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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91143021441
· 쪽수 : 139쪽
· 출판일 : 2026-04-27
책 소개
목차
권1 상, 갑자년(1864)∼정해년(1887)
운현궁
장동 김씨
국혼
김흥근의 별장
세도
대원위 분부
태산을 평지로
원납전
만동묘
서원
당백전과 청전
천주교인 남종삼
도모지
해인사 경판각
운현의 청지기
운현의 사람 쓰기
종친과
포량미
북촌과 남촌
어재연의 순절
잠영록
산림
대원군이 실각한 이후
척양비
최익현의 상소
최익현의 생활
대원군의 10년 통치
십 년 세도
운현궁 쪽 사람
전주 아전
김상현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기억력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거벽·사수
조흘강과 매좌
과거시험장
지방에서 보이는 시험
과거 매매의 값
가수와 실재
낙폭전
석 돈 진사
궁중 연회
신분제도
무과제도
무관명가
신래
유가
대원군의 수완
나합
우두법의 시행
학질의 금계랍
석유
개항 이후의 수입품
영선사 김윤식
전환국
북관묘
화륜선 구입
임오군란
대원군의 재집정
문묘종사
복제 개혁
민영익의 저택
개항
과거 매매
토문강 국경선
육영공원
청붕과 허교
장탕반
서얼
전보국
송금
권1 하, 무자년(1888)∼계사년(1893)
세자의 소년 시절
노인 난리
최제우의 복주
권2, 갑오년(1894)∼무술년(1898)
갑오년(1894), 고종 31년
전봉준
아리랑 타령
옥당풍년
중궁의 총명
국한문 혼용
은전과 엽전
을미년(1895), 개국 504년
영은문·삼전도비의 훼철
십 년 사이의 세상 변화
전봉준 등 처형
형사법 개정
전주의 약령 설치
한성의 승금 해제
백관의 연봉 제정
관리의 연봉 제정
호열자의 유행
공문서를 국한문으로 하다
개국기원절
광견병
울릉도
인정종·파루종
단발령
병신년(1896), 개국 505년
단발령과 의병
비
지방 관원과 연봉
지방 관원의 임기 및 휴가
정유년(1897), 건양 2년
원구단
국기 제정
무술년(1898), 광무 2년
황성신문 창간
대원군 장례
철도사의 설치
독립협회
권3, 기해년(1899)∼계묘년(1903)
기해년(1899), 광무 3년
조경단 축조
의학교 설립
양교의 성행과 종현학당의 건립
전차
채회의 금지
명성후의 유혼
발명가
경자년(1900), 광무 4년
흑사병의 유행
일본의 흑사병원균 규명
영남 활빈당
신축년(1901), 광무 5년
희랍교 전도
안남미 수입
일본인의 식민 계획
계묘년(1903), 광무 7년
일본 상인들의 기념잔
양무호
경부선 철도 공사
권4, 갑진년(1904)∼을사년(1905)
갑진년(1904), 광무 8년
상화가와 매음가
무당 엄금
을사년(1905), 광무 9년
정토종
성적도 배포
일본인의 지금고 설치
권5, 병오년(1906), 광무 10년
독도
화투의 출현
권6, 정미년(1907)∼경술년(1910)
정미년(1907), 광무 11년
구미식 혼례
무신년(1908), 융희 2년
석전 금지
작잠법
기유년(1909), 융희 3년
단군교 창설
경술년(1910), 융희 4년
사색의 양반 조사
천조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1.
운현(雲峴)은 임금의 친부로서 총재(?宰)의 일을 행사했으니 임금의 자리에 앉지 않았을 뿐이지 엄연히 섭정을 한 것이다. 그 10년 동안은 국가가 무사했으니 정히 천 년에 두 번 다시없는 기회로 크게 일을 할 수 있는 때였다. 만일 그가 송(宋)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 원우(元祐) 연간에 했던 것처럼, 힘써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좋은 법을 강구하며 나라의 쓰임을 아끼고 백성을 사랑하여 어여삐 여기고 진실한 뜻이 법조문 밖에서 무르녹아 드러나도록 했다면 당시의 상황에서 이상적인 정치를 금방 회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석유는 영·미 등 여러 나라에서 산출되는데 혹은 바닷속에서 나온다고도 하고, 혹은 석탄에 근원하는 것이라고도 하며, 또 돌을 가열하여 짜낸다고도 하는 등 그 설이 하나가 아니나 천연의 산물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경진년(1880) 이후 처음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색이 붉고 냄새가 무척 지독했으며 한 홉이면 열흘 밤을 켤 수 있었다. 몇 년이 되지 않아 색이 점차 맑아지고 냄새가 점점 옅어졌으며 화력도 약해지더니 한 홉에 겨우 사나흘 밤밖에 켜지 못했다. 석유가 들어온 이래로 산과 들에 기름 짜는 열매들은 자라지 않게 되었다. 전국을 통틀어 위로부터 아래까지 사람들이 석유가 아니면 등불을 켤 수 없게 되었다. 무릇 물(物)은 양쪽이 다 커질 수는 없는 것이다. 양면(洋綿)이 들어온 뒤로 재래종의 면화 농사는 잘 되지 않았고 서양 철이 들어오자 철의 산출이 아주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일이 종종 있으니 또한 괴상한 일이다.
3.
울릉도 바다 동쪽으로 백 리쯤 가서 하나의 섬이 있는데 ‘독도(獨島)’라고 한다. 예부터 이 섬은 울릉도에 속했는데 일본인들이 억지를 부려 그들의 영토라 주장하며 조사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