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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56752875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1-01-04
책 소개
목차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7
열네 살의 봄 。12
선택받은 아이 。16
기초 생활 수급자 。33
카페 안식처 。51
블랙 대불 。71
건너편 강가 。90
불행의 잣대 。105
헤엄칠 수 없는 물고기 。122
고막을 찌르는 목소리 。142
가여운 사람들 。156
생활 보호 수첩 。169
희망할 권리 。180
이룰 수 없는 꿈 。196
마음의 소리 。212
대등한 관계 。224
너의 안식처 。244
리뷰
책속에서
<카페 안식처> 중에서
_ 반강제로 카페 안식처에서 일주일에 두 번 아벨의 과외를 떠맡게 된 가즈마. 외모에서 풍기는 위압감과 다르게 수줍음이 많은 아벨은 후웅후웅 콧김을 내뿜고 내리뜬 눈을 뙤록뙤록 굴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프렌치 불도그를 닮았다. 말없이 오직 고갯짓과 필담으로만 대화를 하는 아벨과의 첫 수업 시간 가즈마는 아벨에게 뜻밖의 말을 건네게 되는데…….
“너한테 공부 가르치라고 해서 왔는데, 어느 과목을 가르치면 되지?”
아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묻는 방법이 나빴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과목을 싫어해? 나한테 말해 줄래?”
아벨은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침내 깨알같이 작게 써서 내밀었다.
‘다 싫어해. 나는 머리가 나빠. 바보야.’
그러고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떨어뜨리고 후웅 콧김을 내뿜었다. 그걸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요중학교에서 낙오자로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매일 슬펐다. 그 어려운 관문을 뚫었으니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여기면서도, 다른 애들보다 멍청한 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비참했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고통스럽다. 정말로 고통스럽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벨에게 두려움이 아닌 친근함 비슷한 감정을 품었다.
“너는 바보가 아냐.”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데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이 없을까 생각하면서 단어를 골랐다.
“그러니까……, 너는 너 자신을 멀리 떨어져서 보고 정확히 알려고 하고 있어. 그런 사람은 바보가 아니야.”
아벨은 커다란 몸을 구부리고 눈을 치켜뜬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 얼굴에 안심의 빛이 떠올랐다.
“어느 과목부터 공부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가르쳐 줄게.”
그러자 아벨은 갈색 손가락으로 공책을 끌어당겨 지금까지 쓴 글씨 중에서 가장 크게 ‘나눗셈’이라고 썼다.
<블랙 대불> 중에서
_ 네 살짜리 동생 나쓰키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장을 보러 간 이쓰키. 마트 화장실에서 한가하게 부모님이 사 준 선물을 자랑하며 수다를 떠는 또래 여자애들을 보게 된다. 이쓰키는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그 애들과 달리 아픈 엄마에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쉴 틈 없고, 대학 진학 길이 꽉 막힌 기초 생활 수급자인 제 처지를 돌아보다 울컥 화가 치민다.
전에 텔레비전에서 굶어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돈이라곤 한 푼도 남지 않아 수도와 가스와 전기마저 끊긴 집에서 죽어 간 사람의 이야기를. (…)
그에 비하면 우리는 확실하게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거다. (…) 밥을 굶지도 않고 병원에 갈 수도 있다. 전기 요금 걱정에 좀처럼 틀지는 않지만 에어컨도 있고……. 뭐, 수도도 전기도 가스도 잘 나온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문처럼 그렇게 중얼거려 보니 오히려 마음이 싸늘해진다.
이건 주문이 아니라 저주다. 가난한 사람을 얌전히 있게 만드는 저주.
<건너편 강가> 중에서
_ 가즈마는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소요중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공립학교로 전학 온 뒤, 문득 길에서 예전 학교 친구인 사쿠라다를 만난다. 사쿠라다는 해맑게 웃으며 학교 축제 때 놀러 오라고 말을 건네고, 가즈마는 그 천진난만한 호의에 질색하며 자신이 이쓰키에게 품은 동정심과 사쿠라다의 동정심이 닮은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동정하지 말라고.’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너, 몰라? 너의 그런 천진난만함과 해맑은 눈동자에 내가 얼마나 상처받는지. (…)
동정하는 자는 자신이 풍기는 냄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동정받는 자만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