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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외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73322440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5-08-25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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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져버리지만, 사라진 것은 형태를 잃음으로써 언제까지고 남지요. 나한테 보이는 것은 그런 거예요. 많은 것이 흘러 여기까지 왔어요. 부모를 잃은 새끼 곰이라든가, 먹이 냄새에 이끌린 여우라든가, 태곳적에, 여기에 옮겨와 살게 된 아이누 사람들도 사실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강에서 생선도 낚고, 짐승도 잡을 수 있고, 나무 열매도 많이 있고. 이 주변을 개간해서 안치나이라는 한자를 갖다붙인 본토 사람들도 사실은 여기를 목적 삼아 온 게 아니었죠. 중계 지점으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어느 틈엔가 정착해서 살게 된 거예요. 여기는요, 그러니까 누구한테도 목적지가 아닌 셈입니다. 태곳적부터.”
미노리카와 씨는 나지막이 웃었다.
“그렇지만 어떨까요? 사실은 누구나 그저 흘러갈 뿐이잖아요. 무언가가 운반하듯이 어느 틈엔가 도달한 곳에 사람들은 서 있는 거예요. 바람에 운반되는 씨앗이나 마찬가지로, 어디에 있든 여행지 같은 거지요. 여행지니까 사람들은 쉽게 맺어지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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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히코가 만드는 것은 요리든 음료든 생략하는 부분이 없고 어딘가 엄숙했다. 가즈히코 안에 게이코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물코 같은 수순과 오차 없는 저울과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지침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같이 있을 때, 안심이 되는 면도 되고, 거기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려고 할 때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과도 간단히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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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안내한 것도 아닌데 게이코의 장갑 위에 떨어진 눈은 우연찮게 이렇게 긴 시간 응시되지만, 대부분의 결정체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갑자기 시작된 되돌릴 수 없는 여행의 앞길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영구히 착지하지 않는 눈은 한 조각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사실뿐이다.
몸속까지 차가워진다. 주위에는 이미 눈의 하얀색이 퍼져 있다. 서둘러서 무엇인가를 숨기듯이 골고루,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또 소리 없이 눈은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