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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

황정견시집주 1

황정견 (지은이),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옮긴이)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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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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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황정견시집주 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59059155
· 쪽수 : 396쪽
· 출판일 : 2024-08-15

책 소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의 시 1,916수를 총망라한 『황정견시집주』를 완역한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황정견은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시론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집주
산곡시집주권제일(山谷詩集注卷第一)
1. 고시 2수. 자첨 소식에게 올리다(古詩 二首. 上蘇子瞻)
2. 순도가 대합을 얻고 다시 순천주(泉酒)를 찾으니, 순천주는 이미 다 떨어졌다. 관주(官酒)는 안주에 걸맞지 않으니 감히 보낼 수 없었다(醇道得蛤蜊, 復索舜泉, 舜泉已酌盡, 官醞不堪, 不敢送)
3. 왕치천이 객사에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韻王穉川客舍. 二首)
4. 왕치천이 이미 수도 임안에서 벼슬을 얻었는데, 미인에게 빠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임부인을 대신하여 「애내곡」 2편을 지어 그에게 주었다【죽지가는 본래 파촉에서 나왔는데, 호상 지역까지 유행했다.】 애내는 호남 지방의 노래이다【애(欸)의 음(音)은 오(襖)이고, 내(乃)의 음(音)은 애(藹)이다】 王稚川旣得官都下, 有所盼未歸. 予戱作林夫人欸乃曲二章)與之. 【竹枝歌, 本出三巴, 其流在湖湘耳.】 欸乃, 湖南歌也. 【欸音襖, 乃音藹】
5. 역사를 읊어 서중거에게 주다【원주에서 “중거는 귀가 먹어서 벼슬을 그만두었다”라고 했다】(詠史呈徐仲車【元注曰, 仲車以聵棄官】)
6. 옛 팽택에 유숙하며 도연명을 회상하다(宿舊彭澤懷陶令)
7. 산곡의 석우동에 쓰다(題山谷石牛洞)
8. 첨봉각에 쓰다(題灊峰閣)
9. 외숙 이공택의 시에 차운하다(次韻公擇舅)
10. 공상에서 연밥을 먹는데 감회가 일어(贛上食蓮有感)
11. 가을날 생각이 일어 자유(子由) 소철(蘇轍)에게 보내다(秋思寄子由)
12. 이차옹에게 이별하며 주다( 贈別李次翁)
13. 연아체로 짓다(演雅)
14. 장난스레 새 울음에 화답하다(戲和答禽語)
15. 정교에게 주다(贈鄭交)
16. 평음 장등 거사의 은거지에서 3수(平陰張澄居士隠處 三首)
17. 왕랑 세필을 머무르게 하며(留王郞世弼)
18. 왕랑을 보내며(送王郞)
19. 유경문의 「등업왕대견사」에 차운하다. 5수(次韻劉景文登鄴王臺見思 五首)
20. 오선의의 「삼경회우」에 차운하다(次韻吳宣義三徑懷友)
21. 안문으로 종군하는 유계전을 전송하다. 2수 【안문은 지금의 대주이다】(送劉季展從軍鴈門. 二首【雁門今代州】)
22. 완릉 장대거의 곡굉정에 쓰다(題宛陵張待舉曲肱亭)

산곡시집주권제이(山谷詩集注卷第二)
1. 배중모에게 부치다(寄裴仲謨)
2. 황기복에게 부치다(寄黄幾復)
3. 신종황제 만사. 3수(神宗皇帝挽詞. 三首)
4. 왕문공 공의 만사. 2수(王文恭公挽詞. 二首)
5. 학원에서 딴 찻잎을 갈아 보낸 것에 사례하다(謝送碾壑源揀牙)
6. 소단룡과 반정을 무구에게 주면서 아울러 앞 시의 운자를 사용하여 시도 보내면서 희롱하다(以小團龍及半挺贈無咎并詩用前韻爲戱)
7. 장인 손신노에게 화답하다(和答外舅孫莘老)
8. 정국이 소자유가 적계에서 병으로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定國聞蘇子由臥病績溪)
9. 자유가 적계에서 병에서 일어나 부름을 받은 뒤 왕정국에게 보낸 시에 차운하다(次韻子由績溪病起被召寄王定國)
10. 이지순 소감이 벼루를 보내준 시에 차운하다(次韻李之純少監惠硯)
11. 선성으로 가는 외삼촌 야부를 전송하다. 2수(送舅氏野夫之宣城. 二首)
12. 경주 수령으로 가는 범덕유를 전송하다(送范徳孺知慶州)
13. 왕 황주의 묵적 뒤에 쓰다(題王黃州墨跡後)
14. 왕중궁 형제의 손정에 쓰다(題王仲弓兄弟巽亭)
15. 위 씨의 창관인 왕중궁에게 보내다(寄尉氏倉官王仲弓)

산곡시집주권제삼(山谷詩集注卷第三)
1. 강남의 휘장에 있는 향법을 보내주는 자가 있기에 희롱하여 6언시로 답하다. 2수(有惠江南帳中香者戲答六言. 二首)
2. 자첨이 이어서 화운하니 그에 다시 답하다. 2수(子瞻繼和復答. 二首)
3. 휘장 안의 향법으로 전갈을 볶는 것을 맡고서 앞 시의 운자를 써서 장난삼아 짓다. 2수(有聞帳中香以爲熬蝎者戲用前韻. 二首)
4. 공택 외숙이 차를 나눠 준 것에 감사하다. 3수(謝公擇舅分賜茶. 三首)
5. 벽향주를 정언능에게 보내면서 자첨의 운자를 써서 시를 지어 장난삼아 보내다(送碧香酒用子瞻韻戲贈鄭彦能)
6. 복창현의 수령으로 가는 정언능 선덕을 전송하다(送鄭彥能宣徳知福昌縣)
7. 현성사 정원의 구기자(顯聖寺庭枸杞)
8. 왕정국에게 준 자운의 시에 차운하다(次韻子瞻贈王定國)
9. 장순의 「재중만춘」이란 시에 차운하다(次韻張詢齋中晩春)
10. 조무구가 보내 준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晁無咎見贈)
11. 장문잠이 보내준 시에 차운하다(次韻答張文潛惠寄)
12. 전지중과 함께 적전의 전유문의 관사에서 식사하다(同錢志仲飯籍田錢孺文官舍)
13. 사인 증자개의 「유적전재화하귀」에 차운하다(次韻曾子開舍人遊籍田載荷花歸)
14. 복건의 전운판관으로 부임하는 유사언을 전송하다(送劉士彥赴福建轉運)
15. 봉사 한천의 「서태일궁」에 차운하다. 4수(次韻韓川奉祠西太一宮. 四首)
16. 왕형공이 서태일궁의 벽에 쓴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韻王荊公題西太一宮壁. 二首)
17. 반산 노인을 그리며 다시 차운하다. 2수(有懷半山老人再次韻. 二首)
18. 전목부가 읊은 「성성모필」에 화답하다(和答錢穆父詠猩猩毛筆)
19. 장난삼아 성성모의 붓을 읊다. 2수(戱詠猩猩毛筆. 二首)

저자소개

황정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송 건립 85년 후인 인종 경력 5년 홍주부(洪州府) 분녕현[分寧縣, 현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슈수현(修水縣)] 수수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및 형제들은 진사에 오르기도 했고 또 북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운동가인 구양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또 부친 황서(黃庶)는 두보를 존경해 그 영향이 황정견에도 이어졌지만, 황정견이 열네 살 때 작고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자 그는 명망가인 큰 외삼촌 이상(李常)에게 의탁했다. 이후 구파의 손각(孫覺)의 딸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사별했고, 북경국자감교수(國子監敎授)로 있던 1072년 다시 사경초(謝景初)의 딸과 재혼했지만 역시 7년 후 사별했다. 두 번째 장인 사경초는 양주통판과 둔전랑을 지낸 관리여서 황정견은 그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064년 19세에 황정견은 중앙 정부의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한 번 낙방했다. 그리고 1067년 23세에 예부시에 다시 응시해 삼갑 진사제에 급제하고, 하남성 여주(汝州) 섭현위(葉縣尉)를 필두로 관직에 나섰다. 신종 희녕 5년(1072, 28세)에는 학관 고시에 합격해 국가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교수가 되었고, 북경에 있을 때인 원풍 원년(1078, 34세) 구파의 천재적 문인인 소식과 교유를 시작하면서 그와 줄곧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소문 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북송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80년 황정견의 정치적 후견인인 소식은 왕안석 신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왕안석 신파에 의해 ‘오대시안(烏臺詩案)’의 문자옥에 걸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고, 황정견 역시 길주 태화현(현 장시성 타이허)의 지사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는 도중 안휘성 서주 삼조산 산곡사(山谷寺) 석우동(石牛洞)의 경치에 반해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자호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파인 소식의 입각으로 이상, 손각, 소철(蘇轍), 황정견, 조보지(晁補之), 장뇌(張?), 진관(秦觀) 등이 수도 개봉(開封)에서 관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황정견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1085, 41세), 신종실록검토관(神宗實錄檢討官), 집현교리(集賢校理)(1086), 저작좌랑(著作佐郞)(1087)을 지내며 1091년까지 원우 연간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후 1093년 소식은 다시 좌천되어 광동성 혜주(惠州), 해남도(海南島) 등 장기 유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황정견 역시 사천성 검주(黔州)까지 쫓겨났다. 황정견은 1101년의 소식의 사후 정치적 박해 속에 유배를 다니다가, 1104년 봄에는 동정호를 지나 곳곳을 거쳐 여름에 의주(宜州)에 도착했고, 이듬해인 숭녕(崇寧) 4년(1105) 9월 30일 61세를 일기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다른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치열한 당쟁 속에서 풍랑을 겪어야만 했던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시사(詩詞)와 산문과 서예를 역사 속에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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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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