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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20712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3-07-06
책 소개
목차
제1부
먹먹한 이별 / 오래된 침묵 / 지워진 길 / 단동역의 새벽 / 쭉 내자우 / 바닷길 족적 / 뤼순의 가을 / 압록강에는 섬이 많다 / 자작나무 편지 / 피라미의 가계 / 길은 활처럼 휘어진다 / 푸른 오리 / 당달봉사 / 강물 소리
제2부
압록강 물새 / 쌓여 있는 길 / 자작나무의 눈 / 얼음 왕국 / 혜산의 어둠 / 역류하는 강 / 압록강 지류 / 몽유 / 눈빛 대화 / 뜬눈 / 강변을 습격하다 / 어둠을 벗어난 그림자 / 구름 두부 / 백두산 일출
제3부
눈이 아프다 / 돼지 멱따는 날 / 제망매가 / 누이야 / 짝태의 눈 / 한눈으로 3국을 보다 / 장령세관 / 가슴에 흐르는 강 / 소야(消夜) / 변방의 넋두리 / 범법자들 / 늙은 개 / 훈춘에서 / 저녁 통증
제4부
황무지에 핀 민들레 / 철조망 증후군 / 필담(筆談) / 단단한 바람 / 동해 일몰 / 다시 압록강에서 / 북쪽 길 / 출렁거리는 신념 / 물의 기억 / 불편한 계절 / 손바닥 수맥 / 생의 줄기 / 막대자석의 습성 / 태풍의 눈
작품 해설 : 국경의 시학 - 맹문재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워진 길
아이가 엄마 손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 끝에 묻어난 계절이 안간힘 쓸 때
강물로 뛰어든 정강이가 시릴 즈음
단단한 각질 벗겨내는 물결처럼
잡목이 삼켜버린 길 위에 포개진 발자국은 침묵한다
강의 어깨를 물고
끝 간 데 없이 출렁거리는 국경
모래밭에 찍힌 화살표 물새 발자국이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렸던 편자의 깊이 같다
봉두난발 백성들 머리카락인가
반질거리던 길을 에워싼 잡초를 헤집는 바람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끊어진 철교
수풍댐 가르는 보트의 굉음
집안에서 만포 구리광산으로 연결된 교각
중강진의 악산과 사행천에 자리한 너와집들
혜산의 얼굴을 차단한 세관의 철문
남백두에서 발원한 강물을 건너던 길
보천, 삼지연, 송강하, 이도백하 그리고 천지
대홍단 감자 보따리장수와
화룡을 오가던 무산의 얼굴
(후략)
쌓여 있는 길
몸이 과녁인 줄 몰랐다
중심을 먹고 자란 나이테 속에 쌓인 길
절개된 눈벽의 피부에서 꿈틀거린다
단층 이룬 틈바구니마다
질긴 목숨들 몸부림친 흔적 선명하다
흩어졌던 외길이 모여 신작로 만들듯
걸음마다 허방 짚던 어두운 길눈
보푸라기처럼 흔들리는
가슴에 숨겼던 등불 하나 꺼내
작은 새 한 마리 허공으로 날려 보낼 일이다
골목에 쌓인 녹슨 시간의 침묵들
회색 이념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눈동자
소통의 손길 뻗어보아도
건너길 거부하는 시퍼런 물결이 두렵다
민둥산에 홀로 선 늙은 소나무
황톳빛 능선에 핀 진달래는
그래도 낯설지 않아 눈시울이 뜨겁다
건너편 길 따라 남으로 가면
숙부가 일궜다는 묵정밭에도 분홍빛 만개했을 터
저 길은 끝인지 시작인지
깊이 잠든 눈동자는 길을 잃어
허물어진 허공을 무리 지어 날아가는 날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