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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30649511
· 쪽수 : 560쪽
책 소개
목차
1. 어느 날의 환자
2. 사랑하는 마음
3. 마르지 않는 샘
4. 상한 비둘기
5. 애증
6. 홍염
7. 창변에서
8. 와중
9. 애정의 피안
10. 산을 바라보며
11. 분기점
작품 해설
저자소개
책속에서
식사가 끝나자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던 주성이 먼저 일어섰다. 거리에 그들이 나왔을 때 사방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태평로에서 세종로까지 가로수 사이에 솟은 가로등이 뿌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시각이다. 전차 소리도 달리는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도 향수를 자아내고 메마른 도시인들 가슴에 낭만을 부어주는 시각이다. 연인끼리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좋은 서울의 세종로 밤거리. 그들은 중앙청 앞을 돌아서 안국동 쪽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성으로부터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강렬하였다. 그 이상한 압력이 혜원의 가슴을 조여들게 하였다.
혜원은 일어섰다. 그리고 입은 그대로 밖에 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볼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다방으로 가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그냥 걷고만 있었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도 많고 불빛도 번거로웠으나 그들은 오직 그들 자신만이 이 천지간에 존재하고 있는 양 걷고 있었다. 실상 그들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의 입김이 있을 뿐이다.
나뭇잎이 굴러떨어질 때 슬프지만 아름답다 생각하지 않으세요? 감상입니까? 감상이겠죠. 하지만 감상을 경멸만 할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지만 저의 경우에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깝고 의미가 있을 것만 같아요.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보다 조용히 곱게 죽을 수 있는 일이 더 절실한 문제만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