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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29551405
· 쪽수 : 470쪽
· 출판일 : 2015-08-12
책 소개
목차
02. 내 발닦개가 되십시오
03.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04.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05. 상태 이상
06. 태초에 질투가 있었다
07. 혼돈의 끝은 어딜까
08. 이게 진짜일 리 없어
09. 필사적 회피
10. 수수께끼는 풀렸다
1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12. 적과의 동침
13. 인내심의 한계
14. 그와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것
15. 뜻밖의 해답
16. 해금
17. 내 시선을 피할 때마다 키스할 겁니다
18. 몸으로 배우십시오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재하 이사. 한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문대인 한국대학교 출신의 엘리트.
재학 중에 친구 두 명과 국산 소프트웨어 벤처 기업 ‘SA 소프트’를 설립. 재작년부터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SA 소프트의 중심이자 실세인 남자. 그 완벽한 능력과 잘난 외모로 여사원들의 왕자님으로 군림하고 있는 남자. 모두에게 ‘오를 수 없는 나무’라고 불리는, 동경의 대상인 이 남자가…….
“사실 난 오덕이야.”
오덕이라니!
세아는 충격에 빠졌다. 오덕이라면 그, 여자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를 끌어안고 잔다든가, 2D 캐릭터와 결혼식을 올린다든가, 모니터에 2D 캐릭터를 띄워놓고서 같이 식사하거나 그러는 사람?
“아니야.”
한재하 이사가 나직이 부정했다. 세아는 마음을 읽힌 것 같아서 흠칫했다.
“그, 이사님,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무슨 생각 하는지 훤히 보입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난 또 관심법이라도 구사하는 줄 알았네. 세아는 안도하며 한재하 이사를 건너다보았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세아는 조심스럽게 피규어가 전시된 장식장으로 다가갔다. 눈 돌아가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매력적이긴 했다.
하나씩 죽 훑어보던 세아가 입을 열었다.
“이사님, 한 가지 외람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해보십시오.”
“실례지만, 이중에서 이사님의 사모님 되시는 분이?”
세아가 예상하는 유력 후보는 4열 5행에 있는 파란 머리 여자와 7열 11행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분홍 머리 여자였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한재하 이사가 성질을 냈다. 세아는 깜짝 놀라서 칸막이 안의 아무 피규어나 힘껏 붙잡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왜 소리를…….”
세아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재하 이사가 눈을 부릅떴다.
“그 손! 그 손 놓으십시오!”
한재하 이사가 손을 뻗으며 외쳤다. 세아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손안에 잡힌 피규어의 목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똑 하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한재하 이사의 절규가 이사실에 울려 퍼졌다.
“아론!”
떨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든 한재하 이사는 수능 날 답안지를 밀려 쓴 삼수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 아론이, 내 아론이!”
심상치 않은 한재하 이사의 반응에 세아는 덜컥 겁이 났다.
“이사님.”
한재하 이사는 세아의 부름에 대꾸하지 않았다. 세아가 몇 번 더 애타게 불러도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던 한재하 이사가 돌연 말문을 열었다.
“당신이 지금 누구를 이 꼴로 만들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네?”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세아는 황당했다. 한재하 이사는 분노를 애써 눌러 참는 음색으로 설명했다.
“아론 세라프 리그누시스 앙골무아 3세. 세라프의 제18왕자이자 훗날 세라프의 황제가 될 남자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아, 그…… 렇군요.”
세아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이 피규어에게 그런 대단한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목이 붙어 있을 때 살펴보니 잘생겼더라니.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아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말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한재하 이사가 차게 웃었다.
“어떻게, 라.”
세아는 굳었다. 한재하 이사의 전신에서 검은색 아우라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스무 개 한정판.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간신히 예약 성공. 출고가는 75만 원이었지만 예약 판매가 끝난 뒤에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400만 원에 거래.”
한재하 이사가 딱딱하게 나열했다. 문서로 작성된 사항을 고지하는 것처럼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였다.
세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출고가 75만 원은 뭐고 프리미엄은 뭐고 400은 뭐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작은 모형이 그런 가격일 수가 있어?
“그런데 이제는 400만 원에 웃돈을 더 얹어줘도 파는 사람이 없다는, 그 아론 세라프 리그누시스 앙골무아 3세의 함대 사령관 복장 버전을!”
말을 하면 할수록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지 한재하 이사의 목소리는 점점 무시무시해졌다.
“신세아 씨가 무슨 수로 구해다 줄 겁니까.”
세아는 질끈 눈을 감고서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이사님의 기분이 풀릴 수 있을까요.”
한재하 이사가 요구하는 것이 법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더불어 그녀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녀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할 계획이었다.
“그러면.”
적막 끝에 한재하 이사가 운을 뗐다. 그다음 느릿하게 이어진 말은 세아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발닦개가 되십시오.”
“네?”
세아는 눈을 번쩍 떴다.
세아는 화들짝 놀라서 한재하 이사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일어난 한재하 이사는 바닥에 닿았던 무릎을 툭툭 털고는 똑바로 그녀를 관조하고 있었다.
“내 발닦개가 되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