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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0

황정견시집주 10

황정견 (지은이),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옮긴이)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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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0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황정견시집주 10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59059247
· 쪽수 : 357쪽
· 출판일 : 2024-08-15

책 소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의 시 1,916수를 총망라한 『황정견시집주』를 완역한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황정견은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시론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십삼(山谷外集詩注卷第十三)
1. 사문호가 원풍 연간에 문고를 올리다(謝文灝元豐上文藁)
2. 『방언』을 읽고서(讀方言)
3. 「추교만등」에 차운하다(次韻秋郊晚望)
4. 주덕부의 「경행불상견」에 차운하다(次韻周德夫經行不相見之詩)
5. 구양종도가 금귤을 보내주기로 하였기에 시로 독촉하였다 (歐陽從道許寄金橘以詩督之)
6. 길노의 짧은 시 열 편에 차운하다(次韻吉老十小詩)
7. 길노의 「기군용」에 차운하다(次韻吉老寄君庸)
8. 만안산에 있는 밭을 길노 현승이 감독한다는 것을 듣고(聞吉老縣丞按田在萬安山中)
9. 길노가 집에 돌아와서 지은 절구 두 수에 차운하여 기쁨을 노래하다(次韻喜陳吉老還家二絶)
10. 다시 차운하여 길노에게 답하다. 2수(再次韻答吉老. 二首)
11. 태화에서 길노 현승에게 삼가 올리다(太和奉呈吉老縣丞)
12. 지명의 「영화도중」에 차운하다(次韻知命永和道中知命名叔達)
13. 길노와 지명이 함께 청원에 유람하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韻吉老知命同遊靑原. 二首)
14. 지명이 청원산 입구에 들어가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知命入靑原山口)
15. 길노가 청원산에서 노닐다가 돌아가려고 하면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吉老遊靑原將歸)
16. 아우 지명이 청원에서 돌아온 것을 기뻐하다(喜知命弟自靑原歸)
17. 장의보에게 주다(寄張宜父)
18. 주부 언부를 보내다(送彦孚主簿)
19. 여간 서은보에게 부치다(寄餘干徐隱甫)
20. 이화보가 대신 편지 삼아 보낸 두 절구에 받들어 화답하다(奉答李和甫代簡二絶句)
21. 왕환중에게 주다(贈王環中)
22. 우사승이 왕순노에게 쌀을 빌린 시에 장난삼아 화운하다(戲和于寺丞乞王醇老米)
23. 영신의 종령이 석이를 보내준 것에 답하다(答永新宗令寄石耳)
24. 주방의 이도인에게 주다(贈朱方李道人)
25. 『전정록』에 써서 이백유에게 주다. 2수(題前定錄贈李伯牖. 二首)
26. 정거사 상방에서 남쪽으로 오솔길 따라가면 낚시터가 나온다. 그 경치가 매우 예스러운데 세속에서 무망의라고 부른다. 일찍이 은군자가 그 위에서 낚시하였다고 하니 감개가 일어 시를 지었다(靜居寺上方南入一徑 有釣臺 氣象甚古 而俗傳謬妄意 嘗有隱君子漁釣其上 感之作詩)
27. 고지가 말하기를 “집의 채마밭에 정자를 지어 어버이를 섬기는데, 사방의 풍경이 풍부한 것을 모두어 계정이라 명명하였다”라 하고는 나에게 시를 지어 달라 부탁하였다. 우리 선군의 허름한 집이 고자가 지은 정자와 불과 소가 열 번 울 거리에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올라가 보지 않아도 그곳이 경치 좋은 곳임을 안다(高至言築亭於家圃以奉親總其觀覧之富 命曰溪亭乞余賦詩 余先君之敝廬 望高子所築不過十牛 鳴地耳 故余未嘗登之而得其勝處)
28. 식헌에 쓰다(題息軒)
29. 신이인수탑에 쓰다(題神移仁壽塔)
30. 해수좌의 벽에 쓰다(題海首座壁)
31. 인상좌의 소나무 그림에 쓰다(題仁上座畫松)
32. 왕마힐의 그림(摩詰畫)
33. 내가 서강에 배를 대던 일을 추억하며 차운하다(追憶予泊舟西江事次韻)
34. 궁호정(宮亭湖)
35. 원풍 계해년에 가는 길에 석담사를 들러 옛날에 화운했던 서섬의 시를 보니 대단히 형편없었다. 인하여 그 목판을 없애 원고를 없애고 다시 한 편을 화운하였다(豊癸亥經行石潭寺 舊和栖蟾詩 甚可笑 因削柎滅藁別和一)

산곡외집시주권제십사(山谷外集詩注卷第十四)
1. 밤에 분녕을 떠나면서 두간 어른에게 보내다(夜發分寧寄杜澗叟)
2. 두반간 어른의 명홍정에 쓰다(題杜槃澗叟㝠鴻亭)
3. 집을 지나다(過家)
4. 성묘(上冢)
5. 고을을 다스리는 명숙이 「과가(過家)」와 「성묘하다([上冢])」 두 편에 화운하였기에 다시 차운하다(明叔知縣和示過家上冢二篇復次韻)
6. 곽명숙의 「장가」에 차운하다(次韻郭明叔長歌)
7. 청수암을 읊어서 곽명숙에게 올리다【서문을 함께 싣다】(詠淸水巖呈郭明叔【幷序】)
8. 「청수암」에 차운하다(次韻淸水巖)
9. 장화보 낚시터 정자에 쓰다【나오는 대로 쓰다】(題章和甫釣亭【放言】)
10. 동관현에서 오송산을 바라보며【집구시】(銅官縣望五松山【集句】)
11. 함평에서 태강에 가면서 말안장에서 짧은 시 열 편을 지어 안숙원에게 소회를 보내고 아울려 여행길에 있는 왕치천에게 안부 삼아 보냈는데, 왕치천이 “노란 거위 새끼 술 같으니, 술 마주하며 새 아황주를 사랑하네”라는 시구로 다른 날 취할 때 안숙원과 운자로 삼아 읊었다. 인하여 이것으로 운자를 삼다(自咸平至太康 鞍馬間得十小詩 寄懷晏叔原 幷問王稚川行李 鵝兒黄似酒對酒愛新鵝 此他日醉 時 與叔原所詠 因以爲韻)
12. 집에 부치다(寄家)
13. 초화보의 시에 차운하여 고풍으로 지어 답하다. 2수(古風次韻答初和甫. 二首)
14. 화보의 「노천수」에 차운하여 답하다. 3수(次韻答和甫盧泉水. 三首)
15. 화보가 대나무 뿌리 두어 본을 주한에게서 얻고서 기뻐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화운하다(和甫得竹數本於周翰喜而作詩和之)
16. 경기보 수령에게 부치다. 신당읍을 지나면서 지었으니, 바로 기보가 옛날 다스리던 곳이다(寄耿令幾父 過新堂邑作 迺幾父舊治之地)
17. 거침없이 말하다. 10수(放言. 十首)
18. 서울로 들어가는 큰 형님을 전송하다(送伯氏入都)
19. 황하를 건너다(渡河)
20. 태화 승으로 부임하는 여지상을 전송하다(送呂知常赴太和丞)
21. 장영숙과 이별하다(別蔣頴叔)
22. 평원에서의 잔치. 2수(平原宴坐. 二首)
23. 유경문과 함께 곽 씨의 서원에 노닐다가 인하여 유숙하였다(同劉景文遊郭氏西園因留宿)

저자소개

황정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송 건립 85년 후인 인종 경력 5년 홍주부(洪州府) 분녕현[分寧縣, 현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슈수현(修水縣)] 수수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및 형제들은 진사에 오르기도 했고 또 북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운동가인 구양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또 부친 황서(黃庶)는 두보를 존경해 그 영향이 황정견에도 이어졌지만, 황정견이 열네 살 때 작고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자 그는 명망가인 큰 외삼촌 이상(李常)에게 의탁했다. 이후 구파의 손각(孫覺)의 딸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사별했고, 북경국자감교수(國子監敎授)로 있던 1072년 다시 사경초(謝景初)의 딸과 재혼했지만 역시 7년 후 사별했다. 두 번째 장인 사경초는 양주통판과 둔전랑을 지낸 관리여서 황정견은 그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064년 19세에 황정견은 중앙 정부의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한 번 낙방했다. 그리고 1067년 23세에 예부시에 다시 응시해 삼갑 진사제에 급제하고, 하남성 여주(汝州) 섭현위(葉縣尉)를 필두로 관직에 나섰다. 신종 희녕 5년(1072, 28세)에는 학관 고시에 합격해 국가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교수가 되었고, 북경에 있을 때인 원풍 원년(1078, 34세) 구파의 천재적 문인인 소식과 교유를 시작하면서 그와 줄곧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소문 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북송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80년 황정견의 정치적 후견인인 소식은 왕안석 신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왕안석 신파에 의해 ‘오대시안(烏臺詩案)’의 문자옥에 걸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고, 황정견 역시 길주 태화현(현 장시성 타이허)의 지사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는 도중 안휘성 서주 삼조산 산곡사(山谷寺) 석우동(石牛洞)의 경치에 반해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자호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파인 소식의 입각으로 이상, 손각, 소철(蘇轍), 황정견, 조보지(晁補之), 장뇌(張?), 진관(秦觀) 등이 수도 개봉(開封)에서 관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황정견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1085, 41세), 신종실록검토관(神宗實錄檢討官), 집현교리(集賢校理)(1086), 저작좌랑(著作佐郞)(1087)을 지내며 1091년까지 원우 연간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후 1093년 소식은 다시 좌천되어 광동성 혜주(惠州), 해남도(海南島) 등 장기 유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황정견 역시 사천성 검주(黔州)까지 쫓겨났다. 황정견은 1101년의 소식의 사후 정치적 박해 속에 유배를 다니다가, 1104년 봄에는 동정호를 지나 곳곳을 거쳐 여름에 의주(宜州)에 도착했고, 이듬해인 숭녕(崇寧) 4년(1105) 9월 30일 61세를 일기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다른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치열한 당쟁 속에서 풍랑을 겪어야만 했던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시사(詩詞)와 산문과 서예를 역사 속에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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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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