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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1711505
· 쪽수 : 308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_ 요셉의원과 함께했던 21년의 삶을 충실히 복원한 전기
서문_ 가난한 이들의 의사 선우경식
1부 갈등 속에서
1 의사란 무엇일까?
2 강원도 정선으로 떠나다
3 새로운 길을 만나다
4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5 십시일반으로 병원을 만들 수 있을까?
6 김수환 추기경의 조언
7 3년 동안 상근 원장으로 봉사할 수 있어요?
8 산 넘어 산
9 솜바지를 입고 근무하는 병원
10 신앙의 길을 향하여
2부 멀고 험난한 무료진료 병원
11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
12 밑 빠진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란다
13 가난한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14 봉사자들과직원들의 소중함
15 들려오는 재개발 소식
3부 더 낮은 곳으로
16 마지막 고비
17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18 멱살을 잡히며 얻은 깨달음
19 함께 웃고, 함께 울고
20 IMF와 함께 찾아온 위기
21 아, 아버지!
22 노래의 날개 위에
4부 착한 이웃이 되기 위하여
23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예의
24 ‘자랑스러운 가톨릭의대인’
25 개원 15주년과 동반자들
26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는 의사가 되려고
27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28 환자가 더 어려운 환자를 간병하는 병원
29 가난한 환자는 의사에게 소중하고 고귀한 꽃봉오리
5부 생의 마지막까지
30 멈추지 않는 열정
31 쓰러지고, 일어나고, 또 쓰러지며
32 이겨낼 수 있다 기대하며
33 마지막 순간까지
후기_ 말없이 뿌린 작은 씨앗 하나가
선우경식 연보
참고 자료 및 인터뷰
화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선우경식은 1969년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후 끊임없이 의사란 직업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는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접수할 때 진료비나 수술비를 내야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돈 없는 환자들이 발길을 돌려야 하는 현실을 보며,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렸다. “사람을 살리는 데 의학을 이용하겠다”라고 했던 학생 때의 맹세를 지킬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고민을 거듭하며 제3의 길을 찾았다.
사랑의 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이경식 전문의와 고용복 전문의, 몇몇 레지던트들이 번갈아 참여하며 진료가 체계를 잡아가자, 크고 작은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사랑의 집으로 찾아왔다. 60~70명의 진료 환자 중에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 맹장 수술이 필요한 사람, 아기가 거꾸로 들어선 임산부, 결핵에 걸린 사람 등이 있었다. 그때마다 선우경식은 두 명의 외국인 신부님들에게 “이 환자가 폐렴 같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위암 같습니다”라고 말해주고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며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누구인지 알려줬다.
그런 날이면 집에 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외국인 신부님에게 환자를 맡기고 왔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신부님들이 그 환자들을 업고 시립병원이나 성모병원에 가서 자선진료의 혜택을 받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의료시설이 없는 사랑의 집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투약이 전부였다. 간혹 신부님들이 자선병동을 찾지 못했다는 연락을 해 오면 선우경식은 모금에 함께 참여했고,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나 동창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저렴한 가격으로 입원이나 수술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1984년, 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얼마 후 선우경식은 어렵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당시 김 추기경은 매해 30만 명 이상의 시골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지만, 그 대부분은 돈이 없어 시흥이나 안양천 건너 목동의 뚝방촌, 양평동 판자촌에 살면서 늘 강제철거의 불안에 떠는 도시빈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대교구는 도시빈민 사목이나 사회복지 사업을 할 경제적 여건이 못 되고 전문 인력도 부족해 외국 수도단체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기에, 선우경식이 조합을 만들어 병원을 설립하려 한다는 설명을 들은 추기경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셉 형제님, 교회가 서둘러서 그런 곳을 찾아가 복지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습니다. 1960년대의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개발로 파생된 도시빈민들은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항상 질병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지요. 그런 지역에 각각 본당(성당)이 있지만 그들을 돕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런데 그들에 대한 의료문제를 교회가 아닌 평신도들께서 좀 더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다만 그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경청하던 선우경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는 너무나 많은 분이 진료와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사람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의사 공부를 했기에, 저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렇게 병원 설립에 동참하게 되었고 추기경님의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