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근현대사
· ISBN : 9791130822228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5-02-21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유럽을 양분한 최고의 가문, 그 흥망성쇠의 역사
1.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가문
2.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아들을 낳아야 한다
1. 세 번 결혼한 레오폴트 1세와 상호계승약관
2. 여성 상속순위까지 확정한 국사조칙
혈육인가 정적인가
1. 탈출하는 왕자들
2. 사상 최악의 부자지간
3. 여왕의 아들로 산다는 것
4. 비운의 황태자
왕가의 결혼은 다르다
1. 베를린의 쇼윈도 부부
2. 공주의 첫사랑
3. 전통에 희생된 황후
동성애 스캔들
1. 프리드리히 2세와 프레데르스도르프
2. 프리드리히 2세와 알가로티
3. 이사벨라와 마리아 크리스티네
근친혼의 비극
1. 선천성 유전병이 있는 페르디난트
2. 조피 프리데리케의 야심
더 화려하게, 더 장엄하게
1. 우아한 상수시 궁전
2. 영광의 상징, 쇤브룬 궁전
독특한 출산과 장례 의식
1. 출산 과정의 공개
2. 시신의 일부라도 영원히
■ 마무리하며
■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이 탄생하기 이전 독일권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국가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였다.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렸다. 이 두 가문이 1918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호엔촐레른과 합스부르크, 이 두 가문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공통점은 후계자, 즉 아들을 얻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문만 그랬던 건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독일제국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비스마르크는 1848년 8월 21일 장녀 마리에가 태어나자 장인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아들이었다면 신께 무릎을 꿇어 감사했을 것이라는 사족을 붙였다. 호엔촐레른과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아들 집착이 심각했던 것은, 남자 상속인 없이 사망하면 왕위 계승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 근친혼도 부작용을 야기했다. 대다수 합스부르크 가문 위정자에게서 얼굴 기형, 말단 비대증, 선천적 매독 증세 등이 확인되고 수명도 짧았다. 후계자에게 근친혼에서 비롯된 유전병이 있어도, 합스부르크 가문은 장자상속 제도를 무조건 고집했다. 1835년 오스트리아 황제로 등극한 페르디난트 2세가 그 대표적인 일례라 하겠다. 호엔촐레른 가문에서도 근친혼이 잦았지만, 얼굴 기형 같은 유전병은 확인되지 않았다. (중략)
이 책에서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정치외교적 활동보다는 양국을 통치한 호엔촐레른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확인되는 흥미로운 특징이나 전통을 특정 사례를 통해 확인하도록 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카를 6세는 남자 후계자가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국사조칙을 발표했지만, 이를 통해 왕국의 통합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카를 6세는 국사조칙을 바로 공포하지 않고 당분간 비밀로 남겨두었다. 이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카를 6세는 당시 유럽의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후계자가 군대를 이끌고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국사조칙으로 그의 장녀가 오스트리아 왕위를 계승하면 그런 일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결혼하고부터 가능한 한 빨리 아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주치의들이 여기에 동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