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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외교정책/외교학
· ISBN : 9791157740499
· 쪽수 : 32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한일 관계의 ‘감춰진 부분’
제1장─ 군사정권의 요구
제2장─ 한일 간에 가로놓인 깊은 틈
제3장─ 외교장관들의 ‘철학’
제4장─ 한국의 ‘극일’
제5장─ 전두환과 세지마 류조
제6장─ 위조될 뻔했던 친서
제7장─ ‘최종안’의 행방
제8장─ 친일과 반일의 틈바구니에서
제9장 뉴욕 회담에서 보인 희미한 불빛
제10장 세지마 류조의 이면 공작
제11장 서울의 서설
에필로그 한일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역자 후기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는 책
책속에서
“한국 정부 미친 것 아니야!”
대략적으로 전문을 살펴보면서 기우치 아키다네 아시아국장은 소리쳤다.
“도대체 이번 신정권의 장관은 외교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일국의 외교장관이 느닷없이 대사를 불러서 100억 달러를 달라고, 그것도 국방 예산을 대신 부담하라는 것 같은 말투로 일본에게 요구해. 조잡해도 너무 조잡하잖아. 도대체 뭘 생각하고 이런 걸 갑작스럽게 요구하는 거야?”
기우치는 마치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서 장관으로부터 요구받았던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다정다감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드라이한 기우치로서는 이런 한국의 수법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회담에서 서로 주고받은 내용은 상당히 긴박한 것이었다.
노 장관은 자신의 발언을 60억 달러 문제의 유래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4월 대사로서 임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기 직전의 스노베 대사에게 처음으로 엔 차관 60억 달러, 수출입은행 융자 40억 달러를 요청했던 것을 언급하고 지금까지 이에 관한 일본 측의 어떤 명확한 답변 없이 시간이 흘렀다고 말하면서 오늘이야말로 회답을 듣고 싶다고 정중한 표현이기는 했지만 격한 어조로 따졌다.
서울에서는 노신영과 스노베 회담이 노신영의 요청으로 비밀리에 이뤄진 것이며, 노신영 스스로 비공식적인 타진이라고 말했던 사실은 사라지고 어느 새 이전의 ‘비공식 타진’은 이제는 “이미 이뤄진 공식적인 요청”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스노베에 대한 타진 직후 이러한 막대한 경제협력을 갑작스럽게 요청 받아도 일본으로서는 검토할 수도 없다고 일본 측이 단호하게 당시 다카시마 차관을 통해 최경록 한국대사에게 회답했던 사실도 무시되었다.
“한일 관계는 실로 어렵습니다.”
“운명적, 숙명적인 것이 있습니다.”
두 외교장관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가슴을 트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로가 친밀함을 느끼게 되었던 바로 이 순간, 협의의 쟁점인 경제협력 문제는 두 사람의 손을 떠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외교장관은 서로의 마음속을 배려하면서도 어슴푸레하게 그것을 느끼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1945년 8월 10일 특공대로서 출격하고자 치도세 비행장에 집결했던 기억을 갖고 있던 소노다와 한국전쟁의 전란을 피해 평양에서 서울로 탈출해 군고구마를 팔면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노신영의 사이가 이 정도까지 가까워진 적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일 양국을 둘러싼 정치의 흐름은 이 두 사람을 흘려보내 다시 두 사람을 서로 대립하는 강 양쪽에 서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