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5468162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21-09-09
책 소개
목차
1. 북해의 주인
2. 감자와 소녀
3. 고요한 사냥
4. 보은
5. 버터플라이
6. 검은 고래의 속삭임
7. 마르가리타 (1)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저씨, 그럼 이만 주무세요. 침대에 이불 펴 놨으니까 거기서 주무시면 돼요.”
문득 꼬마가 어깨를 톡톡 치며 말해 왔다. 그새 방을 정리한 듯 이불은 말끔히 침대에 정돈되어 있었고, 꼬마는 그릇을 모아 담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리하겠다.”
“요 옆방이 제 방이니까, 다시 아프거나 하면 부르시면 돼요.”
“그러도록 하지.”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떠날 터였기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꼬마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다소 엉뚱한 말을 덧붙였다.
“저기, 이건 진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요. 우리 집에 총도 있어요. 저 되게 잘 쏘고요. 멧돼지도 잡아 봤거든요.”
“그런가.”
“네. 혹시 모르니까 알려드리는 거예요. 뭐, 아저씨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소녀의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단호했다. 지슈카는 그 의미를 떠올리며 속으로 가만히 웃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건 꼬마 나름의 경고였다. 흑심은 꿈도 꾸지 말라는.
생각해 보면 꼬마 입장에선 경계심이 들 법도 했다. 이런 깊은 산중에 정체 모를 남자와 단둘이라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 아니던가.”
지슈카는 진지한 얼굴로 말해 주었다. 한없이 당차 보이던 꼬마가 문득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하. 그렇죠. 생명의 은인.”
소녀는 안심한 듯 배시시 웃었다. 쟁반 위의 접시를 차곡차곡 다시 정리하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뒤돌아 방을 나갔다.
지슈카는 일단 침대에 걸터앉았다. 소녀가 잠들 때를 기다려 이곳을 나갈 생각이었다.
탁자에 놓인 소녀의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문이 빼꼼히 다시 열렸다.
그를 머쓱하게 쳐다보던 꼬마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바닥에 놓인 포크를 집어 들었다. 미처 챙겨 가지 못했던 물건인 모양이었다.
다시 방을 나서려던 소녀가 문득 생각난 듯 뒤돌아 물었다.
“근데요, 아저씨.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이름. 그러고 보니, 은인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소녀의 질문이 좀 이상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대의 이름을 어찌 알겠나.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무심히 흘러나온 그의 답에, 소녀가 몹시 머쓱한 얼굴을 했다.
“아. 그렇지. 알 리가 없지. 근데 어떻게 ‘루’라고 불렀어요?”
“……루? 내가 그 아이를 불렀던가.”
지슈카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미간을 구겼다. 어렴풋이 꿈을 꾸었던 것이 기억났다. 갑자기 왜 그 아이가 떠오른 걸까. 오래전에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 다른 사람이었구나. 뭐, 그렇겠죠.”
무슨 일인지 소녀는 조금 실망한 듯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지슈카는 나가려는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그리고 꼭 알아야 할 것을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
“해루요.”
“해루.”
예쁜 이름이었다. 부르기도 전에 입에 익어 버릴 것 같은.
“네. 바다 해, 눈물 루. 바다의 눈물이란 뜻이에요. 어느 책에서 ‘진주’를 그렇게 불렀대요. 혹시 《해저 2만 리》라고 알아요? 우리 아빠가 그 책을 너무 좋아해서.”
“눈물.”
지슈카는 가슴을 싸하게 훑고 지나는 그 단어를 가만히 곱씹었다. 소녀가 멋쩍게 웃었다.
“좀 그렇죠? 이름에 눈물이라니. 그래서 저는 절대 눈물 같은 거 안 흘려요. 울면 이름 때문에 운다고 할까 봐.”
“……눈물은 좋은 거다. 세상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 주었다. 소녀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어색하게 수긍을 했다.
“아, 그렇구나.”
그는 싱긋 웃으며 꼬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감사의 말을 했다.
“내 이름은 지슈카다. 고마웠다. 생명을 구해 준 것도, 귤도, 감자도, 모두 다.”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슈카 아저씨.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렴…… 해루.”
소녀가 배시시 웃었다. 어여쁜 미소와 함께 문이 닫혔다. 방 안에 맴돌던 싱그러운 기운도 동시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