 무제의 관리 임용(漢武留意郡守)
백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民不畏死)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
화장 풍속(民俗火葬)
이임보와 진회(李林甫秦檜)
태종과 현종의 명예욕(唐二帝好名)
취한 정장(醉尉亭長)
유방과 항우의 성패(劉項成敗)
명분 없이 신하 죽이기(無名殺臣下)
개자추와 한식(介推寒食)
우물 안 개구리(三竪子)
이름 없는 현인들(賢士隱居者)
채경의 관리 채용(蔡京除吏)
조덕보의 ≪금석록≫(趙德甫金石錄)
풍속의 차이(南舟北帳)
상하(常何)
글 짓는 비결(東坡誨葛延之)
황제와 후계자(漢唐三君知子)
인심을 얻는 방법(曹馬能收人心)
호가호위(狐假虎威)
한 무제와 당 덕종(漢武唐德宗)
소영사의 지조(蕭潁士風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습관(貧富習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홍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남송南宋 시기 사람으로 자가 경로景盧이고 호는 용재容齋·야처野處이며, 강남동로江南東路 요주饒州 파양현(지금의 강서성 上饒市 鄱陽縣) 사람이다. 아버지는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홍호洪皓(1088~1155)로, 금조에 사신으로 갔다가 15년간 억류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송막기문松漠紀聞』을 편찬한 바 있으며, 형 홍괄洪适(1117~1184)과 홍준洪遵(1120~1174) 역시 모두 송조의 재상과 부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후대 사람들은 이렇듯 활약이 뛰어난 홍씨 네 부자父子를 두고 ‘사홍四洪’이라 일컬었다. 홍매는 소흥紹興 15년(1145) 진사가 되어 관직에 올랐고, 금조에 사신으로 다녀온 바 있다. 일찍이 길주吉州지사, 감주?州지사, 무주?州지사 등을 역임하였고, 순희淳熙 13년(1186)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이후 영종寧宗 시기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에 오른 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만년에는 향리에 머물면서 저술에 전념했으며, 남긴 저술로는 『이견지』외에 『용재수필容齋隨筆』과 『야처유고野處類稿』및 『사기법어史記法語』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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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중국 고전 산문을 연구하고 있다. 최초로 ‘수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남송南宋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隨筆』(공역), 범성대范成大의 장강長江 유람 일기인 『오선록吳船錄』, 후한後漢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선역한 『한 권에 담은 한나라 이야기-한서 선역』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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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날짐승은 날개로 날지만 만약 그들의 다리를 묶는다면 날 수 없게 된다. 달리는 것은 다리를 써서 달리지만 그 팔을 묶어버린다면 달릴 수가 없다. 과거 시험장에서는 학문과 재능이 중요하지만 무디고 아둔한 자 또한 쓸모가 있다. 전쟁을 할 때는 용기를 우선으로 하지만 겁쟁이도 쓸데가 있는 법이다. 어떻게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을 일괄적으로 구분하겠는가? 그러므로 군주는 천하의 많은 선비들을 무용지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태백이 당도(當塗)의 채석강(采石江)에서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들 한다. 때문에 채석강에 착월대(捉月臺)가 있다. 그러나 이양빙(李陽?)이 쓴 이태백의 <초당집서(草堂集序)>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당도를 유람할 때 이태백이 위독했다. 그에게는 수정을 마치지 못한 초고 만 권이 있었는데, 침상에서 내게 주면서 서문을 써 달라고 했다.” 또 이화(李華)가 쓴 <태백묘지(太白墓誌)>를 보니, “태백이 임종가(臨終歌)를 짓고 죽었다”고 되어 있다. 이 글들을 보고서야 세상에 전해 오는 말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얘기들은 두보가 너무 굶주리다가 술과 상한 고기를 먹고 죽었다는 설과 마찬가지의 것들이다.


태종과 현종은 모두 당나라의 영명한 군주로 그 말과 행동이 후세의 법이 될 만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일에서 보면 그 목적은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까치 둥지의 이변은 좌우의 신하들이 아부를 하면 꾸짖고 내치면 되는 것인데 하필 그 둥지까지 허물 필요가 있는가? 진주와 비단은 아끼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하필 궁전 앞에서 태워 대외적으로 보여 주고 백성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가? 나라를 다스림에는 중용의 태도가 중요하다. 이 두 일은 후세에 교훈이 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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