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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6850845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0-12-15
책 소개
목차
근황
제1부
봄, 꿈 / 길동무 / 물안개의 향방 / 어떤 말도 못하는… 이 저녁에 / 수첩 생각 / 웃기 / 시인들은 남의 시를 얼마나 읽을까 / 보이지 않는 것 / 총 맞은 것처럼 / 물 먹은 인사들의 정경 / 4월 초하루 / 오늘의 문답 / 그 남자 / 이런 약속 / 쓸데없는 / 아프리카 혹은 먼 바다 / 철원… 에서 / 한 여름 밤의 꿈 / 꿈 밖에서
제2부
안목바다 / 시에 취하다 / 무엇 때문에 / 어떤 관계 / 쉿! / 목례 / 인연 / 그런 시간 / 아귀의 뼈 / 멀쩡한 나무 / 여기까지? / 우울의 유혹 / 이해와 오해 사이 / 화분을 깨뜨리다 / 비대칭의 시 / 모래 바람 / 봄밤 / 육십 다섯 지나 / 문어 / 여기 한 표
제3부
아무것도 없다 / 변산 / 내일이 없다 / 백두대간에 사는 내 친구 / 새벽 네 시 / 무제 시편 / 공원 같은 개 같은 / 갈 수 없는 길 / 일기예보 / 시인의 밤길 / 휠체어가 보이는 창밖 / 고립무원 / 중랑천에서 / 쓴맛? / 한낮의 봄비 / 봄비 이후 / 없는 시 / 시를 견디는 것 / 헛것
제4부
이 시는 어떻게? / 모자 / 고양이의 날 / 동해고속버스에서 / 교보문고에서 / 정진관 입구에 앉아 있던 한 사람 / 마장역 3번 출구 / 뜬구름 1 / 뜬구름 2 / 뜬구름 3 / 겨울밤 새벽 세 시 / 맨날 / 당신의 나무
<인터뷰> 시 쓰기의 즐거움 혹은 자존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근황>
-k에게
꼰대로 살았으니 꼰대가 되는 거
나이 먹어 더 늙을 일만 남은 거
사막의 초기 기독교인들처럼
어떻게 늙지 않을 수도 없고
기도를 하든 사나흘 금식을 하든
나이 먹고 더 늙어도 늙지 않기를!
어느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삶이란 개새끼가 되어 가는 것!
일주일에 한 번씩 술을 마시고
이틀은 집콕하며 누워 지내고
3주 연속 줄줄이 내리 마시고
누워 있다 보면 늙어 가는 것도 아니고
개새끼가 되어 가는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어 가는 것도 아니고
헛헛한 웃음이 되어 가는 것도 아니고
이 외로움만 더 낯설어지는 거
<길동무>
등산모를 쓴 남자 둘이서 걷고 있었다
앞의 남자는 왼쪽 팔이 허리춤에 걸려 있고
뒤의 남자는 앞의 남자를 뒤따르고 있었다
앞의 남자는 왼쪽 다리도 불편했다
나는 그들의 속도를 앞지르지도 못하고
맨 뒤의 3번 남자가 되어 걷고 있었다
다시 등산모 1번 남자와 2번 남자 사이엔
등산모자 두 개만한 간격으로 띄어져 있었고
등산모 2번 남자와 3번 남자 사이엔
팔을 쭉 뻗으면 닿을 만한 간격이었다
2번과 3번은 팔을 뻗을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암튼 등산모 남자 1, 2와 남자 3은
그렇게 길동무가 되어 길을 걷고 있었다
이번엔 야구 모자를 쓴 4번 남자가
등산모 2번과 남자 3번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2번과 3번은 남자 4번을 중간에 끼워주었다
남자 1번, 남자 2번, 남자 4번과
나까지 남자 넷이서 이렇게 걷고 있었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모자 넷이서 한 줄로 걷고 있었다
그때 5번 남자는 게송을 읊으며 뒤쫓아오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4번 남자를 따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5번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냥 중절모였고 말하자면 1번 남자였다
그는 처음부터 그들과 줄이 달랐다
수락산 이 산책길에서 시인 김종삼을 만났던
오늘의 소사(小史)를 혼자 기록하고 지우다
<물안개의 향방>
저 안개라도 한 입 가득 물고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안개가 없으면 맹물이라도 한 입 가득 물어야 할 것 같다
맹물이 없으면 침이라도 삼켜야 할 것 같다
-좀 잊고 살아도 될 것: 원통사 삼층보탑 낙성식, 상봉~동해 고속철도 승차권 예매율, 21대 4월 총선 지역별 정당 득표율 및 의석수, 지난 밤 꿈자리, 남신의주 강우량, 독일 뮌헨 불이선원 불사 소식, 3월 소비심리 지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980년대 시인들의 동정…
없던 안개가 잠시 안개가 되기 위해 입에 가득 물었던 맹물을 또 뱉어내거나
능선의 잔설이라도 녹여 바람의 어깨에 얹어 놓고 후후 날려보내야 하겠다
안개가 후후 날다 한쪽으로 휩쓸려 몰려가는 새벽엔
시린 손을 맨가슴에 쓰윽 집어넣듯 다시 저 능선에 손이라도 뻗어
이번엔 안개의 등이라도 흔들어 안개를 떠밀어내야 한다
안개여 어서 가렴!
더러는 떠밀려서 또 강변을 떠도는 물안개가 되거나
가난한 시인의 집 창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도처에 노숙인처럼 숨죽인 채 숨어 사는 안개가 되거나
몇몇은 새벽부터 물안개에 취해
서로 말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귀 기울여 엿듣다 보면
말을 높이는 자는 계속 높이고 말을 낮추는 자는 계속 낮추고
취한 것과 취하지 않은 것과 또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안개가 한번 킁킁거리며 무슨 짐승이라도 된 것마냥
한 호흡하고 나면
물안개는 바위를 삼키거나 눈앞의 뻑뻑한 풍경이 되거나 마침내 동해 먼 바다의 높은 파도가 되거나
안개의 힘이 닿지 않는 계곡의 나직한 물소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