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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7109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5-09-19
책 소개
목차
제1부
돌부처•13/침묵을 몰고 오다•14/물방울의 자세•16/뿌리•17/완두콩 까는 저녁•18/거대한 잠•20/낙엽•22/도통, 혹은 백발을 위한 변명•23/조연•24/옹이•26/못•28/등•29/보물•30/이별에 연습은 없다•32/행복•34
제2부
너의 언어는•37/칠흑 속의 꽃나무•38/교차로•39/없으면서도 또렷한•40/빈집•42/첫사랑•43/한참 멀었다•44/하늘이 장마를 놓아•46/소속•47/작은 집•48/데미샘에서 돌돌 달아난 물은•50/나는 옛사람의 시구나 적어 보내고•51/바보•52/북쪽의 마음•54/방파제•55/다리•56/바다가 무장 푸르러지는 이유•57/모서리•58
제3부
돌탑•61/저녁 햇볕이 양말을 지어•62/붉은 발자국•64/보여주는 대로 보지 못하고•65/별밭•66/향기의 사이클•68/노안(老眼)•70/새끼•72/붉은 토마토•73/서로의 달•74/노가리•76/사랑의 역사•78/꽃불•79/소파•80/봄은 내 안에 뿌리를•82/불면•84/나무의 입•86
제4부
등불•89/품격•90/오래된 우표 한 장•91/빈손일 때•92/갈대•94/풍류•95/명옥헌(鳴玉軒) 배롱나무•96/어떤 수확•98/매미가 묻다•100/경칩 무렵•101/용굴암 일지(日誌)•102/종소리•104/생일•106/오리무중•107/중력•108/토종•110
해설 문신(시인·문학평론가)•111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륵사지 가는 길에 나를 만났다
나는 길목에서 마을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갈 길 바쁜 줄 모르고
눈비 몰려오는 줄도 모르고
미륵사지 다녀오는 길에도 나를 만났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날은 저무는데
눈비조차 내리는데
― 「돌부처」 전문
저녁이 소를 몰러 갔을 때
골짜기에는 침묵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말뚝에 묶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풀을 뜯는 동안 초록의 피도 낭자했을 것이나
소란까지 모조리 뜯어먹고 침묵은
소처럼 몸집이 컸다
소를 만나러 다가갔을 때
커다란 침묵 속에서 소는 풍경 소리를 들려주었다
풍경 소리 틈으로 재빨리 손을 집어넣으며
소를 데리고 나올 때 잘하면 침묵을 만져볼 수도 있으리라
저녁은 잠시 설레기도 했으나
침묵을 만지지 못하고
소를 만나지도 못하고
숲이 거대한 짐승으로 변하기 직전에야
저녁은 겨우 고삐를 수습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침묵 한 마리가 마당에 들어서자
집도 우두커니 서서 밤새도록 생각이 깊어졌다
― 「침묵을 몰고 오다」 전문
기다리던 책 출간 소식을 보였더니
와, 예쁘다! 산뜻한 표지 사진에 감탄하던 아내는
당신 이름이 없네~ 금세 어두워진다
내 자랑이 잠시 무안해지는 틈으로
반가움이 서운함과 실망으로 급강하한 맥락을 보니
아무개, 아무개, 하며 예닐곱의 내로라하는 시인들을
열거하고 내 이름은 등(等)자에 숨겨놓았다
등(燈)이 내 별호잖아, 되잖은 농으로 무안함을 달래두고 나는 잠겼다
저 내로라하는 이름들이 영롱한 불꽃 같으니
저 찬란의 주위를 두르는 일 또한 귀하지 않은가,
하여 나는 등 아니라 등피여도 좋겠다
불꽃을 감싸 어둠을 밝히면 등피까지가 등불 아닌가,
궁리하는 내 안에 거짓말처럼 등불 하나 켜져
무안을 자랑으로 말갛게 헹궈놓는 것이었다
― 「등」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