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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28890482
· 쪽수 : 366쪽
· 출판일 : 2024-06-14
책 소개
목차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마키 노인
생명의 초야
망향가
소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1.
만일 누군가 이 땅에서 지옥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밤 1시나 2시경에 중병실을 찾아가라. 귀신과 생명이 벌이는 격투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불꽃이 눈앞을 스칠지 모른다.
-<나병원 기록> 중에서
2.
바로 그때였다. 내게 분만실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진통이었다.
“이봐 사카모토, 큰일 났어, 큰일 났다고. 아이가 태어나!”
(...)
환자들은 침대 위에 앉아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은 듯 병실 전체가 잠잠해졌다. 땅이 울리면서 눈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보라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야나이의 얼굴을 보자 그도 극도로 쇠약해진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딱 부딪치자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 희미한 기쁨이 번졌다.
“야나이, 곧 태어날 거야.”
나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크게 뜨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날 거야. 그렇지?”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듯 힘없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숨은 무한한 감동이 내 가슴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죽어 가는 그의 생명이 태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새로운 생명을 향해 뿜어내는 불꽃을 또렷이 느꼈다.
“있잖아, 노무라. 생명은 말이야.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어.”
-<눈보라의 첫울음> 중에서
3.
밧줄을 걸기에 적당한 대들보가 눈에 띄었다. 그는 토끼장 위로 기어 올라가 손을 뻗어 보았다. 가슴이 이상하게 벅차올라 그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었다. 두세 번 시험 삼아 당겨 보았으나 열 명이 한 번에 목을 매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했다. 여기에 목을 매고 뛰어내리기만 하면, 으음, 죽기가 생각보다 쉽군, 그럼 사서 고생할 필요가 뭐 있나, 여기까지 올라와도 아무렇지 않으니 이제 언제라도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면 그리 조급하게 서둘러 죽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우쓰는 다시 허리띠를 매고 아래로 내려왔다.
“우쓰 씨!”
마키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우쓰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진짜 매는 줄 알았어요.”
노인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쓰는 죄다 들켰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시험 삼아 한번 해 봤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시험 삼아서요? 어때요, 죽을 수 있겠습디까?”
“생각보다 쉽게 갈 수 있지 않나 싶더군요.”
“흐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에 잠기더니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생각입니까?”
라고 별안간 우쓰의 얼굴을 응시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마키 노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