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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58771140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19-08-15
책 소개
목차
1. 위암 3기입니다
암은 인생의 선물이었다 | 바빠서 죽을 시간이 없습니다 | 주인님, 잘 먹고 운동하세요 | 천만다행이다 | 삶을 사랑하는 일
2. 아프니까 산에 간다
동네 뒷산의 위엄 | 우연히 만난 우연한 기회 | 결론은 ‘할 수 있다’ | 옥녀봉에 도전하다 | 바닥에 누웠더니 정상에 섰다
3. 산꾼의 꿈으로 산을 오르다 1
산꾼들의 꿈, 지리산 | 연약한 두 여자의 아홉 시간 종주길 | 대한민국 최서남단 가거도에서 드린 기도 | 창원의 가을 산행에서 창원을 느끼다 | 창원 사는 여자의 마음을 훔친 설악산의 가을
4. 산꾼의 꿈으로 산을 오르다 2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기를 바라는 금강산 | 히말라야에서 더 높은 곳을 꿈꾸다 | 일본 북알프스에서 인사하는 법 | 후지산 정상에서 떠오른 사람 | 킬리만자로에서는 뽈레뽈레
5. 나와 산, 산과 나
살았다 살았다 | 정상이 있는 곳 | 돌아가야만 할 사정이 없는 사람 | 고향이 좋다 | 잘들 놉시다
6. 오늘도 나는 산에 오른다
천 번을 올랐지만 또 오르고 싶다 |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 | 배우고 나누고 | 병원에 가는 길과 산에 가는 길 | 소풍을 왔으니 소풍을 즐깁시다
7. 다시 사는 시간들
시간, 있을 때 잘하자 |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 좋은 사람 소개합니다 | 좋은 사람들과 산에서 놀고 싶다 | 복 많이 받으세요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살기에 바빴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돌아왔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집안일도 처리해야 했다. 동네 뒷산이 얼마나 높은지, 오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는지 알아볼 새가 없었다. 출근길에는 뒷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때 나는 뒷산을 미래의 운동 장소로 지목해 두기만 했었다.
‘난 나중에 일 그만두고서 다녀야지.’
이제는 현재의 운동 장소가 되었다. 동네 뒷산은 숲도 좋을뿐더러 매연도 덜하다. 특히 좋은 점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뒷산에 처음 오른 날 이런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아! 얼마 만에 맡아보는 산 냄새인가? 바람인가?”
몸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작은 숲길을 아껴 걸었다. 호흡의 거센 소리를 들으면서.
‘산이라고는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아프니까 가게 되는구나!’
아픈 나를 받아주는 산이 고마웠다. 아카시아 향기로 나를 반겨줄 때는 몸서리치게 흥분되기도 했다. 산을 오르고, 산과 함께하면서 몸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동네 뒷산의 힘은 참 대단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동네 뒷산은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오르는 특별한 곳이 되었다.
동네 뒷산은 내게 크고 높은 산을 꿈꾸게 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면서 나는 그 꿈을 향해 집을 나섰다. 뒷산은 남편에게 맡기고 먼 지역의 산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점점 산 맛에 취해갔다. 그동안 남편은 뒷산을 잘 맡아주었다. 매일 산에 올라 운동기구도 이용하며 근육을 키웠다.
꾸준히 산에 다닌 나는 급기야 산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산병에 걸렸다. 왕복 8시간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산병은 질병이 아니다. 산을 좋아하는 병일 뿐이다. 건강에 유익한 병이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금강산은 오랜 세월 갈 수 없는 산이었다. 그러다 1998년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한 사람들에게 금강산이 개방되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빨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찾아간 금강산은 여름의 봉래산이었다. 새우잠을 자면서 달려온 금강산과의 만남은 흥분과 떨림 그 자체였다. 남측 출입국과 북측 출입국을 통과할 때 느꼈던 긴장은 우거진 녹음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온정리와 양지리 마을 주민들이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유유히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흙 범벅이 되어 운동장에서 공을 찼고, 어떤 주민은 냇가에서 잡은 조개류를 어깨에 가득 메고 걸어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은 바지런한 우리 남한 사람들과 달리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1960년대 느낌이 나는 옷차림에서는 가난이 비쳤다. 정치를 잘 모르지만 북한이 관광 자원을 우리에게 활짝 개방한다면 그로 인해 벌어들인 돈으로 어느 정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을 거부하는 북한의 체제가 자못 아쉬웠다.
현대아산의 수고로 세워진 온장각(자연미를 살린 목조 건물. 금강산 관광의 첫 출발지)에서 구룡연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제한된 곳을 탐방한다는 사실에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일정 구간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소나무의 군락들이 어마어마했다. 생육 시기가 200여 년이 넘고 크기는 20미터가 넘는 금강송이다. 미송, 적송들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가 기록된, 금강산의 보배들이다. 이런 귀한 풍경을 온 국민이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