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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예배/기도/묵상(QT)
· ISBN : 9791158771591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20-04-15
책 소개
목차
서론_기도, 모든 것을 얻기 위한 올바른 추구
1. 주님을 따라 살기 위한 기도
낯선 듯 친근한 길을 걷다 | 이천 년 세월을 단숨에 건너뛰다 | 작은 일에 거대한 뜻이 들어 있다 | 머뭇거리지 않고 거대한 장애물로 돌진하다 |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기다 | 자기 권리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리가 보이다 | 나를 본 사람은 누구든지 내 아버지도 본다 | 과정 안에서 현재와 미래 세상에 살다 | 분명히 죽다, 그리고 새 생명을 확실하게 얻다 | 그분 말씀을 마치 내 말인 것처럼 하다 | 사흘째 날이 밝다 | 양식과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다 | 우리는 알았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 ‘작은 나’에게 ‘위대한 나’가 찾아오다 | 끊임없는 교류를 선택하다 | 영혼에는 현실을 돌파하는 힘이 있다 | 무덤은 끝이 아니다 | 혼신의 힘을 다하다
2.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기 위한 기도
제한과 자유, 그 경계선에 서다 | 나는 나를 사랑한다 | 작은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이 귀하다 |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다 | 내 소망을 주님께 두다 | 머지않아 알게 되리라, 그것들 또한 지나간 것을 |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이가 여기 있다 | 인생의 썰물과 밀물은 믿는 자에게도 있다 | 의로운 사람도 늘 선하지는 않다 | 하나님 말씀을 멀게만 느끼다 | 크면서도 조용한 바람이면 충분하다 | 주님은 사람들에게 다가서신다 |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님께 내어드리다 | 기다린다, 주님의 시간이 올 때까지 | 이른 아침, 나는 생각을 선물로 받는다
3. 평온하게 살기 위한 기도
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 행복했던 낮과 재충전의 밤을 생각하다 | 이쪽저쪽 기웃거리지 않다 | 죽음으로 더 넓고 큰 세계로 들어가다 | 차려주신 식탁에 감사드리다 | 이런 일에 가슴 졸임이 무슨 소용이 있나 | 불안은 잠시 다녀가는 손님일 뿐이다 | 무슨 이유로 우리는 주님 이름으로 살지 않을까 | 우리도 머물 만한 자리가 되게 하소서 | 주님 이름이 거룩해지이다 | 주님 나라가 임하소서 | 주님 뜻이 이루어지이다 |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소서
4. 찬양으로 드리는 기도
내 영혼의 유일한 애인은 주님이다 | 모든 예지와 일솜씨가 그분 손안에 있다 | 주님의 아름다움 속에 거닐게 하소서 | 내 심장이 그 소리를 듣다 | 하나님의 영광을 나 노래하리 | 나라가 주님의 것이라 | 하나는 셋, 셋은 하나라는 신비 | 나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의 입에 계시소서 | 하나님께서 네게 복 내려주시기를
옮긴이 후기
책속에서

생 처음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배울 때에 몇 가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현대인에게는 새삼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 속에 잠재된 신앙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아주 단순하게 한 가지 일에만 3분 동안 매달려 보십시오. 아마 매우 힘들다는 걸 깨달을 것입니다. 상념(想念)의 세계를 지배하기, 말씀 한마디를 마음에 새기기, 그리고 따라서 말하기. 게다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그가 겪는 운명에 동참하거나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또한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대부분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듣는 것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듣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 앞에 단순하게 서는 것을 의미하거나 자기 일을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입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 온몸을 바쳐 기도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때로는 행동으로도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 길에 서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가장 첫걸음이자 중요한 기도를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가의 어떤 마을입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어떤 여성이 그분을 쫓아오며 불렀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그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떤 맹인이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백부장의 하인은 가시는 길을 막고 부탁을 했습니다. 어떤 율법학자는 함정을 파놓고 그분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상황에 대해서 혹은 물음에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치유하셨습니다. 토론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장님이 눈을 떴습니다. 백성은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 장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예수님은 가실 길을 계속 가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밝혀주는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기록되었습니다. 그 곳곳마다에서 그분이 누구신지가 드러났습니다. 물론 그 상황은 과거의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셨던 그대로 따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거울에 비추어 그분이 누구신지를 오늘 우리 현실에서 되살려 내곤 합니다.
그 만남을 연습하는 첫걸음은 예수님의 수난사에 곧 십자가의 길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이미지와 항상 새롭게 만나는 바로 거기에 그리스도인이 오늘도 묵상하며 기도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