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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91157062850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3-04-03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며 4
1부 봄은 왔지만 9
2부 꽃 이파리가 지는 것처럼 보입디다 37
3부 까마귀도 모르는 제사 121
부록
제주4·3항쟁 연표 174
제주 4·3 희생자 마을별 분포지도 183
참고문헌 184
노무현 대통령 사과문 186
추천사 187
리뷰
책속에서
3·1사건 9일 후인 3월 10일부터 3월 22일까지 제주도민들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인다.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제주도 전체직장 95%가 연계한 대규모 총파업이었다. 미군정 통역관도 참여했고, 제주 경찰 50여 명은 사표까지 내면서 파업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시장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밭일도 바다 일도 모두 멈추고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3·1사건에서 벌어진 경찰의 발포와 강경진압에 항의했다.
파업은 평화적이었다. 가족들은 감자를 쪄서 나눠먹으며 평화로운 밥상을 나눴다. 사람들은 노동을 멈추고 마침내 세상을 멈추었다. 멈춘 세상에 구호가 쩌렁거렸다.
“발포책임자 처벌하라!” “경찰의 무장 해제 및 고문 폐지하라!” “희생자에 대해 보상하라!”
민심이 들끓고 있었지만 경찰도, 미군정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주도민들을 더욱 강하게 옭아맬 명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민주주의민족전선 간부들을 연행하기 시작해 이듬해 4·3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여 명을 잡아들였다. 불만은 점점 더 임계점을 향해 끓어올랐다.
_ 3·10 총파업 중에서
당시 제주사람들은 4·3을 경찰과 제주사람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이 젊은 사람만 보이면 개 패듯 폭력을 휘둘렀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그 폭력을 피해 산에 올랐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무장대를 폭도라 부르는 대신 ‘산사람’이라고 불렀다.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산 아래 사정을 알려주기도 했다.
4·3은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열망의 표출이었고, 반으로 쪼개지지 않고 온전한 통일국가에서 살고 싶은 제주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제2의 독립운동이었다.
_ 횃불을 들다 중에서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름 빼앗기지 마라.”는 말이 떠돌았다.
“매에는 장사가 어서(없어). 고문을 당허민 아무 이름이라도 불수밖에 어서(없어)….”
토벌대의 총부리만큼 무서운 게 손가락 총이었다. 나 대신 죽을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만 하면 살 수 있었다. 빨갱이 누명을 쓰는 이들이 늘어갔다. 누군가의 손가락 끝에서 생(生)과 사(死)가 갈렸다. 사람들은 거짓인 줄 알았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귀를 닫아야 했고, 눈을 감아야 했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_ 이름 빼앗기지 마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