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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6411543
· 쪽수 : 512쪽
· 출판일 : 2019-08-13
책 소개
목차
Prologue
1. 누구의 집인가
2. 초면의 애인
3. 대접 받아 마땅한 여자
4. 모니카 송연지
5. 이혼 여행
6. 부정할 수 없는 감정
7. 백수 탈출 이가람
8. 사랑의 정도
9. 몰랐던 사실
10. What is love?
11. 우선순위
12. 당신을 찾아가는 이유
13. 진심 어린 고백
14. 당신이 필요해
Epilogue 1
Epilogue 2
외전1. 여전한 송연지
외전2. 미스, 미세스, 그리고 미즈
외전3. 봄바람
외전4. 동행
저자소개
책속에서
가끔 딴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시기가 있다. 개과천선이라 표현하긴 거창하고, 그저 작은 변화를 꾀하고 싶어지는 때. 아성 그룹의 방탕아, 올해 서른두 살의 이가람에게도 어김없이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그날도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와 혀를 섞고 있었다. 그녀의 환상적인 몸을 제 것처럼 마구 주물럭거리던 가람은 거울 속 자신과 시선이 마주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밤이었는데 술이 단박에 깨었다. 평소라면 들지 않았을 자괴감이 그를 제대로 강타했다. 천년의 욕정이 싸늘하게 식고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가람 씨, 왜 그래?”
“비켜.”
여자를 밀쳐 낸 가람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호텔을 빠져나왔다. 그는 기사를 부르겠다는 도어맨의 친절도 마다한 채 목적지 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노오란 가로등 불빛이 어두운 밤길을 환하게 비추고, 싸늘한 바람이 가람의 얼굴을 세차게 때리고 지나갔다.
너는 언제쯤 철이 들 거냐며 호통치던 아버지, 제발 밖을 나돌지 말라며 눈물짓던 어머니, 부모님 가슴에 대못 박지 말라던 큰형의 충고, 세상 사람들이 너에게 손가락질한다는 둘째 형의 타박. 모든 것이 한데 모여 가람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띠링.
가람은 겉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발신자는 큰형이었다.
서울 A 병원 특실 203호.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아버지한테 들러서 인사 좀 드려라.
얼마 전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다. 가람은 그때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아마 친구들과 바에서 진탕 들이붓고 있었을 것이다.
‘이놈 자식! 내가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아버지의 호통이 귓가에 맴돌았다. 가람은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간 신경도 쓰지 않았던 모든 것이 그를 괴롭혔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시린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하지만 가람은 자신에게 너그러웠으므로 자책하기보다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인생 별거 있나. 다들 헤매면서 살아가는 거지.’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착실하게 살아 보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고민하던 그는 내일 아버지를 만나 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늦었고 피곤했으니 해가 뜨면 움직이기로 했다.
“가만 보자…….”
가람은 이내 자신에게 가정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 냈다. 생각해 보니 그는 유부남이었다. 5년 전에 정략결혼을 했다.
‘집에 들어가 볼까?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는 반쯤 기대를 품고 반쯤 두려워하며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갔다. 주소도 가물가물해서 운전면허증을 꺼내 보아야 했다. 술김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정신은 말짱했다. 현관 잠금장치에 카드키가 인식되었을 땐 솔직히 놀라서 목이 메었다.
‘분실 신고를 안 해 놨구나. 내가 언젠가 돌아오기를 바랐던 거야.’
그의 아내는 집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왔으리라. 가람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만을 기다린 여자가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했다.
가람은 조용히 움직였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늦은 시각이다. 괜히 그녀를 놀라게 하기 싫었다.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서 가람은 불을 켜지도 못했다.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어색했다. 쌀쌀한 바깥과 다르게 실내엔 훈기가 돌았다. 별것도 아닌데 코끝이 찡했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이구나.’
따뜻한 공기 때문일까? 졸음이 스르르 몰려왔다.
가람은 가죽 소파에 몸을 뉘였다. 긴 다리가 소파 끝으로 삐져나와서 어쩔 수 없이 새우처럼 몸을 쪼그렸다. 겉옷을 이불 삼으니 나름 포근했다.
감동적인 재회는 내일 아침에 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하며 그는 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