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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5551646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1-09-15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며 4
평설 긴 세월 아름다운 저녁놀_ 김우종(문학평론가, 전 덕성여대 교수) 242
1. 분홍 보자기
영창제재소 14
엄마의 아물지 않는 상처 18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23
분홍 보자기 28
난 조카가 아니거든요 34
엄마의 명품지갑 41
나의 첫 감전사고 46
새색시 회가回家 가던 날 53
2. 밥값은 해야제
밥값은 해야제 60
50원의 전설 69
아버님 사랑이 태산이라면 74
잡상인 출입금지법 82
엄마니까 89
옛날 그 동생이 아니었다 96
동화책에 나오는 외할머니는 102
3. A SUMMER PLACE
종부, 득남하다 110
나의 비밀작전 1호 117
내가 왜 지 마누란데 123
오늘 또 어데 갔더노 130
길은 눈으로 찾나 139
어떤 슬픈 착각 143
A SUMMER PLACE 148
지금 그녀 곁에는 누가 있을까 155
4. 그날을 기다리며
남편에게 들은 세 번의 찬사 162
제비를 기다리며 168
고개를 들어요, 그리고 172
구령의 힘 178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183
나는 가정주치의 194
그날을 기다리며 201
아주 특별한 일흔두 번째 생일 선물 206
5. 남편은 아직 현역이다
생각 따라 마음 따라 212
미미는 하루에 두 번 이사했다 216
능소화를 보며 220
초대받지 못한 축제 223
바다와 함께 춤을 227
어느 특별한 아침 231
남편은 아직 현역이다 234
저자소개
책속에서
영창제재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은 제재소를 했다. 제재소 안에 살림집이 있었기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은 산판에서 실어 온 나무와 갓 켜 놓은 목재 속에서 보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추운 겨울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아랫목에 발을 모으고 새벽잠에 혼곤히 빠져 있을 때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소리가 차츰 가까워 오면 아버지는 고동색 골덴 돕바를 입고 엄마가 짠 털목도리를 두르고 밖으로 나가시곤 했다. 인부들의 참을 준비하기 위해 엄마도 뒤따라 나가셨다. 아버지가 나가자 곧이어 트럭 조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스톱!”
스톱 소리와 동시에 엔진 소리가 멈추었다.
“수고들 많았네.”
아버지 목소리를 신호로 아름드리 원목을 부리는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나무가 트럭에서 떨어질 때마다 땅이 진동했다. 잠결에서도 집이 무너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일 년 내내 며칠에 한 번씩,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에 그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어이, 조심하라구.”
아버지의 두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야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운전수, 조수 두 아저씨가 통나무를 양쪽에서 잡고 구령을 붙여 가며 차에서 땅으로 떨어트렸다. 멀찌감치 서서 조심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계시는 아버지가 추워 보였다.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아버지의 하얀 입김을 보며 내 머릿속이 갑자기 싸해졌다. 한밤중에 일어나야 하는 아버지의 고달픔을 느꼈던 것일까. 가족을 위해서 새벽잠을 깨야 하는 아버지가 안돼 보이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방 안에 앉아 있어도 바깥에서 인부들 일하는 소리와 나무를 켜는 기계톱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제일 처음 들려오는 것은 ‘윙’ 하는 회전 톱날이 돌아가는 부드럽고 순한 소리였다. 그러다가 나무에 닿으면 ‘웽’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때로는 ‘푸우~’ 하는 문풍지 떠는 소리, ‘쇠에~’ 하는 파리한 울음소리, ‘쏴아~’ 하는 말간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소리도 났다. 그 소리는 여름에 들으면 피서를 온 듯 시원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끼~익’ 하는 소리도 들렸다. 톱이 나무 옹이를 만나면 내는 소리였다. 괴롭다는 소리로 들릴 적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로 들릴 때도 있었다.
나에게 나무 켜는 소리는 모두 아름답고 경쾌한 음악 소리였다.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통나무는 둘, 넷, 여덟, 운명이 기구한 나무는 열여섯 조각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길이, 넓이, 굵기가 다양했다.
미끈하고 늘씬하게 자른 나무는 종류별로 이름표를 달고 제재소 한쪽에 세워졌다. 따로 놀거리가 없던 나는 친구들과 나무 사이를 드나들며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나무 뒤에 숨어 있으면 싱그럽고 풋풋한 냄새가 진동했다. 깊이 들이마시면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박하향처럼 콧속이 화해지기도 했다. 숨바꼭질이 싫증나면 톱밥을 가지고 놀았다. 집도 짓고 굴도 파고 다리도 만들었다.
‘영창제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던 큰 나무 대문과 마당이 넓던 그 집은 나의 왕국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첫째 공주였다. 친구들은 서로 나의 왕국에 놀러 오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뇌물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엄청 으스댔다. 내가 제재소 집 딸인 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공주는 이제 늙어 버렸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지금도 톱날이 나무를 파고들 때 나던 상쾌한 마찰음이 들리고, 송진 냄새 풀풀 나던 목재 더미가 떠오른다. 아마 내 유년의 왕국 ‘영창제재소’는 그 이름처럼 영원히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엄마의 아물지 않는 상처
내가 여섯 살 때쯤이었을까. 집에서 부르는 내 이름은 ‘귀동’이었다. 가녀린 체격 때문인지 아니면 나긋나긋한 성격 때문이었는지 어른들한테 귀여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물론이고 동네 강아지까지 벌벌 떨던 할아버지를 나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일찍 상배하고 재혼하신 할아버지는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따로 사셨지만, 할아버지 집 아래채 드나들듯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지금부터 까마득히 먼 6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날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오후 네다섯 시쯤이나 됐을까, 여름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 있었다. 하얀 모시옷을 입으신 할아버지께서 긴 담뱃대를 물고 마당에서 1미터도 더 올라간 대청마루에서 왔다 갔다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보기에는 딱히 할 일도 없고 만날 친구도 없으니 그저 잘 차려입고 폼이나 잡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걸을 때마다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할아버지 그림자와 노시는 것 같기도 했다.
같은 시간에 골목 끝에서 친구들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에 맞춰 고무줄뛰기를 하는지, 노랫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나도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살며시 삽짝을 나섰다. 그런데 삽짝을 다 나가기도 전에 할아버지께서 부르셨다. 심부름을 시키셨다. 무슨 심부름이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담뱃잎을 사 오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할 일 없는 할아버지가 가시면 될 걸, 왜 친구들한테 가려는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느냐는 말이다.
못 들은 체했다. 삽짝을 막 벗어나려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화끈했다. 할아버지가 물고 계시던 대꼬바리가 날아왔던 것이다. 피할 새가 없었다. 손으로 만져봤다. 뜨끈뜨끈했다. 손바닥이 흥건했다. 피였다.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뒤뜰에서 후다닥 뛰어나오는 엄마는 장닭처럼 빨랐다. 마루 위에서 화와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 계시는 할아버지를 본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피를 흘리고 서 있는 나를 장독대로 데리고 갔다. 잽싸게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 주었다. 그때 엄마 얼굴은 쓰디쓴 한약을 삼킨 표정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한숨처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성품도 참 대단하시지. 우째 아한테 대꼬바리를 던지시노….”
그러고는 할아버지 말씀을 안 들은 나를 작은 소리로 책망하셨다.
“불같은 너거 할배 성미는 와 그슬리고 그라노.”
아픈 것보다도 크게 야단맞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엄마의 힘없는 꾸지람을 듣는 순간 뒤통수 아픈 것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떨고 있는 엄마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뒤통수에서 빨간 피와 누런 된장이 뒤섞인 벽돌색 피가 나와 하얀 헝겊을 금방 적셨다. 며칠 동안 하루 한 번씩 새 된장을 붙였고 열흘이 지나서야 겨우 상처가 꾸덕꾸덕해졌다. 치료를 할 때마다 엄마는 혀를 찼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되뇌셨다.
“아이고, 참 성품도 대단하시제….”
투창 선수도 아닌 할아버지께서 던진 대꼬바리가 하필이면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혔다. 분명 본의가 아닌 우연이었겠지만 어쨌든 내 머리에는 가로로 1센티가량의 구멍이 났다. 엄마 가슴에는 아마도 100센티도 더 되는 큰 구멍이 났을 것이다. 뒤통수가 다 나았을 때도, 아니 시집가서 엄마 곁을 떠난 후에도 엄마 가슴에 난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 싶다.
그 상처 자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머리카락이 잘 나질 않았다. 엄마 가슴에 난 상처가 아물지 않듯이.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시아버님한테 꾸지람을 듣고 우는 내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맨들맨들한 내 뒤통수에 손이 갔고, 그때마다 엄마의 눈물 어린 얼굴과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때 엄마의 아픔을 아파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