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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30636030
· 쪽수 : 396쪽
책 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서문
1장 요동치는 대륙과 북벌의 희망
윤휴, 비밀 상소를 올리다
오삼계의 거병과 숭정제의 비극
청 태종, 중원을 집어삼키다
영력제를 죽인 오삼계가 복명의 기치를 올리다
파란의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 윤휴
2장 주자를 거부하고 진리를 탐구하다
아버지의 신원을 위해 상언하다
복수 설치를 꿈꾸던 아름다운 시절
의리는 주자의 독점물이 아니다
서인들, 예송논쟁에서 계략을 쓰다
날아드는 절교장과 학문 세계로의 침잠
3장 시대의 혁명아, 출사를 결심하다
제2차 예송논쟁과 서인들의 후퇴
소년 숙종의 즉위와 뜻밖의 선택
송시열의 빈자리를 채울 유일한 대안, 윤휴
4장 윤휴의 도전과 기득권 세력의 조작극
14세 소년 숙종과 58세 윤휴의 첫 만남
자강이 먼저인가 선공이 먼저인가
삼복 제거 음모와 명성왕후의 정치 개입
부디 대비의 정사 관여를 엄금하소서
북벌의 깃발 아래 모여드는 당파들
5장 신분제를 해체해야 조선이 살아난다
호패가 적을 막을 수 있는데 왜 우리가 싸우겠는가
백골과 아이에게 군역을 지우지 말라
서얼을 허통하여 부국을 도모하소서
6장 말뿐인 북벌을 넘어 행동하는 북벌로
강희제와 오삼계, 형주를 두고 대치하다
북벌을 주장하는 상소가 잇따르다
반대에 부딪히는 전차 제작
백성들이 응시할 수 있는 무과를 실시하다
군사 총사령부 설치를 주장하다
7장 총공세에 나서는 서인 세력들
사직과 출사를 거듭하는 윤휴
바뀌는 숙종의 마음
남구만, 허적을 저격하다
서인들의 조직적 공세, 금송 사건
8장 소현세자 후손 추대 사건
오삼계의 죽음, 끝나가는 삼번의 난
강화도의 변서(變書)와 송상민의 상소
남인 정권을 정리하려는 숙종
9장 금기가 되어버린 이름
숙종, 하룻밤 사이에 정권을 교체하다
역모 사건의 덫에 걸려드는 허적
시대의 우환을 짊어진 죄
나라에서 유학자를 왜 죽이는가?
공작 정치의 나날들
윤휴의 빈자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현종 15년(1674) 7월 초하루. 윤휴(尹?)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했다. 정성스레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았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가묘(家廟)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여러 날 동안 침식을 잊다시피 하면서 작성한 상소문이 들려 있었다. 윤휴는 상소문의 내용을 가묘에 고했다. 그리고 상소문을 밀봉했다. 이른바 비밀 상소인 밀소(密疏)였다.
가묘에서 나와 아들 하제(夏濟)를 불렀다.
“이 상소문을 대궐에 나아가 올려라.”
윤하제의 가슴은 떨렸다.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대략 아는 까닭이었다. 평생을 초야에 은거해오던 부친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생 공부하면서 가슴에 품고 있던 뜻이었다. 드디어 그 뜻을 세상에 펼칠 때가 되었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윤휴의 나이 이미 만 57세. 아직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포의(布衣)지만 그 이름만은 천하에 드높았다. 서인 영수이자 산림 영수인 송시열(宋時烈)에 비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비록 벼슬은 없지만 거대 집권당인 서인에 맞설 수 있는 학문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현종 즉위년에 발생한 기해(1659) 예송논쟁 때 송시열과 맞서자 사방에서 비난이 들끓고, 절교 편지가 잇따랐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다만 시대를 개탄할 뿐이다.”라고 초연했던 인물이다. 그간 여러 번 벼슬이 내려졌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던 그가 세상을 향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대의소(大義疏)」였다. ‘큰 의리가 담긴 상소’라는 뜻이다. 밀봉 상소였지만 그 내용이 은밀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급기야 조정 대신들도 밀소(密疏)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_1장 <요동치는 대륙과 북벌의 희망> 중에서
『대학』은 『예기』 49편 중 제42편이었던 것을 남송의 정호, 정이 형제와 주희가 따로 떼어내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사서(四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일부 글자를 바꾸어놓았다. 원래 『예기(禮記)』의 42편이었을 때는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과 친한 데 있으며(在親民) 지극한 선에 지(止)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였다. 이렇게 원래 ‘백성과 친하다(親民)’로 되어 있던 원문을 정이, 정호 형제와 주희가 ‘백성을 새롭게 한다(新民)’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래서 명나라의 왕양명은 『전습록』 「서애록」에서 주자학자들이 친민(親民)을 마음대로 신민(新民)으로 바꾸어놓았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윤휴도 신민이 아니라 친민이 바르다고 생각했다.… 주자학자들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백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윤휴는 독서기에서 백성을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 이외의 천하라고 여겼다. 자신과 백성 사이에 계급적 차별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천하 사해의 모든 백성을 한 가정처럼 여긴다는 사해동포주의의 발상이 친민에 담겨 있었다.
_2장 <주자를 거부하고 진리를 탐구하다> 중에서
북벌대의를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사대부들의 이중 처신이었다. 말로는 북벌을 외치면서도 내심으로는 북벌은 꿈도 못 꾸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 처신이었다. 이런 사대부 대신에 윤휴가 주목한 세력이 백성들이었다. “신이 일찍이 생각하기를 지금 사대부들은 그 마음속에 이해가 엇갈리고 보고 들은 것이 지식을 가리기 때문에 의논이나 행동이 본심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민들은 비록 무식해도 하늘이 부여한 성품이 어둡지 않아 지극히 어리석은 듯하면서도 신령하고 정성을 다하면서 신의가 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대부 대신에 윤휴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바로 그 백성들이 북벌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_5장 <신분제를 해체해야 조선이 살아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