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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43010971
· 쪽수 : 697쪽
· 출판일 : 2025-09-12
책 소개
목차
여인과 군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의 체험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의 체험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우리의 결막낭을 심장 활동의 도식처럼 도식화하는 활동은 어디에서 하는가. 밤에 우리가 남몰래 울음에 항복한다면, 그 눈물은 누가 세는가. 결국 누가 우리의 웃음과 고뇌를 걱정하는가. (…) 달의 먼지를 계산하기 위해서 또는 황폐한 암석을 지구로 가지고 오기 위해 비싼 물건을 쏘아 보낸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과학을 해야 하는가.
“아니요, 아니, 난 이젠 더 살고 싶지 않아요. 이미 1929년에 더 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기력이 많지 않았어요. 이제는 기력이 전혀 없어요. 전쟁 중에는 아들 에리히가 나를 돌보았습니다. 내가 늘 바랐던 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아들이 나이가 차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나이가 찼고 그들은 아들을 데려갔어요. 열쇠공 교육을 아직 마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조용하고 과묵하고 성실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떠나기 전에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위험했죠. ‘도망가라’라고 말했어요, ‘즉시’. 그러자 아들은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도망이요?’ 하고 내게 묻는 거였어요.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도망치다’가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했어요. 그러자 아들은 나를 웃긴다는 듯이 응시하더군요. 그 애가 어디 가서 말을 할까 겁이 났습니다. 그 애가 그렇게 하려고 했더라도 사실 어디 가서 말할 시간은 없었어요. 1944년 12월에 그 아이는 벨기에 국경으로 보내졌어요. 1945년 말에 가서야 비로소 그 애가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열일곱 살이었어요.”
“(…) 다시 책 한 권이 문제가 되었어요. 작가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였습니다. 책은 《유형지에서》였습니다. 그 후 나는 보리스한테 레니에게 1944년 말 유대인 작가를 추천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보리스가 말했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런 건 잊었습니다.’ 결국 레니는 쪽지를 들고 도서관으로 갔어요. 여자 직원 한 사람이 아직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꽤 이성적인 나이 든 부인이었다는 것이 레니의 행운이었어요. 여인은 레니의 쪽지를 찢고는 즉시 레니를 옆으로 데리고 가서 분명하게 말했어요. (…) ‘아가씨, 모든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군요. 도대체 누가 이런 책을 원하도록 당신을 여기로 보냈어요?’ 선생님께 또 말씀드리지만 레니는 끈질긴 데가 있습니다. 도서관의 중년 여인은 레니가 선동자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채고 레니와 단둘이 있는 데서 아주 정확하게 설명했어요. 이 카프카는 유대인이고 그의 책들은 모두 금지되었고 또 분서되었다는 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레니는 늘 그렇듯이, 놀라는 어조로 ‘그래서요?’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