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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56411451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9-04-26
책 소개
목차
04. 열일곱의 봄
05. 스물아홉의 봄
외전 1. 네가 없는 크리스마스
외전 2. 조연과 주연
외전 3. 새하얀 길
외전 4. 늦잠
외전 5. 아빠는 보지 말 것!!!(아버지는 갠찬아요)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가…… 널 좋아한 건.”
나를 좋아, 했다고?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나와 뺨을 타고 구르는 게 느껴졌다.
“12년.”
“뭐…….”
“12년이야.”
“…….”
“너는 묻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안 돼서…… 자그마치 12년을, 좋아해 왔어. 너를. 내 인생의 거진 반을 널 좋아하는 데에 썼어.”
어린이가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는데도, 나는 어린이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어깨를 쥐고 있는 손이 뜨거웠다.
서서히 어린이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눈을 감은 어린이는 내게 고개를 기울였다. 어린이의 입술이 내 입꼬리에 닿았다. 지독히도 현실감이 없어서, 나는 가만히 서 있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쪽 하는 소리조차 없이 건조하게 떨어진 입맞춤은 짧았지만 나는 그 찰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린이의 입에서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맞아, 난 치사해. 힘을 갖기 위해 결혼을 하고, 널 찾지 않고 참았어. 힘이 없으면 너는 사라져 버릴 테니까. 나는 그걸 또 멍청이처럼,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할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제는, 널 지킬 능력도 생겼고, 도와줄 사람도 생겼고, 그래서 내가 세워 놓은 세상이…… 꽤 단단해진 것 같고. 이쯤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 이 정도면 내가, 너 하나만큼은 지킬 수 있겠다. 이제야 널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겠다…….”
사랑.
그 단어 하나에 쌓았던 둑이 무너졌다. 흐느낌이 점점 거세어졌다.
“나만큼 치사하고 이기적인 놈이 없어. 늘 그랬어. 이렇게 울면서도 먼저 손 내미는 건 언제나 너였지. 그러면 나는, 모른 척, 네가 내민 손에 어쩌다 따라가는 척, 그렇게 널 사랑하고…….”
어린이가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대로 올라온 어린이의 입술이 내 눈물을 지웠다.
“온갖 핑계를 끌어 모아 널 데려와서도 네가 혹시나 날 거절할까 봐, 이제 더는 날 안 좋아하는 걸까 봐 눈치나 보고, 그래서 고백도 못 하고, 이제서야 겨우 다가갈 정도로…… 나 정말 형편없고 꼴사나워. 네가 사랑했던 김어린이 이런 사람이었는지는 몰랐겠지만…… 그래도 이게 나야. 미안해. 내가 겁쟁이라서…….”
“흐, 으윽.”
“너무 형편없어서, 너 아니면 데려갈 사람도 없어. 그러니까 나 좀 데려가 줘, 치원아.”
“흐윽, 흐어엉……!”
“나 좀, 사랑해 줘…….”
네가 없는 시간 동안, 나 너무 힘들었어…….
어린이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 말을 뱉고서야 겨우 어린이는 눈물 한 방울을 떨궜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 어린이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내 손길을 느낀 어린이는 잠깐 몸을 떨더니, 내 뒷목을 감싸고 뺨에 입을 맞췄다. 나는 그대로 어린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입맞춤도 피하지 않고 껴안아 주기까지 하고 나서야, 어린이는 겨우 내 입술을 찾았다. 맞닿은 입술로 어린이의 흐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제야 알았다. 어린이는 정말로 겁이 많았다. 게다가 약하고 상처도 많았다. 나만큼이나.
할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만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로 많이 울었다.
그 눈물에, 많은 것들이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