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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6470
· 쪽수 : 144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여기쯤에서 / 봄비 / 소음 /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이곳에 살기 위하여 / 한순간 / 벽 / 술 / 돌배나무 곁에 서서 / 말하자면 우리는…… / 생각이 생각을 이기는 시간 / 봄을 위한 파르티타 / 이 어둠 속에서 / 김수영 다시 읽기 / 나 홀로 길을 걸었네
제2부
다시 뜨거워질 수 없듯 / 당신을 위한 나의 변명 / 이런 삶 / 그곳 / 무(無) 관객 김수영을 위한 시 낭독 / 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 어디로 간 것일까 / 길상사 마루 끝에 앉아 / 흐르는 것을 / 한 번만 웃자 / 블라디보스토크 시편 1 / 블라디보스토크 시편 2 / 블라디보스토크 시편 3 / 나는 내 뒤에 숨는다 / 시를 썼다 지울 것 같은 / 쓸데없는 짓
제3부
저 나무 그림자를 / 누가 잘못 살았는가 / 당신은 하나도 모를 / 바꿀 수 없는 / 나의 하루 / 생은 다른 곳에 / 그렇다는 것 / 기억의 재구성 / 손 식기 전에 / 매창 시편 / 한 발짝 / 시를 읽자 / 한로 / 하백운대 / 도봉면허시험장에서 / 당신의 시 / 시 없이 살아보기
제4부
시를 위해 / 나 밖에서 나를 / 청산유수 / 길 / 아무것도 아닌 것들 / 내가 나를 돌아서듯 / 문학사의 한순간 1 / 문학사의 한순간 2 / 문학사의 한순간 3 / 문학사의 한순간 4 / 오래된 눈물 / 그와 나 / 꽃나무 1 / 꽃나무 2
작품 해설:기록과 반복 강박의 시쓰기 - 박세현
저자소개
책속에서
봄비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 김수영, 「적 1」에서
오늘도 나는 나의 적을 향해 가고 있다
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늘도 나의 적을 위해 가고 있다
적을 위해 사는 것 같다
나는 너무 많은 적을 두고 살았다
적은 적을 낳고 또 적은 적을 낳고
마침내 적은 나를 낳았다
적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남의 적을 갖다 내 적으로 만들었다
나의 적도 없고 남의 적도 없는 날
나는 내가 나의 적이 되었다
나는 나의 적이 되어 나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적이 되어 나를 위해 살고 있었다
많은 적들이 나를 위해 있었다
많은 적들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오직 적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적들은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나만 적들을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많은 적들은 나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적들이 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적들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봄비가 내리던 밤
나는 이제 단 하나의 적만 두고 다 갖다 버렸다
나는 많은 적들을 다 갖다 버렸다
나는 나도 다 갖다 버렸다
나는 이제 단 하나의 적을 향해 가고 있다
단 하나의 적을 위해 살고 있다
-나에게 남은 저 마지막 적은 누구인가
봄비 봄비 봄비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불 같은 불 같은 일
― 김수영, 「깨꽃」에서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소통도 아니고 광기도 아니다
신앙도 아니고 신념도 아니다
환상도 아니고 낭만도 아니다
철학도 아니고 심리학도 아니다
낙관도 아니고 비관도 아니다
어울림도 아니고 엇갈림도 아니다
떠돎도 아니고 멈춤도 아니다
번민도 아니고 연민도 아니다
인식도 아니고 직관도 아니다
영혼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다
명상도 아니고 묵상도 아니다
치욕도 아니고 치유도 아니다
김수영도 아니다 김종삼도 아니다
소월도 아니다 백석도 아니다
시인은 눈 한 번 마주친 독자도 없이 그저 제 발자국 지우며 살아간다
시인은 창문도 없는 독방에서 방금 쓴 시와 단 둘이 마주 앉아 있다
시인은 한밤중에 일어나 어제 하던 뜨개질을 이어서 다시 하고 있다
김수영 다시 읽기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김수영, 「눈」에서
김수영을 다시 읽었다
김수영을 다시 읽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모든 사랑이 다 첫사랑이듯
김수영은 언제나 처음이다
김수영을 깊이 읽었다
김수영을 깊이 읽었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시인들은 시를 깊이 읽지 않는다
김수영이 사십여 년 지나 다시 내게 다가왔다
김수영도 모르고 나도 모를 일이다
해 질 녘 도봉산 김수영 시비에 다가가듯
내가 김수영한테 다가갔다
아니다 김수영이 다가왔다
아니다 내가 다가갔다
아니다 아니다 나도 모르겠다
내 안에 아직도 김수영이 남아 있는지……
내 안엔 김수영뿐이었다
나는 오직 김수영을 읽었고
나는 다시 김수영을 생각했다
다시 나는 김수영을 읽었고
다시 나는 김수영을 생각했다
그리고 김수영을 썼다
오오 빛나는 사월 한 달 내내
나는 김수영을 다시 만났다
김수영도 모르고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알고 김수영만 모를 일이었다
나도 알고 김수영도 알고
오직 집사람만 모를 일이었다
아니다 나도 모르고 김수영도 모르고
집사람도 모를 일이었다
-그대 젊은 시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