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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59058417
· 쪽수 : 349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편력의 조서
책속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게 앞에서 비를 그었다. 그곳 잡화점 여주인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마룻귀틀에 앉아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 어느 가게 앞에도 사람으로 가득했
다. 옷자락을 걷어 올린 아가씨들이 달려 지나갔다. 그중 한 사람이 버선을 벗고 샌들을 손에 들고 맨발로 철벅철벅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둘러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이 아주 친밀감 있게 보였다. 나는 이 친밀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아직 고향에 있었을 무렵 그곳에 와 있던 이 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을 뿐 전혀 마음이 융합되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 상대의 생활과 담을 쌓고 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지역의 생활 속에 몰입해 있었다. 나는 바깥에서 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 사람과 한마음이 되어 보고 있는, 적어도 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자 그 사과 과수원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국도와 철도에 끼인 위치에 3천 평 정도의 사과밭이 섬처럼 되어 있었다. 기와를 이은 일본풍 건물이 울창한 사과나무 숲 사이로 보였다. 짧은 치마에 하얀 즈크
화를 신은 가벼운 차림의 신애가 한길에 서 있었다. 차가 멈추자 그녀는 배낭을 들고 탔다. “혼자인가요?” 나는 의아했다. “당신이 늦어서 버스로 먼저 출발하게 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219쪽)
나는 생모를 미워했지만 이치를 떠나 본능적인 슬픔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교의 집회장에 가서 생모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전쟁 이래 그리스도교 교회는 쇠퇴하여 이 근처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그건 그만두었다. 피를 나눈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서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무척 슬퍼져 신사 경내로 가서 사자상 뒤의 돌계단에 앉아 울었다. 하나뿐인 자식인데도 장례식에도 가지 못한 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자신을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