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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트랙을 도는 여자들](/img_thumb2/9791130697482.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697482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3-03-03
책 소개
목차
트랙을 도는 여자들
무덤 산보
해변의 소견
녹색극장
문은 조금 열어 둬
미주와 근화의 이란성 쌍둥이 썰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
트릭
핑거 세이프티
우리의 마지막 잠
해설 미칠 수도 있지만, 살아갈 수도 있지 _서영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풍경 속, 름이는 죽은 303호 여자와 함께 있었다. 함께였다고 하기에는 이상하지만 정말 그랬다. 름이는 죽은 여자를 떠올렸다. 버려진 트렁크처럼 담벼락에 쓰러져 있던 여자를. 름이는 죽은 여자를 지우고 자신을 넣어 보았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운동장 트랙 위를 걷던 여자들을 한 명씩 대입해도 무방했다. 전혀 레어한 일이 아니었다. 우지와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랬다. 문득 누워 있는 름이에게 두려움이 훅 끼쳐 왔다. 그것은 살아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한동안 그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삶은 느닷없이 멈춘다. 그건 아버지에게도, 303호 여자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왔다. 다만 공평하지 않은 기울기와 속도가 두 죽음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름이는 집으로 돌아가면 노트북을 열어 구직 사이트부터 들어가 보리라 생각했다. 아침이 되기 전에 안전하게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껏 안간힘이라는 근육을 보이지 않게 키워 왔다면, 이제는 그것의 윤곽을 드러내야 할 시기였다.
-「트랙을 도는 여자들」 중에서
그 작은 방, 너와 내가 누우면 꽉 차는 침대에 누워서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포카칩을 씹어 먹기도, 허벅지 안쪽을 핥거나 서로의 손톱을 만지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녹여 낼 만한 사소한 사건들을 만들곤 했다. 네가 떠난 후, 그 방을 찾은 사람들은 더러 있었으나, 너처럼 오랜 시간을 점유했던 자는 없었다. 첫사랑이었고, 모든 것의 처음이 너였다. 그곳에 있을 때는 그 처음이 영영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고, 모든 헤어짐이 그래 왔지만 특히나 너는.
나는 사랑을 배반한다, 언제나.
-「녹색 극장」 중에서
도는 전기의 제목만큼은 자신이 직접 짓고 싶다고 말했다. 왜 직접 자서전을 쓰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그에게 물을 것이다. 그건 도의 철칙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40년 만에 재출간된 H의 전기 서문에 도는 이렇게 적었다.
“어떤 이의 삶을 제법 긴 분량의 소설이라고 쳤을 때, 그가 남기고 싶은 문장들과 그걸 받아 적는 사람이 밑줄 그은 문장들은 각기 다를 것이다. 전기란 받아 적는 사람이 그은 밑줄들로만 재구성된 또 다른 버전의 삶이다. 삶의 진실은 타인의 동공으로 들여다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고 믿는다.”
-「트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