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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6410478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6-01-22
책 소개
목차
-11- 13
-12- 59
-13- 100
-14- 140
-15- 178
-16- 214
-17- 252
-18- 288
-19- 322
에필로그 353
외전 373
저자소개
책속에서
“금본위제, 뭔지 알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질적인 질문이 이 순간 서경은 너무도 반가웠다.
“중앙은행이 화폐 제도의 기초가 되는 화폐를 금화로 발행하여 시장에 실제로 유통시키는 것을 말하는 말입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웠군. 내 첫 수업 강의 내용까지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동의한 아르바이트 기간을 잊었을 리는 없고. 정확히 사정이 이래서 못 하겠다는 말조차 난 들을 자격이 없는 건가?”
빈정거림인가?
여문혁이 거시경제학 첫 수업에 들어와 한 강의 내용이었다. 꼼꼼하게 필기하고 외웠기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질문을 왜 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치명적일 만큼 가까이 있는 그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는 뭐라도 생각을 해서 매달려야 했다.
“교수님, 저는…….”
차마 그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서경은 사정하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곧 서경의 말은 끊겼다. 그녀의 머리 위를 큼직한 손이 덮어버렸다. 뜨거움이 일순간 머리 위로 몰린다. 숨까지 참으며 그가 손을 떼어내길 기다렸다.
“신서경.”
“……네.”
그가 제 이름을 부른다. 저조차도 싫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이름. 누군가에게 뭔가의 호칭으로 불린다는 것, 참 싫고 징그러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불러주니 제 이름이 제법 그럴 듯하게 들렸다.
“내 대답은…….”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숨은 참을 수 있는데, 미친 듯 움직이는 심장은 제가 어쩔 수 없다.
“안 되겠다. 사정은 알아서 처리하고 약속대로 매일 와. 일요일만 빼고.”
서경은 참았던 숨을 조금씩 끊어서 내뱉었다.
“대답해.”
안 된다고, 더는 여기에 올 수 없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의 다그침에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신서경, 대답해. 오겠다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은근하고 끈질겼다. 이성으로 생각한 대답이 입에서 엉뚱한 말로 흘러나왔다.
“……네.”
서경은 제 입으로 한 말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아닌데……. 상대하기 힘든 상대를 만나도 제 의견은 되도록 분명하게 말하려 노력하고 살았다. 그런데 왜 엉뚱한 대답을 했을까. 어떻게라도 되돌리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는 순간.
“착하군.”
머리를 덮었던 그의 손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다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았다. 서경은 숨을 멈췄다. 향기를 맡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코에 가져간 그의 모습이 보고도 믿기지 않아 눈을 감았다.
“그럼, 이제부터 일을 해볼까?”
누가 뭐란 것도 아닌데 아이처럼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로 눈을 강하게 감고 있던 그녀의 귀에 그의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조금 전까지의 상황은 모두가 제 상상인 듯 그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거실 테이블에 올려둔 책들을 들추고 있었다.
“하아.”
서경은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뜨겁게 달궈진 숨을 허공에 토해냈다. 방금 전 행동은 대체 무슨 뜻일까. 고개를 숙이고 그를 보지 않아서 어떤 표정으로 저를 봤는지, 머리를 만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은 교수도, 제자도 아닌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가 서로를 의식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여문혁을 남자로?
미쳤어!
그녀는 밭은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절대 엄마는 닮지 않을 거야. 못 오를 나무에 기어코 오르느라 손이 터지고, 다리가 까진 모습으로 흉한 미소를 짓는 일은 없게 해야 해.
책을 펼쳐 읽고 있는 그에게 시선을 주며 서경은 단호하게 각오를 다졌다.
이건 잠시의 일탈.
봄 햇살이 일으킨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불과했다. 의미 따위는 없어야 할 스러질 오전의 햇빛처럼 짧은 착각이어야 한다. 설렜던 잠깐의 기억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녀는 머리에서 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하려고 다짐하는 순간 문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안할 정도로 직시하는 시선 앞에 마치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태연하게 굴어야 하는데, 열기를 품은 귓불이 화끈거렸다. 기회는 박탈되었다. 단호한 그의 눈빛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서경은 쓴 물을 넘기듯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의연히 물었다. 동요하고 있는 내심을 들킬까, 목소리는 한없이 낮아져 있었다.
“전 뭘 하면 될까요?”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그녀의 얼굴을 외면하듯 그가 고개를 틀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경의 검은 눈동자 가득 일렁이는 짙은 감정을 이미 봐버린 것처럼. 귓불이 더 붉은 색을 띄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