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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4917
· 쪽수 : 127쪽
· 출판일 : 2020-11-02
책 소개
목차
제1부
오늘의 당신 • 13
토마토 베끼기 • 14
블랙 코드 • 16
별책부록 • 18
치명적인, • 20
한 무정부주의자의 기억 • 22
모르는 쪽으로 고개가 돈다 • 24
외길 • 26
파꽃 • 28
안녕, 가세요? • 30
봄을 의심하다 • 32
양계장 • 34
결 • 36
사월 초하루 • 38
제2부
구부러진 골목 • 41
허무답보(虛無踏步) • 42
진위천 • 44
물로 뛰어든 개구리를 보고는 • 46
엄마를 버리다 • 47
야사 읽는 밤 • 48
진심, 괴물 • 50
셈 치기 • 52
어떤 달이 소식을 물어왔다 • 54
시인의 근친 • 55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 나던 • 56
토마토 기분 • 58
백곡 단장(斷章) • 60
봄 꿈 • 61
꼭 시가 아니라도 • 62
행성 번호 210 • 64
제3부
오늘의 나는, • 67
경계를 서성이는 동안 • 68
한낮을 헤매다 • 70
장미의 저녁 • 72
당신의 발음 • 73
개구리 • 74
모란 사구(四九) • 76
乙 • 78
탄천 • 79
실낙원 • 80
나사못 • 82
소낙비 • 84
피아노 • 85
나비의 전언 • 86
제4부
이슬 비친다는 말, • 89
나의 새들, • 90
폐가로군요 • 92
페달 소리 • 94
슬플 때는 왼손을 써요 • 96
빈집 • 98
남해 여자 • 99
나는 전속력이다 • 100
간절곶 • 102
춘설(春雪) • 104
도돌이표 엄마 • 105
몸빛, 아버지 • 106
쑥꽃 • 108
마성(麻城) 터널 • 109
막차 • 110
해설
치명적으로 붉은, 검정(어둠)의 세계 • 111
김정배(문학평론가·원광대 교수)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래된 당신의 필체를 쏙 빼닮은 바람의 수화를 읽는다 폐쇄된 간이역의 녹슨 출입문처럼 뻐걱거리는 신호 대기음 앞에서 자꾸 주춤거리는 글자들, 지금은 아무에게도 전이되지 않을 슬픔의 철자법을 따로 익혀야 할 시간이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는 키 작은 그림자, 휑한 옆구리 쪽으로 글썽해진 바람이 비껴간다 갈팡질팡하는 나뭇가지에 불규칙적으로 내려앉는 눈발들, 우편함에 쌓이는 주소불명의 편지들, 낯선 곳을 지나고 있을 사람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졌다
언젠가 무너지기 위해 똑바로 서는 기둥들처럼 나는 또 어디선가 무릎을 감싸고 주저앉기 위해 이 자리를 단단히 버텨야 한다 어딘가에서 첫 햇살에 아려오는 눈을 비비고 있을 오늘의 당신이듯
― 「오늘의 당신」 전문
신이 인간을 만든 까닭은 외로움을 견디기 싫어서였을 거야
텅 빈 우주, 저 혼자밖에 없는
공허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던 탓일 거야
창조란 무릇,
적막의 자궁을 제 손으로 찢어가며 울음도 없이
홀로 태어나는 법
적막조차도 없던, 무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던 그때, 신은
저를 불러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거야
하늘이, 땅이, 구름이, 온갖 풀과 나무와 새와 물고기들이 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최초의 음악을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었을 거야
갓 데뷔한 지휘자인 그는
세상의 온갖 것들과 나란한 사람의 합주를 들으며
비어 있는 칸들을 하나씩 채워나갔을 거야
신이 인간을 만든 건
저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고 싶지 않은
그 지독한 허기,
― 「별책부록―K」 전문
우리, 세상 같은 건 이제 없는 셈 쳐도 되지요
세상에나!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어야만
그 빌어먹을 천국이 온다잖아요
돈 같은 거야 이미 다 가진 셈 치고
멋진 애인도 오래전에 생긴 셈 치고
두 동강 난 땅 따위야 애초에 하나인 셈 치고
까짓 천당이야 한 천 년쯤 전에 다녀온 셈 치지요
불멸의 노래와 사랑을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안 주는
이상한 평등은 아예 없는 셈 치는 게 나을까요
당신이나 나나 아무것도 아닌 셈 치고
나비처럼 새처럼 어디로 날아간 셈 치고
삶이든 죽음이든,
불행이든 행복이든,
뭐든 처음부터 한 몸이었을 거라고
모르는 척,
그냥 속은 셈 치면 될 테니까요
― 「셈 치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