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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56411710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20-09-28
책 소개
목차
2장. 희박하다≠0%
3장. 수상한 동거
4장. 변곡점
5장. 너의 인생, 명아주
저자소개
책속에서
형사3부가 밀집한 5층으로 뚜벅뚜벅 돌아온 일우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바로 부장 검사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부장 검사실 문 앞에 서서 재킷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도 한 번 정돈했다. 부장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괜한 걸로 책잡히기 싫어서였다.
똑똑.
“부장님, 현일웁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는 부장 옆에 섰다. 또 어떤 잔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무게 잡나 싶었다. 곰곰이 되짚어 봐도 최근엔 사고 친 게 없었다.
“뻣뻣하게 서 있지 말고 앉아. 내외하는 것도 아니고 식구끼리 왜 이래?”
일우는 아까 먹은 부대찌개에 누가 약을 탔나 잠시 의심했다. 언제부터 부장과 일우 사이에 식구라는 말을 썼는지 모르겠다.
식구(食口)란 한 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 사이를 뜻한다. 단어 뜻 그대로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 걸 가리킨다면 맞지만, 부장은 같은 뜻을 품고 같은 곳을 걸어간다는 의미로 얘기했다. 그거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예.”
물론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공연히 싸움만 일으킬라, 잠자코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현 프로도 오늘 뉴스 봐서 알지?”
뉴스가 한두 개인가, 알긴 뭘 알아. 일우가 뾰족한 시선을 가까스로 갈무리했다. 그런 일우를 앞에 둔 부장이 편철된 서류 하나를 테이블에 던졌다.
“뭡니까?”
사건 기록이었다. 이런 식으로 일우만 불러 사건을 배당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에 짙은 의심을 품고 물었다.
“읽어 봐. 보면 알 거야.”
부장은 별다른 설명 없이 읽을 것을 종용했다.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읽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서류를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읽던 일우가 사건 기록 앞에 쓰인 글을 보고 멈칫했다.
‘인내동 화재 유가족 형제 살해’
요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었다. 피의자가 영장 실질 심사를 받을 때 취재진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보도하던 것도 희미하게 기억에 있었다.
놀라기도 잠시, 이걸 왜 나한테 보여 주나 하는 의심이 연달아 들었다.
“그 건, 현 프로가 처리해.”
이 사건을 맡고 싶어서 줄 선 사람이 한 트럭일 게 눈에 훤했다. 거기서 언제나 기수 열외였던 일우가 걸릴 가능성은 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았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 있다. 일우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복권 당첨률보다 낮은 사건 배당 확률에 따라올 대가는 뭘까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짧고 굵은 것보다는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데.
“감사한데, 왜 하필 접니까?”
돌직구로 물어봤다. 부장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일우를 훑었다.
“허 참, 이젠 줘도 난리네, 줘도. 하기 싫어?”
“아닙니다.”
그냥 의심스러워서 그럽니다.
솔직하게 밝힐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일우의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부장도 그간 제 행보와 다른 건 알고 있었는지 큼큼, 헛기침하다가 태연자약하게 답했다.
“왜긴 왜겠어. 현 프로 마스크 좋잖아? 이번 건으로 매스컴 좀 크게 타자고. 차장님도 현 프로 주는 거 동의하셨어. 잘 처리해 봐.”
차장까지 동의했다니. 자연히 구린내가 진동했다.
“바로 결재해 줄 테니까 이번 주 내로 기소해. 그 이상 넘어가면 여론 시끄러워져.”
“예.”
“모레 브리핑 있으니까 적당히 구색 맞춰 놓고.”
기록을 이제 전달받았는데 브리핑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는 것처럼 지껄이고 있었다. 내가 도깨비방망인가, 나와라 뚝딱 하면 다 되게.
“알겠습니다.”
반박하고 싶어도 용건은 여기까지였는지 부장이 나가라고 손까지 휘젓는 통에 일우는 빠르게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문을 닫고 나온 뒤에야 생각을 이어 했다.
아직 수사 중인 사건에, 특히 대서특필될 정도로 어지간히 큰 사건이 아니면 현직 검사가 매스컴과 직접 접촉하는 일은 거의 없다 봐도 된다.
차 부장 검사 정도 직함이면 기사에 인터뷰 몇 줄 나가는 경우는 있으나 일우 같은 평검사라면 이름 하나 올라가는 것도 감지덕지다.
게다가 이미 기소 여부까지 결정해 둔 거면 자기가 수사할 것이지, 왜 본인에게 넘기는지 다시 한번 의문이 떠올랐다. 대체 뭔 꿍꿍이인가 싶다.
까 놓고 보니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씨발, 까라면 까야지.”
일우가 탁, 소리가 나게 사건 기록을 옆구리에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