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고려시대
· ISBN : 9791156122661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3-12-27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면서
1장 서긍 길을 떠나다
봄날에 떠난 사행길|신선이 점지해 준 아이|현명하고 청렴한 관직 생활|황제도 반한 글씨와 문장
2장 12세기 초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연운 16주를 차지한 거란제국|탕구트족의 나라 서하|새롭게 부상한 북방의 강자 여진|고집 센 천재 개혁가 왕안석|집권당에 따라 달라진 송의 대외 정책|풍류천자의 방만한 재정 운영
3장 송의 사신선 신주와 객주
신주라는 말에 담긴 의미|신주와 객주의 규모와 형태
4장 신주의 고려 항로
신주가 있는 사명으로|바다로 나간 신주와 객주|두려움의 바다 흑수양
5장 고려의 바다에 들어선 송의 사신단
봉화가 시작되는 흑산도|서긍이 만난 첫 고려인|김부식과 만난 서긍|다양하게 생긴 고려의 선박들|군산도에서 마도로|두 번째 상륙지 안흥정|자연도라고 불렸던 영종도|고려 최대의 무역항 벽란도
6장 예성강에서 개경으로
엄숙한 고려 의장대|송의 사신 행렬|산으로 둘러싸인 고려의 도성|서긍의 눈에 비친 개경의 풍경|고구려와 고려를 구분하지 못한 서긍|생각보다 엉성한 고려의 성곽
7장 서긍이 본 고려의 궁궐과 도성
장식이 빼어난 신봉문|궁궐 꾸미기를 좋아하는 고려인들|왕의 생일잔치를 열었던 장경전|학술기구 청연각과 보문각|크고 작은 9개의 전각들|도성 안의 여러 관청들|쌀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창고|빈약한 시장과 허울뿐인 화폐
8장 서긍이 만난 고려 사람들
어진 왕의 기질을 갖춘 고려왕|고려 최고의 훈척 이자겸|문장이 뛰어난 윤관의 아들 윤언식|소동파와 비견할 만한 김부식|수염이 아름다운 김인규|중화의 풍모를 가진 이지미|연회에서 만난 사람들|학구열이 높은 고려인들|송의 태학에 입학한 고려인들
9장 고려인들의 복식과 의장
관등에 따라 장식과 색깔이 다른 관복|갑옷을 입은 말과 여러 종류의 수레|행진할 때 세우는 여러 종류의 기치旗幟|신분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고려인들의 옷차림|고려식 히잡, 몽수를 쓴 고려의 귀부인들|고려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한쪽 머리 묶기|물건을 이고 지고 아이까지 업은 고려 여인들|예의 바르고 부지런한 하급 관리들|사신의 시중을 드는 하인들|재주가 좋은 고려의 수공업자들
10장 고려의 풍속
부처를 숭상하는 나라|불을 밝히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단술과 떡이 빠지지 않는 잔칫상|관리들의 일 처리|관리가 관리를 만났을 때|관리가 행차할 때|말을 타는 고려의 부인들|깨끗한 고려인, 잘 씻지 않는 중국인|산지에 만들어진 고려의 다락논|고기보다는 생선을 많이 먹는 고려인들|도살과 고기 요리에는 서툰 요리사|고려의 나무꾼|나무에 칼로 새겨서 셈하는 서리들|공덕을 쌓는 고려인들|고려의 특산물
11장 사신관과 주변의 건물
사신들의 숙소 순천관|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방|순천관 뒤편의 사신 숙소|여러 사신의 거처와 아름다운 정자들|사우와 도교사원|개경에서 가장 화려한 정국안화사|큰 종이 걸려있는 광통보제사|왕실 사찰 흥국사와 국청사
12장 고려에서 본 그릇과 도구
은으로 만든 그릇|백동과 구리로 만든 그릇|물총새 깃을 닮은 고려의 비색 청자|차 마신 후에는 탕을 마시는 고려문화|투박하지만 실용적인 도기 술독|등나무를 엮어서 만든 광주리|죽솥과 물항아리|칼과 붓이 들어있는 만능 필통
13장 돌아오는 길
신주에 다시 오른 사절단|위험한 항해, 연속되는 위기|자나깨나 나라 걱정
나가면서
《고려도경》은 어떤 책인가|기적처럼 전해진 《고려도경》|21세기에 본 12세기의 동아시아 상황|다시 《고려도경》에 주목하는 이유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122년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를 보내려고 준비할 무렵, 송에 입공한 고려의 사신이 글씨에 능한 자를 구해 고려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고려 사신의 요청을 들은 휘종은 노윤적을 국신사로 파견할 때 서긍을 데리고 갈 것을 명령하였다. 그의 임무는 휘종이 고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고려에 대한 각종 정보를 글과 그림으로 제작해 오는 것이었다.
1123년 송 국신사 일행의 고려 사행은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1122년에 세상을 떠난 예종에 대한 조문 조서와 조의 물품의 전달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책봉을 권유하는 휘종의 뜻을 전함으로써 고려와 군사적인 동맹 관계를 견고히 구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휘종은 고려에 대한 송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원풍 시기의 사례에 따라 신주를 제작할 것을 명하였다.
고려인들은 송 사신이 흑산에 이르면 밤마다 산의 정상에서 봉화를 피워 다른 지역에 그것을 알린다는 것이다. 사공의 말에 따르면 흑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봉화를 피우면 그것이 해안을 따라 개경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조정에 사신의 도착 여부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공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