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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58791957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2-06-27
책 소개
목차
■ 바닷가의 집
■ 파이트 클럽
■ 점쟁이
■ 코로나와 잠수복
■ 판다를 타고서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오후에는 대형 마트에서 왁스를 사 와, 마루와 기둥을 닦았다. 그러자 원래부터 좋은 목재여서 그런지 점차 빛을 되찾으면서 관록 있는 모양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곳곳에서 삐걱삐걱, 끼익끼익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그야말로 집 그 자체가 다시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소생을 위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청소가 질리지 않았다. 내일은 집 어디를 손볼까 하는 생각만 한다. 원고 집필은 나중으로 미루면 된다. 지금은 한 달에 장편 소설 한 편만 완성하면 되기에 딱히 마감에 쫓기는 상황도 아니었다. 고지는 유명한 문학상도 탄 적이 있는 중견 작가였다. 글을 대량 생산해야 할 시기는 벌써 지났다.
밤에는 또 슈퍼마켓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와 그걸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라디오 지방 FM 방송국에서 앤드류 골드의 〈Lonely Boy〉를 내보내자, 그리움에 가슴마저 들떴다. 혼자 보내는 밤이 이렇게나 자유롭다니.
“너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건데? 그냥 인사과에 사표 던지고 와.”
후지타가 조금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10년 전이라면 그랬겠지만 나도 이제 마흔여섯이야. 정규채용으로 이직하긴 너무 어려운 나이니까.”
구니히코가 솔직히 대답하자 후지타는 한숨을 쉬며 “너도 참 잘 버틴다”며 얼굴을 붉혔다.
“나라면 벌써 사표 내던지고 당장 회사 때려치웠을 거야. 그리고 좀 더 좋은 일자리를 찾거나, 아예 내 사업을 차려서 보란 듯이 성공하려고 하겠지. 그게 남자다운 거 아니겠어?”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이것도 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니까.”
“너, 지금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셈이야?”
“당사자는 나인데 네가 왜 화를 내?”
뜻밖의 실랑이가 벌어지자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다만 후지타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다. 이 동기는 회사에 대해서도 화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무라 씨!”
이곳저곳에서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요즘 유키가 제일 인기가 많다. 젊고, 활약도 대단한 데다 독신이기 때문이다.
여자 팬들은 조금이라도 이쪽을 보게 하려고 유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펼치며 목청 터지게 소리친다. 마이코는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흥, 여기에 유키의 여자친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연인에게 팬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특별한 기분이 들게 해줬다. 여자 팬들은 각자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유키의 진짜 얼굴을 아는 건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