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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059721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1-11-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영웅에게
후에로 가는 길
내 손안에 있소이다
을의 눈물
꿩 타령
치매 예방하기
잊혀진 계절
각화동
장군의 귀환
호반의 여인
인연
평설
무의미한 이념의 쟁투에 휩쓸려 사라져간 한 인간의 아픈 삶
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니 아부지는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죽었더라도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도통 알지 못한다. 죽었다면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보람없는 죽음을 바로 개죽음이라 한단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대죄를 졌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니 아부지는 공산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농사꾼 노릇 면해보려고 출세 한번 해 보겄다고 국군에 지원한 건데 줄을 잘 못 선 것이제. 처음에는 엄연한 국군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반란군이 된 거여. 수찬이 아부지를 보거라. 같은 날 군대를 갔는데도 줄을 잘 서서 저렇게 출세하지 않더냐. 이 모두가 운명인 거여!”
어머니는 처음으로 개죽음과 운명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 ‘영웅에게’ 중에서
과연, 티엔무 사원 한 켠 별채에는 틱광득 스님이 소신공양 때 손수 몰고 간 승용차와 서양의 메스컴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전송된 스님의 몸이 불타는 사진 그리고 거센 불길에도 타지 않고 원형 보존된 스님의 심장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선생님! 제가 한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문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여러 작품 중에서도 〈등신불〉을 감명 깊게 읽었답니다. 〈등신불〉의 주인공인 만적과 틱광득 스님의 행적은 역시 닮은꼴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호안의 그 말은 내 뒤통수를 내려치는 해머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국 문단까지 섭렵한 호안에게 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에서 말한 등신불等身佛은 당나라 때 만적萬積이라는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고 타다 굳어진 몸에 그대로 금물을 입혀 만들어진 불상을 말하는데 지금도 중국의 정원사에 모셔져 있다
- ‘후에로 가는 길’ 중에서
“당신 그때 마음고생 많았죠?”
그는 난생처음 이 길을 밟았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오른손으로 연륜이 감지되는 아내의 가냘픈 손을 살포시 잡아주었다.
“고생은요. 당신의 마음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당시의 의미를 회상하는 아내의 두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이불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그를 따라 나선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말이 전출이지 귀양살이 떠나는 것과 다름없는 험한 여정에 아내는 동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직장 아니면 다른 직장 없을까, 까짓 거 미련 그만 버리세요!’
그런 말이 나올 법한데도,
“파이팅! 딴 맘먹으면 절대 안 돼요? 우리에겐 아직도 희망 찬 미래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으니까요. 안 그래요? 여보!”
하며 아내는 혹여 소심한 남편이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대구가 가까워질수록 교통량은 많아지고 있었다. 논공휴게소부터는 아예 거북이 걸음이었다. 그는 가냘픈 아내의 왼손을 어루만지며 짜증나는 체증의 고통을 스스로 달래고 있었다.
- ‘을의 눈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