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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91157764921
· 쪽수 : 554쪽
책 소개
목차
제6권에 들어가며
3-2 전제 군주정 시대 AD 284년∼AD 476년
3-2-1 테트라르키아 시대 BC 284년∼AD 324년
3-2-2 그리스도교 황제 시대 BC 324년∼AD 455년
3-2-3 최후의 황제들 BC 455년∼AD 476년
수도 이전에 따른 로마 원로원의 무력화(無力化) / 성 바울의 ‘권세에 대한 복종’ /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의 4두 정치(293년)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대탄압’(303년) / 주교와 종교 권력의 탄생 / 의심받은 그리스도교 예배 / 그리스도교의 박해 원인 / 전제 군주정의 태동 / 변경 주둔군(limitanei)과 기동 야전군(comitatenses)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퇴위(305년) / 로마 시민의 분노와 막센티우스(Maxentius)의 등장(306년) / 토벌에 실패한 세베루스(Severus)(307년) / 갈레리우스(Galerius)의 실패(307년) / 막센티우스의 아프리카 반란 진압과 악행(308년) / 막센티우스에 대해 부당한 그리스도교 / 밀비우스(Milvius) 다리 전투(312년) / 로마를 정복한 콘스탄티누스(312년) /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와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교인들의 순교 / 그리스도교의 파문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몰락(313년) / 리키니우스(Licinius) 황제의 부황제 임명과 몰락(324년) /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로의 수도 이전 결정(324년) / 화폐 가치의 하락과 관료들의 축재 / 소작인들의 노예화 / 가혹한 결정과 인간적인 감정 / 가문 집착의 헛된 욕망 / 병역 기피 / 밀정들의 횡포와 시민들의 속박 / 크리스푸스(Crispus)의 비극(326년) /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특혜 / 망자가 된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아첨(337년) / 에우누쿠스(eunuchus)의 등장 / 근친을 살해한 콘스탄티우스 2세(337년) / 콘스탄티누스 2세(340년)와 콘스탄스(350년)의 몰락 / 무르사 전투(351년) / 갈루스(Gallus) 부황제의 파멸(354년) / 기병대장 실바누스(Silvanus)의 죽음(355년) / 율리아누스(Julianus)의 등장과 에우세비아(Eusebia) 황후의 애정(355년) / 율리아누스의 갈리아 통치 / 선동자들에 의한 부족의 멸망(359년) / 황제로 옹립된 율리아누스(360년) / 율리아누스의 분노 / 네브리디우스(Nebridius)의 충성 / 테오도투스(Theodotus)의 아부 / 콘스탄티우스 2세의 후계자 지명(361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황궁의 이발사 / 율리아누스 황제의 품성 / 전통 종교로의 회귀와 관용 / 율리아누스 황제의 역량 / 갈리아의 율리아누스, 안티오키아의 율리아누스 / 권력 변화에 따른 그리스도교의 피해 / 리바니오스(Libanios)의 벗이 된 율리아누스 / 보상에 불만을 가진 군대를 향한 율리아누스의 연설(363년) / 율리아누스의 유언과 죽음(363년) / 요비아누스(Jovianus)의 굴욕적인 강화 조약(363년) / 카리토(Charito)의 비탄(364년) / 프로코피우스(Procopius)의 반란(365~366년) / 로마누스(Romanus)의 간계(368년) / 아르메니아 왕 파라의 죽음(374년) / 마르켈리누스(Marcellinus)의 속임수(374년) / 발렌티니아누스(Valentinianus) 황제의 분노(375년) / 그라티아누스(Gratianus) 황제의 양보(375년) / 서고트족의 도나우강 도하와 발렌스(Valens)의 실패(376년) /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와 발렌스 황제의 죽음(378년) / 발렌티니아누스와 발렌스의 악정과 선정 / 전사(戰士)로 자라는 북방 유목 기마 민족 / 율리우스의 속임수(378년) / 그라티아누스 황제의 결단과 테오도시우스의 즉위(379년) /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의 지혜 / 안티오키아 폭동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처분(379년) / 그라티아누스의 실패와 테오도시우스의 결단(383~388년) /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깨달음(383년) / 유스티나(Justina) 모후에 승리한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대주교(385~386년) / 테살로니카 폭동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처분(390년) /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굴복(390년) / 전통 종교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태도 /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가톨릭 파 옹호와 이단 박해 / 발렌티니아누스(Valentinianus) 2세의 권력 누수(392년) / 루피누스(Rufinus)의 간계 / 호노리우스(Honorius)의 서로마 황제 즉위(395년)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악덕 / 루키아누스(Lucianus)의 선정과 비극 /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의 황후 간택(395년) / 루피누스의 죽음(395년) / 에우트로피우스(Eutropius)의 탐욕과 폭정(395~399년) / 알라리크(Alaric)의 그리스 침공(396년) / 로마 제국의 동서 분리 / 세도가들의 자기 보호(397년) / 고트족 침공 시 로마 귀족들의 생활상 / 여권 신장과 전통으로의 복귀 / 그리스도교의 우상 숭배 / 무어인의 골육상잔(398년) / 호노리우스(Honorius) 황제의 품성 / 스틸리코(Stilicho)의 죽음(408년) / 콘스탄티누스와 스틸리코 / 알라리크의 로마 포위(408년) / 아르카디우스의 결정(408년)과 유스티누스의 거절(527년) / 에우도키아(Eudocia)의 파란만장한 삶 / 올림피우스(Olympius)의 오판 / 야만족에 의한 황제의 옹립과 퇴위(409~410년) / 시네시우스(Synesius)의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총독에 대한 파문 / 요한네스(Johannes)의 실패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즉위(425년) / 아이티우스(Aetius)의 계략과 보니파키우스(Bonifacius)의 실패(427~432년 / 아이티우스의 ‘삶에 충실하다’란 것에 대하여 / 황제에 대한 원로원 의원들의 충성(438년) / 아지무스 주민들의 용기(447년) / 크리사피우스(Chrysaphius)의 음모와 아틸라(Attila)의 분노(449년) / 호노리아(Honoria)의 욕망과 아틸라의 갈리아 침공(451년) / 카탈라우눔 전투(451년) / 아틸라의 죽음(453년) / 겐세리크(Genseric)의 잔인성 / 겐세리크(Genseric)의 표적 /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분노와 아이티우스의 죽음(454년) / 막시무스의 복수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죽음(455년) /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Petronius Maximus) 황제의 회한과 죽음(455년) / 주교에 의한 황제 즉위식(457년)과 아스파르(Aspar)의 오판 / 마요리아누스(Majorianus) 황제의 산아 정책 / 수도사들의 권력 / 시도니우스(Sidonius)의 아부(475년) /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년) / 오도아케르의 실패(493년) / 프랑크 왕국을 창건한 클로비스(Clovis)(481~511년) / 니카(nika) 반란과 테오도라(Theodora)의 간언(532년) /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의 실패 / 승리한 사령관에 대한 의심(540년) / 테오도라(Teodora)의 동병상련(同病相憐) / 약자에 대한 구속(546년) / 레오비길트(Leovigilt)의 불행(577~584년) / 하층민이 된 로마인 / 야만족들의 재판 / 아더(Arthur) 왕의 출현(6세기)
부록 황제연대표 │ 연대표
끝마치며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생존 당시의 보편적 세계에 충실했지만 후세의 역사관에 의해 억울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것은 역사서를 쓰는 그 시대의 상황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관의 성향으로 후세에 미친 결과가 치세의 평가 기준이 되어 콘스탄티누스는 대제로 추앙되었고, 막센티우스는 폭군이자 방탕아로 낙인찍혔다.
카이사르는 술라가 스스로 독재관에서 내려와 은퇴한 것을 두고 정치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고 갈파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권력이란 한번 잡게 되면 놓고 싶다고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의 이 말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비참한 말로를 살펴보면 심중에 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플라톤이 이르기를 노예로부터 가문이 시작되지 않는 왕이 없고, 왕에게서 가문이 시작되지 않는 노예가 없다고 했다. 가문의 명맥을 이어 가려는 모든 노력도 자손들의 목숨과 가문의 정통성을 지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