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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43033802
· 쪽수 : 358쪽
· 출판일 : 2026-10-20
책 소개
목차
서문
초판 서문
상하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시장에서 나온 인력거 떼가 꽃과 채소를 가득 싣고 흘러들었다. 순식간에 장미와 배추가 냄새를 풍기며 산키와 고야 주변에서 요동쳤다. 건물의 그늘을 빠져나올 때마다 꽃과 채소는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싱그럽게 빛났다. 산키는 생각했다. 흡사 장례식 같은 꽃의 흐름은 교코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닐까? 그러자 그는 남의 행복을 시샘하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만약 자신이 교코의 남편처럼 행복했다면, 자신처럼 불행한 누군가가 틀림없이 자신이 죽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도도히 흘러가는 장쾌한 삶의 강이었다. 어디에 슬픔이 있는가? 어디에 행복이 있는가? 묘지에 간들 슬프기 그지없는 말이 끝도 없이 멋지게 적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곧 이것은 자신의 낯짝을 갈기는 아침 햇살 때문에 떠오른 감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엉겁결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산키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난간에 기대어 호박씨를 씹었다. 그는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막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으로 돌아가자니 더더욱 한심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곳 중국 식민지로 모여든 사람은 본국으로 돌아가면 도무지 살길이 막막했다. 그러다 보니 본국에서 살아갈 방도가 없는 각국 사람들은 여기로 모여들었고, 서로 의지하면서 완전히 눌러앉았다. 그리고 끝끝내 개성을 잃은 기괴한 떼거리가 되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립 국가를 만들었다. 더구나 각 인종은 죽음과 맞닿은 고독에 젖어 살면서 남아도는 화폐를 빨아들이는 본국의 빨판이 되어 살아가야 했다. 자연히 여기서는 인간의 육체가 아무리 무위도식한다 해도 마냥 멍하니 있는 것마저 그 육체가 공간을 차지한 이상, 러시아인을 빼고는 애국심을 드러내며 활동하는 셈이다. 산키는 그런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상 그가 일본에 있었다면 일본 음식을 그만큼 축낼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상하이에 있는 한, 그의 육체가 차지한 공간은 변함없이 일본의 영토가 되어 흘렀다.
‘내 몸은 영토다. 내 몸도 오스기의 몸도.’
곡선으로 이어진 손잡이들 사이로 꼼짝하지 않는 남자 직공들이 한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거센 파도처럼 솟아오르는 솜뭉치들이 기계를 물어뜯으며 요동쳤다. 산키는 소용돌이치는 목화솜 속에 파묻힐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생산을 위한 공업인가, 소비를 위한 공업인가? 그렇게 산키의 사상은 그 두 가지가 회전하는 동력 사이에서 기진맥진한 모기처럼 몸부림쳤다. 그는 중국인 직공들을 동정했다. 하지만 동정심 때문에 중국에 매장된 자원을 캐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산의 진보를 꾀할 수 있을까? 어디에서 소비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자본은 진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매장된 자원을 발굴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증대를 혐오해 숨통을 끊어 놓고 싶어 한다면 반항하라, 반항을.
산키는 권총 손잡이를 쥐고 직공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모국이 중국인 직공을 쓰지 않는다면, 필경 영국과 미국이 일본 대신 나서리라. 만일 영국과 미국이 중국인 직공을 쓴다면, 머잖아 일본은 영국과 미국 밑에서 일하게 될 테지. 그렇게 되면 동양은 끝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