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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여인과 군상

하인리히 뵐 (지은이), 사지원 (옮긴이)
지식을만드는지식
2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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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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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여인과 군상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43010971
· 쪽수 : 697쪽
· 출판일 : 2025-09-12

책 소개

하인리히 뵐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역행하는 주인공 레니의 삶을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려 구성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통해서 뵐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간적인 것의 가치를 새로이 부각한다.

목차

여인과 군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하인리히 뵐 (지은이)    정보 더보기
목공예를 가업으로 하는 가문의 여섯 번째 아들로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났다. 카이저 빌헬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39년 쾰른대학교의 독문학과에 입학하나 곧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다. 전쟁 중에는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 생활을 하기도 하고 꾀병과 서류 조작으로 탈영을 하기도 했다. “무의미한 전쟁을 위해서 결코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전후, 귀향해서 ‘전쟁에서 본 것’과 전후의 ‘폐허’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1949년 첫 소설 ≪열차는 정확했다≫를 출간하고 1953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후부터 독일 사회의 불균형적인 발전과 팽배해진 물질주의로 인한 도덕성의 결여에 대해 지적하고,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뵐이 보기에 독일 가톨릭교회는 정부의 자본주의 경제 정책에 순응하고 동조함으로써 독일에서 그 재정 기반을 확보해 갔기 때문이다. 특히 1959년에 발표한 ≪9시 반의 당구≫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망각하고 재무장을 논하며 오로지 이윤 추구와 소비 조장만으로 치닫는 독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1971년에는 성취 지향적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은 ≪여인과 군상≫을 발표하고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4년에는 한 무고한 여성이 언론의 횡포에 의해 사회로부터 매장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발표하고, 1979년에는 환경 문제를 다룬 소설 ≪신변 보호≫를 발표했다.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을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했던 뵐은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후 ‘쾰른 문학상’은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칭되었고,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의 광장도 그의 이름을 땄으며, 독일의 열세 개 학교에는 하인리히 뵐의 이름이 붙었다.1967년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한 그는, 1971년 독일인으로는 최초로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된다. 이미 독일 국내에서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데 거침이 없었던 그는 국제펜클럽 회장이 된 후 박해받고 있는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돕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현실적으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항상 사회에서 소외받고 억압당하는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1972년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더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현재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독일 작가의 하나로 꼽힌다. 1985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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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독일 정부 산하 하인리히 뵐 재단의 장학생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하인리히 뵐 연구로 박사 학위(Ph. D)를 취득했다.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와 생태기반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하인리히뵐학회 회장과 (사)생명의숲 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생태와 여성 및 문화이며 이 세 분야에 대한 100편 이상의 논문과 30여 편 이상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주요 저서로 《소외. 하인리히 뵐의 초기작품 연구》(독문), 《하인리히 뵐》, 《하인리히 뵐의 저항과 희망의 미학》, 《독일 문학과 독일 문화 읽기》, 《생태 정신의 녹색사회 : 독일》 등이 있으며 공저로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 《하인리히 뵐과 평화》, 《하인리히 뵐과 행복 사회》, 《생태사회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 《생태사회와 세계 시민 의식》 등이 있다. 역서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열차는 정확했다》, 《9시 반의 당구》,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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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의 체험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의 체험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우리의 결막낭을 심장 활동의 도식처럼 도식화하는 활동은 어디에서 하는가. 밤에 우리가 남몰래 울음에 항복한다면, 그 눈물은 누가 세는가. 결국 누가 우리의 웃음과 고뇌를 걱정하는가. (…) 달의 먼지를 계산하기 위해서 또는 황폐한 암석을 지구로 가지고 오기 위해 비싼 물건을 쏘아 보낸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과학을 해야 하는가.


“아니요, 아니, 난 이젠 더 살고 싶지 않아요. 이미 1929년에 더 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기력이 많지 않았어요. 이제는 기력이 전혀 없어요. 전쟁 중에는 아들 에리히가 나를 돌보았습니다. 내가 늘 바랐던 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아들이 나이가 차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나이가 찼고 그들은 아들을 데려갔어요. 열쇠공 교육을 아직 마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조용하고 과묵하고 성실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떠나기 전에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위험했죠. ‘도망가라’라고 말했어요, ‘즉시’. 그러자 아들은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도망이요?’ 하고 내게 묻는 거였어요.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도망치다’가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했어요. 그러자 아들은 나를 웃긴다는 듯이 응시하더군요. 그 애가 어디 가서 말을 할까 겁이 났습니다. 그 애가 그렇게 하려고 했더라도 사실 어디 가서 말할 시간은 없었어요. 1944년 12월에 그 아이는 벨기에 국경으로 보내졌어요. 1945년 말에 가서야 비로소 그 애가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열일곱 살이었어요.”


“(…) 다시 책 한 권이 문제가 되었어요. 작가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였습니다. 책은 《유형지에서》였습니다. 그 후 나는 보리스한테 레니에게 1944년 말 유대인 작가를 추천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보리스가 말했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런 건 잊었습니다.’ 결국 레니는 쪽지를 들고 도서관으로 갔어요. 여자 직원 한 사람이 아직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꽤 이성적인 나이 든 부인이었다는 것이 레니의 행운이었어요. 여인은 레니의 쪽지를 찢고는 즉시 레니를 옆으로 데리고 가서 분명하게 말했어요. (…) ‘아가씨, 모든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군요. 도대체 누가 이런 책을 원하도록 당신을 여기로 보냈어요?’ 선생님께 또 말씀드리지만 레니는 끈질긴 데가 있습니다. 도서관의 중년 여인은 레니가 선동자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채고 레니와 단둘이 있는 데서 아주 정확하게 설명했어요. 이 카프카는 유대인이고 그의 책들은 모두 금지되었고 또 분서되었다는 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레니는 늘 그렇듯이, 놀라는 어조로 ‘그래서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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