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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2

황정견시집주 12

황정견 (지은이),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옮긴이)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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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황정견시집주 12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59059261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24-08-15

책 소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의 시 1,916수를 총망라한 『황정견시집주』를 완역한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황정견은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시론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별집시주
산곡별집시주권상(山谷別集詩注卷上)
1. 염계시【서문을 함께 싣다. 이편은 전집에 이미 실려 있다】(濓溪詩【幷序. 此篇前集已載】)
2. 목동(牧童)
3.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을 전송하다(送人赴擧)
4. 사심 상서 아우의 돌에(嗣深尙書弟晬日)
5. 「사안전」을 읽고서(讀謝安傳)
6. 이모 숭덕군에게 장수의 술을 따르다(酌姨母崇徳君夀酒)
7. 오개부의 번라오에 감사하다(謝五開府番羅襖)
8. 잡가(雜吟)
9. 해당화(海棠)
10. 압사사의 배꽃(壓沙寺梨花)
11. 「조추우중」에 화답하여 정회를 읊어 장등주에게 드리다(和早秋雨中書懐呈張鄧州)
12. 절구(絶句)
13. 임하로 가는 도중에(臨河道中)
14. 범렴에 화운하다(和范廉)
15. 외삼촌 이공택을 따라 장차 경보에 이르러 강남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애당초 회수의 서쪽에서 아직 가을이 되기 전에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從舅氏李公擇 將扺京輔以歸江南 初自淮之西 猶未秋日思歸)
16. 다음날 비에 막혀 앞 시에 차운하다(翌日阻雨次前韻)
17. 오로정【서문을 함께 싣다】(五老亭【幷序】)
18. 여홍범의 시에 화답하다(答余洪範)
19. 곧바로 오다(卽來)
20. 고도에게 받들어 답하다(奉答固道)
21. 성사가 『논어장구』를 강론하며 지은 시에 받들어 화답하다(奉答聖思講論語長句)
22. 학해사에 쓰다(題學海寺)
23. 매화(梅花)
24. 태화 남탑사의 벽에 쓰다(題太和南塔寺壁)
25. 군용이 보내온 「별시절구」에 화답하다(和答君庸見寄別時絶句)
26. 유사주에게 보내다(寄劉泗州)
27. 평원의 군재에서. 2수(平原郡齋. 二首)
28. 형돈부의 부채에 쓰다(題邢惇夫扇)
29. 절구를 지어 초화보에 주다(絶句贈初和甫)
30. 청허와 함께 이원을 방문하면서 청허의 시에 차운하다(次韻淸虛同訪李園)
31. 청허의 시에 차운하다(次韻淸虛)
32. 청허가 자첨이 상주의 수령이 된 것을 기뻐한 시에 차운하다(次韻淸虛喜子瞻得常州)
33. 공병, 자유가 16일 밤에 청허를 그리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公秉子由十六夜憶淸虛)
34. 조군거를 방문하다(訪趙君擧)
35. 왕명지의 「눈」에 화답하다(和王明之雪)
36. 자첨의 묵죽에 제하다(題子瞻墨竹)

산곡별집시주권하(山谷別集詩注卷下)
1. 소자미가 비각의 벽에 쓴 시와 환관 장후 집의 19장의 종이에 쓰여진 묵적을 보고 동료 전재옹 학사와 함께 짓다(觀秘閣蘇子美題壁及中人張侯家墨跡十九紙率同舍錢才翁學士賦之)
2. 문로공 「황하의」 뒤에 제하다(題文路公黄河議後)
3. 종실 대년의 그림에 제하다(題宗室大年畫)
4. 연저 양천공 양호당의 그림에 제하다(題燕邸洋川公養浩堂畫)
5. 유법직의 시권에 제하다(題劉法直詩卷)
6. 벼슬을 그만두고 호주로 돌아가는 막 낭중을 전송하다【병인】(送莫郎中致仕歸湖州【幷引】)
7. 잡시(雜詩)
8. 명숙이 고맙게도 두 게송을 보여주기에(明叔恵示二頌)
9. 검남 수령 장무종에게 주다(與黔倅張茂宗)
10. 임도와 눈 내리는 동고에서 노닐며 그가 지은 차운하다 (次韻任道雪中同遊東臯之作)
11. 장난삼아 원상인 차군헌에 제한 시운을 써서 시를 지어 주언이 나를 깨우친 작품의 ‘병든 눈이 어지럽다’는 구에 답하였는데, 격률에 미치지 못하고 글자도 형편없다(戲用題元上人此君軒詩韻奉答周彦起予之作病眼空花句不及律書不成字)
12. 포태형의 시에 화운하다. 4수(和蒲泰亨. 四首)
13. 태형이 술을 보내준 것에 대해 사례하다(奉謝泰亨送酒)
14. 동파가 중천황, 왕원직에게 보낸 육언시에 화운하다(和東坡送仲天貺王元直六言韻)
15. 원사가 영주에서 와서 노주 강안 면수역에 있는 나에게 뒤미처 시를 보냈다. 인하여 예전에 지었던 「차군헌」 시의 운자를 사용하여 지어주면서, 아울려 원사의 법제인 주언공(王庠)에게 편지 삼아 드리다(元師自榮州來 追送余於瀘之江安綿水驛 因復用舊所賦此君軒詩韻贈之 竝簡元師法弟周彦 公)
16. 목귀정에 시를 남기다(木龜亭留題)
17. 나공산의 고백암에 제하다(題羅公山古柏庵)
18. 동파가 그린 곽공보의 벽상 묵죽에 쓰다(書東坡畫郭功父壁上墨竹)
19. 천휴 사중산의 만사(史天休中散挽詞)
20. 송부인 만사(宋夫人挽詞)
21. 법륜 제공에게 주다(贈法輪齊公)
22. 성지에게 주는 글과 시 두 편【인을 함께 싣다】(與成之書並二詩【幷引】)
23. 이양공 집에 보관되어 있는 주방이 그린 미인금완도에 제하다(題李亮功家周昉畫美人琴阮圖)
24. 신중이 멀리서 와서 나를 방문하고 또한 올해의 새 차를 주었다. 또한 신도가 아름다운 시편을 보내주기에 다시 차운하여 신중에게 올리고 아울러 신도에게 편지 삼아 보내다(信中遠來相訪 且致今歲新茗 又枉任道寄佳篇 復次韻呈信中兼簡任道)
25. 유자옥의 관사에 화운하다. 10수(和柳子玉官舍. 十首)
양수경 「산곡시집주」 발문(楊守敬跋山谷詩集注)

저자소개

황정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송 건립 85년 후인 인종 경력 5년 홍주부(洪州府) 분녕현[分寧縣, 현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슈수현(修水縣)] 수수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및 형제들은 진사에 오르기도 했고 또 북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운동가인 구양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또 부친 황서(黃庶)는 두보를 존경해 그 영향이 황정견에도 이어졌지만, 황정견이 열네 살 때 작고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자 그는 명망가인 큰 외삼촌 이상(李常)에게 의탁했다. 이후 구파의 손각(孫覺)의 딸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사별했고, 북경국자감교수(國子監敎授)로 있던 1072년 다시 사경초(謝景初)의 딸과 재혼했지만 역시 7년 후 사별했다. 두 번째 장인 사경초는 양주통판과 둔전랑을 지낸 관리여서 황정견은 그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064년 19세에 황정견은 중앙 정부의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한 번 낙방했다. 그리고 1067년 23세에 예부시에 다시 응시해 삼갑 진사제에 급제하고, 하남성 여주(汝州) 섭현위(葉縣尉)를 필두로 관직에 나섰다. 신종 희녕 5년(1072, 28세)에는 학관 고시에 합격해 국가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교수가 되었고, 북경에 있을 때인 원풍 원년(1078, 34세) 구파의 천재적 문인인 소식과 교유를 시작하면서 그와 줄곧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소문 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북송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80년 황정견의 정치적 후견인인 소식은 왕안석 신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왕안석 신파에 의해 ‘오대시안(烏臺詩案)’의 문자옥에 걸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고, 황정견 역시 길주 태화현(현 장시성 타이허)의 지사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는 도중 안휘성 서주 삼조산 산곡사(山谷寺) 석우동(石牛洞)의 경치에 반해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자호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파인 소식의 입각으로 이상, 손각, 소철(蘇轍), 황정견, 조보지(晁補之), 장뇌(張?), 진관(秦觀) 등이 수도 개봉(開封)에서 관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황정견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1085, 41세), 신종실록검토관(神宗實錄檢討官), 집현교리(集賢校理)(1086), 저작좌랑(著作佐郞)(1087)을 지내며 1091년까지 원우 연간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후 1093년 소식은 다시 좌천되어 광동성 혜주(惠州), 해남도(海南島) 등 장기 유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황정견 역시 사천성 검주(黔州)까지 쫓겨났다. 황정견은 1101년의 소식의 사후 정치적 박해 속에 유배를 다니다가, 1104년 봄에는 동정호를 지나 곳곳을 거쳐 여름에 의주(宜州)에 도착했고, 이듬해인 숭녕(崇寧) 4년(1105) 9월 30일 61세를 일기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다른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치열한 당쟁 속에서 풍랑을 겪어야만 했던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시사(詩詞)와 산문과 서예를 역사 속에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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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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